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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SEOUL129 2009-01-23 07:57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탈북자들의 향후 역할은 통일을 앞당기는 일? : 한국 당국자는 일축

기 밀 SEOUL 000129 국방부망 배포1)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1/10/2018 태그: PHUM2), SREF, PGOV3), PROP4), PREL5), KS6), KN7) 제 목: 탈북자들의 향후 역할은 통일을 앞당기는 일? : 한국 당국자는 일축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8).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4/24 20:03

1. (기밀) 요점: 2008년 남한에 거주하는 전체 탈북자의 수가 15,000명 문턱을 넘어섬에 따라, 일부 학자들과 민간단체, 그리고 탈북자 스스로 전직 북한 주민이 북한 정권의 변화를 촉진하고, 종국에 한반도 통일의 앞당길 만한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왕성한 활동을 하는 탈북자들은 그러한 임무에 대해 스스로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전·현직 한국 당국자들은 탈북자의 중요한 역할 가능성에 대해 일축한다. 탈북자 민간단체 모임은 수적으로 확대되었지만, 남북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의제가 통일되지 않아 단체의 힘을 약화하였다. 요점 끝.

2. (기밀) 한국 통일부에 의하면, 2008년 탈북자 2,809명이 남한에 거주하며, 그 수치는 사상 최대로 전체 탈북자의 수를 15,057명으로 끌어올렸다. 탈북자들은 북한과 관계된 모든 일에 아주 친숙함에 따라, 식자층과 전문가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의제나 대의명분을 도모하기 위해 탈북자들의 정보 기반에 손길을 드리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특히 북한 외곽의 일부 식자층과 전문가들은 탈북자들이 북한의 변화를 조성하고, 종국에 한반도 통일로의 전환을 촉진하도록 하는 역할을 살펴보고 있다. 학자이며, 오랜 북한 관찰자인 안드레이 란코프는 예로 프로그램 교환이나 교육적인 지원의 확대와 같은 과제에서 탈북자 간부진을 키우는 일을 옹호한다. 국무부 국제공화주의연구소는 미래의 일정 시점에서 유용한 통일 이후 역할을 수행할 만한 역량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미 탈북자를 위한 소규모 능력 배양 워크삽을 개최한 바 있다. 일부 탈북자들은 그들의 피부에 와 닿는 개개인의 지식과 남북한에서의 생활 경험은 통일로 옮겨가는 시점에 한 역할을 할 만큼 독자적인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에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남한 다수의 우세한 견해로 보이지는 않는데, 남한인들은 탈북자를 가난하고, 형편이 어렵고, 적응하지 못하는 일종의 부담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3. (기밀) 북한 관련 활동을 하는 남한 민간단체는 두 개의 진영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진보성향, 인도주의적, 그리고 포용에 찬성하는 한 진영; 나머지는 보수적이고 인권지향이며, 북한 정권의 붕괴를 앞당기고 싶어하는 진영이다. 사실상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모든 탈북자는 두 번째 진영에 속한 모임을 주도하거나 연계되어 잇는 경향이 있다. 해당 탈북자 주도의 단체는 자유북한방송, 북한개혁방송 등의 라디오 방송인들과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탈북자동지회 등의 전단살포 활동가, 북한민주화위원회와 같은 인권옹호 단체, NK지식인연대와 같은 탈북엘리트 단체, 그리고 탈북여성인권연대 등의 여성인권옹호 단체 등이 있다. 비록 이들이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는 바람은 공유하고 있지만, 그들은 전혀 응집력 있는 집단이 아니며, 종종 서로에 대해 비판적이다.

4. (기밀) 북한의 혹독한 정치범 수용소 중 한 곳에서 생존해 “수용소의 노래”라는 수기를 쓴 강철환은 단순히 남한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 10년 정도 걸린다고 진단한다. 남한과 남한 사람들을 알고 자본주의적 사고를 이해하는 게 남북 어디에서건 통일 이후 여타 지도자 역할을 맡으려면 선결조건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5. (기밀) 강철환은 남한 사람의 시각에서 본 탈북자의 위상이 지난 수년간 얼마나 격하되었는지를 설명하였다. 자신이 한국 땅에 도착했을 당시인 1992년과 비교해, 요즘 한국에 도착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민간인 탈북자와 군인 탈북자는 “귀순용사” 신분증이 발급되었고, 남한 사람들의 존경과 칭송을 끌어낼 수 있었지만, 1994년 개인 신분증은 “귀순용사” 지위에서 단순한 “북한이탈주민”으로 “하향조정”되었다. 탈북자의 수, 그리고 탈북자 대상의 기금과 장학금이 1990년대 후반에 증가됨에 따라, 탈북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분명한 전환기임을 알게 되었는데, 존경에서 무관심으로 무례로 변해 갔다. 2000년 이후로 탈북자는 2등 시민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강철환은 말하였다.

6. (기밀) 탈북자들이 아직은 “남한을 도울”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탈북자 사회가 시간을 두고 훈련을 쌓아 미래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강철환은 믿었다. 통일 이후 시기에 북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지침을 제공하는 역할에서 남한 사람들보다 잘 대접받을 거라고 강철환은 생각하였다.

7. (기밀) 엘리트 탈북자는 지도자 역할에 맡을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을 분명히 거부하면서, 갈수록 많은 탈북자가 현재 북한에 변화의 씨앗을 심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정보기술 부문의 북한 박사 학위 보유자인 김흥광은 2004년 남한에 도착한 이후 다른 교육받은 탈북자에게 손길을 내밀어 2008년에 자신이 설립한 단체인 NK지식인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데, 남한에 있는 150명이 넘는 탈북자 지식인 단체이다. 자체 회원의 20퍼센트는 석사 학위나 박사 학위를 갖고 있거나 도전하는 중이다; NK지식인연대는 DVD나 USB드라이브, MP3 파일 속에 은밀한 정보나 메시지를 담아서 북한 엘리트 계층을 공략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김흥광은 한국 국정원에 지원을 간청해 보았지만, 이념적 차이, 그리고 국정원의 민감한 정보 유출로 말미암아 잘 접수되지 않았다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였다. 그는 전 주에 일본에 체류하면서, 납북자 민간단체에 기금을 요청하였다. 김흥광은 1월 22일 일본 NHK BS1 저녁 뉴스 프로그램 “카요 노 사카이” (오늘의 세계)에 출연하였다. 그는 최근 경기대학교 방문 교수직을 수락하였는데, 많은 엘리트 탈북자의 경우가 마찬가지로, 그들의 전문성과 기술, 그리고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잠재성 등이 남한 사람들에 의해 저평가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김흥광은 끝으로 미국의 자금 제공을 간청하였다.

2013년 8월 19일 국정원 국정조사 참고인으로 출연한 탈북자 김흥광의 민낯 미 대사관에 돈 달라고 손 벌리고, 일본에 가서도 돈벌이한 김흥광. 그가 안쓰러웠는지 같은 탈북자 출신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출연료를 벌어주기 위해 국정조사에 참고인으로 불러내 동포애를 발휘했는지 궁금하다.

8. (기밀) 남한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탈북자의 활동 분야는 전단살포이다. 민간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은 2008년 반 김정일 전단을 (그 중 다수는 1달러 지폐가 첨부된) 대형 공기 풍선을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북으로 보내면서 예상외로 북한의 강한 비난을 이끌었다. 북한은 한국정부가 박상학의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였다. 풍선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허울뿐인 법적 근거 찾기 작업은 실패하였고, 박상학은 계속해서 10만 “풍선 엽서”를 2008년 12월 3일에 보냈다. 다음 풍선은 2월에 날리기로 잡혀 있으며, 이번에는 북한 원화를 담아 실어 보낸다.

9. (기밀) 현재는 한국정부의 바람에 응하는 동시에 전단살포에 유리한 여건인 봄바람을 기다리면서 전단살포 휴식기에 들어선 탈북자동지회 지도자들은 통일 이후 시대에 탈북자가 잠재적인 역할 가능성에 대해 매우 낙관하는 모습이다. 탈북자 사회는 주도적 역할을 할 “준비가 안 되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한창권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탈북자가 북한의 변화를 불러오는 데 최상의 위치에 있으며, 그에 발맞춰 지위가 향상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탈북자동지회는 탈북자를 지원하는 28개 소규모 민간단체를 대표하는 통솔 단체이다.

10. (기밀) 전반적으로 한국의 관료집단은 통일 관련한 탈북자의 긍정적인 역할 가능성을 일축하는 모습이며, 탈북자가 남한의 복지 및 교육 제도에 가하는 도전에 대해 더 많이 우려하고 있다.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은 국외에 있는 북한 탈북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외교통상부에 “큰 문제”라고 1월 9일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면서, 만일 한국이 지금과 같이 탈북자를 무조건 수용하는 관행을 바꾸지 않는다면 더 큰 골칫거리로 커질 수 있다고 예견하였다. 박재규는 90퍼센트의 탈북자가 남한 생활 적응에 성공 못 했다고 평가하면서, 다수는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탈북자 단체가 한국 통일과정에서 중장기적으로 생산적인 소임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김대중의 햇볕정책 시절에 통일부 장관을 지낸 그는 탈북자 수용과 관련해 한층 선택적인 한국 정책의 구현을 감독한 바 있다고, 박재규는 말하였다.

11. (기밀) 남한 국민은 “심리적으로 탈북자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다.”라며, 그들을 일종의 지도자로서 받아들이기에는 확실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그는 말문을 이어갔다. “탈북자 역시 한국인이기” 때문에 적응 과정이 수월할 거라는 생각은 “순진하고 무책임한” 생각이다. 통일부 당국자와 함께한 개별 회동에서 한 비공식적인 논평도 그의 생각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남한 사람들은 탈북자와 함께 사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들 자식 중의 한 명이 탈북자와 결혼하는 장면은 못 견딜 거다. 이용준 차관도 박재규 전 장관의 견해를 재창하길, 한국정부의 재정착 인센티브와 맞물려 남한에 정착하길 원하는 사실상 모든 탈북자를 수용하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오도록 유인하고 있다.

12. (기밀) 전직 북한 선전선동가인 김성민은 자유북한방송이라는 탈북자가 관여하는 가장 큰 방송 단체의 발전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비록 그가 이금령이라는 다른 탈북자에게 확대된 라디오 부문 방송 운영 책임을 넘기긴 했지만 말이다. 13명의 탈북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전체 직원을 15명에서 20명으로 늘릴 계획인 자유북한방송은 요즘 저녁마다 5시간을 방송하며, 시사 문제에서부터, 유용한 생활 기술, 그리고 여성 권리에서부터 탈북자의 증언과 북한과 남한의 통계적 비교, 그리고 잘 알려진 북한 전문가의 강의, 영어와 중국어 교습까지 망라한 50개의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북한 사투리를 말하는 탈북자에 의해 진행된다. 김성민과 소속 자유북한방송 동료는 북한정보센터라고(wwww.fnkinf.com) 불리는 북한관련 정보와 이미지, 그리고 비디오 (일부는 자유북한방송 접선책을 통해 얻은) 등을 전하는 온라인 정보 센터, 그리고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믿을만한 브로커나 접선책 단원에 대한 지지를 모으는 탈북자 지원 작전 등을 포함하는 다른 활동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남한 주류 언론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자유북한방송은 12월 국경 없는 기자회의 표창장을 받는 등 자체 방송작업에 대해 인정받고 있다.

13. (기밀) 자유북한방송의 여러 활동에 대해 모든 이가 탐탁해하지는 않는다; 하루는 방송국 사무실 문간에 “피묻은 도끼”를 직원이 발견한 적이 있으며, 사무실은 요즘 상시적인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김성민은 과거 자유북한방송으로 보낸 협박편지의 당사자가 그 뒤로 국가보안법에 근거해 체포되었다고 12월 대사관 정무 직원과의 회동에서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경찰을 경계하였는데, 요즘을 경찰과 잘 지내고 있으며, 국정원 일부가 자유북한방송 노력을 승인하고 있다고 김성민은 말하였다. 북한정보센터 웹 사이트에 접속자 다수는 국정원에서 접속한 거라고 지적하였다. 2년 전에 자유북한방송에서 근무한 여성 탈북자는 나중에 국정원에 의해 채용되었고, 국정원은 다른 여러 탈북자도 역시 고용한 바 있다고 김성민은 지적하였다.

14. (기밀) 비탈북자 보수 운동가인 자유조선방송 대표 한기홍은 자신의 방송국은 국정원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전 정부 밑에서보다 현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더 우호적인 관계라고 똑같은 이야기를 12월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한 바 있다. 자유북한방송과 마찬가지로 자유조선방송은 자체 방송에 대한 탈북자의 반응을 모니터하고 그에 따라 프로그램의 내용을 조정하며, 그 내용을 가장 청취할 공산이 큰 대상인 지식인, 학생, 암거래상에 적합한 내용으로 맞추고 있다. 소규모 제작자를 총괄하는 대규모 조직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와 온라인 북한뉴스 제공자인 데일리NK의 일부인 자유조선방송은 북한의 경제 상황, 새 북한정권의 과도기적 상황, 그리고 음악과 드라마 등을 담은 한 시간 방송을 12시간마다 방송하고 있다. 10명의 직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여러 역할을 해가며 근무하고 있고, 자유조선방송은 탈북자로 70~80퍼센트의 자체 프로그램을 북한 사투리로 방송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15. (기밀) 기타 2개의 방송 중 하나인 소규모이나 눈에 띄는 방송국인 북한개혁방송은 1990년대 탈북자 김성철이 제작해 두 사람이 운영하는 하루에 1시간 프로그램은 북한 엘리트 지도부를 대상으로 방송하고 있다. 나머지 한 곳은 열린북한방송으로 남한인 영 하워드가 운영하며 2~3명의 탈북자를 고용해 하루에 2시간을 방송하고 있다.

16. (기밀) 북한 탈북자들은 고향 북한의 압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단체와 조직을 결성하는 데 상당히 성공을 거두어왔다. 남한 보수단체, 그리고 외국의 인권 및 종교 운동가로부터 기금을 유도하고 관심을 끌도록 하는 데 아마도 방송이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다. 이들 탈북자 단체는 그들 스스로 개척자로 여기고 통일 한국에서의 지도자 역할의 준비 과정으로 자체 작업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남한 동포들은 공유하지 않으며, 남한국민은 깊이나 지도력이 없는 분할된 탈북자 사회로 바라본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한 국민은 북한사람들도 탈북했다가 복귀하는 자들을 잘 대접하지 않으리라고 간주한다. 스티븐스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9SEOUL129.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129 
 
SIPDIS 
 
E.O. 12958: DECL: 11/10/2018 
TAGS: PHUM [Human Rights], SREF,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OP [Propaganda and Psychological Operation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KS [Korea (South)], KN [Korea (North)] 
SUBJECT: FUTURE ROLE FOR NORTH KOREAN DEFECTORS 
FACILITATING UNIFICATION?: ROK OFFICIALS DISMISSIVE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As the total number of North Korean 
defectors in South Korea crossed the 15,000 threshold in 
2008, some scholars, NGOs, and defectors themselves asked 
whether the former North Korean residents could play a useful 
role promoting change of the North Korean regime and 
facilitating eventual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ile there is a nascent, but growing activism among 
defectors who see themselves as naturals for these tasks, 
present and past ROKG officials dismiss the possibility of a 
significant defector role.  Even some leading defectors 
acknowledge that defectors are not yet ready to assume such a 
responsibility.  Defector NGO groups have grown in number, 
but they are weakened by the lack of a unifying agenda or 
approach to inter-Korean issues.  End Summary. 
 
¶2.  (C) According to the ROK Ministry of Unification (MOU), 
South Korea took in 2,809 North Korean defectors in 2008 -- 
the most ever -- pushing the total number of defectors to 
15,057.  As the defectors are quite familiar with all things 
North Korean, pundits and experts have tapped into their 
information base, promoting their favored agenda and cause. 
In the process, some pundits and experts, especially those 
from outside Korea, see a role for the defectors to promote 
change in the DPRK and, ultimately, facilitate a transition 
to a unified peninsula.  Scholar and long-time North Korea 
observer Andrei Lankov, for example, advocates cultivation of 
a cadre of North Korean defectors for such a task through 
exchange programs and expanded educational support.  The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IRI) has already 
conducted small capacity-building workshops for defectors, 
aiming to empower them both to improve their lives in South 
Korea and to play a useful post-unification role at some 
point in the future.  Some defector activists share this 
optimistic view of their future possibilities, reasoning that 
their intimate personal knowledge and experience of life in 
both Koreas uniquely qualifies them for a role in the 
transition to unification.  This argument does not appear to 
hold sway, however, with many South Koreans, who tend to see 
the defectors as a burden: poor, needy, and maladju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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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ctor NGO 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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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 South Korean NGOs involved in DPRK-related activity 
generally fall into two camps: one progressive-leaning, 
humanitarian, and pro-engagement; the other conservative, 
human rights-oriented, and eager to hasten the collapse of 
the North Korean regime.  Virtually all politically active 
defectors tend to associate with, and in some cases lead, 
groups in the latter category.  These defector-led 
organizations include radio broadcasters (Free North Korea 
Radio, North Korea Reform Radio), leafleters (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and Association of North Korean Defector 
Organizations), human rights advocates (Committee for the 
Democratization of North Korea), former prison camp internees 
(Campaign for North Korean Freedom), escaped North Korean 
elites (North Korean Intellectuals Solidarity), and women's 
rights advocates (Committee for North Korean Women's Rights). 
 Though they share a desire to promote change in the North, 
they are by no means a cohesive bunch and are often critical 
of one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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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iums" Author Kang: Defectors Get No 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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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 Kang Chul-hwan, who survived one of the harshest 
North Korean political prison camps and wrote about it in 
"The Aquariums of Pyongyang," estimated that defectors need 
about a decade simply to assimilate into South Korean 
society.  Knowing South Korea and its people and 
understanding its capitalist mentality were prerequisites for 
assumption of any future, post-unification leadership role in 
either of the Koreas, he said. 
 
¶5.  (C) Kang described how defectors' status in South Korean 
eyes had fallen over the years.  Compared to 1992, when he 
reached the ROK, recent arrivals had it "much tougher."  Back 
then, defecting individuals and military officers were issued 
"Defector Warrior" cards, which elicited respect and praise 
from South Koreans, but in 1994 the identification cards were 
"downgraded" from "Defector Warrior" status to just 
"defectors."  As defector numbers and ROKG funding and 
scholarships for defectors increased in the late 1990s, Kang 
noticed a clear turning point in public perception of North 
Korean defectors, as respect changed to disinterest to 
disrespect.  Since 2000, North Korean defectors have been 
treated as second-class citizens, Kang said. 
 
¶6.  (C) While North Korean defectors were not yet ready to 
"help (South) Korea," Kang believed the defector community 
could play a positive role in the future -- in time and with 
training.  In a post-unification era, North Koreans would be 
better received in the North than South Koreans in 
guidance-providing roles, Kang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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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Ph.D. Kim: Elites Ready to Make a Differenc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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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 Apparently rejecting the notion that they are "not 
yet ready" to take on the leadership role, a growing number 
of defectors are trying to plant seeds of change in North 
Korea now.  Holder of a North Korean doctorate in information 
technology, Kim Heung-kwang serves as chairman of North 
Korean Intellectuals Solidarity (NKIS), a group of more than 
150 elite defector intellectuals in South Korea that he 
founded in October 2008, after reaching out to other educated 
defectors since his arrival in 2004.  Twenty percent of its 
members either hold or are pursuing Master's or Doctorate 
degrees; the group aims to promote change in the DPRK by 
targeting its elite class with messages and information 
surreptitiously packaged in DVDs, USB thumb drives, and MP3 
files.  Kim told poloffs that his attempts to solicit support 
from the ROK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 had not gone 
well due to ideological differences and NIS leaks of 
sensitive information.  He had been in Japan the previous 
week asking an abductee NGO for funding.  Kim was featured on 
the Japanese NHK BS1 evening news program "Kyou no Sekai" 
(Today's World) on January 22.  His recent acceptance of a 
visiting professorship at Gyeonggi University 
notwithstanding, Kim, like many elite defectors, feel their 
expertise, skills, and potential to effect change in the DPRK 
are under-appreciated by the South.  Kim closed with a plea 
for U.S. funding. 
 
------------------------------- 
Leafleters: Bang for the Bucks? 
------------------------------- 
 
¶8.  (C) The area of defector activity attracting the most 
attention in South Korea is leafleting.  NGO 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Chair Park Hak-sang's fall 2008 deliveries 
of large air balloons carrying several thousand anti-Kim Jong 
Il leaflets (many with one-dollar bills attached) across the 
DMZ drew unusually strong condemnation from the DPRK, which 
demanded that the ROKG stop Park's leafleting activities. 
The ROKG's ostensible search for a legal basis to stop the 
balloons failed and Park continued, sending 100,000 "Balloon 
postcards" to North Korea on December 3, 2008.  The next 
balloons are set to fly in February, this time laden with 
North Korean won-bearing leaflets. 
 
¶9.  (C) Presently taking a hiatus from leafleting to comply 
with ROKG wishes and to wait for more favorable spring winds, 
Association of North Korean Defector Organizations (ANKDO) 
leaders are also very optimistic about the potential role 
that North Korean defectors could play in a post-unification 
era.  Conceding that the defector community is "not yet 
ready" to lead, ANKDO Chairman Han Chang-kweon nevertheless 
stressed that defectors would be best positioned to bring 
about chane in North Korea and ought to be empowered 
accordingly.  ANKDO is an umbrella organization representing 
28 smaller NGOs that support North Korean defectors. 
 
--------------------------- 
ROK Officials Not Impressed 
--------------------------- 
 
¶10.  (C) Overall, ROK officialdom is dismissive of the 
possibility of a positive unification-related role for 
defectors, being more concerned with the challenges defectors 
present to the South's welfare and educational systems. 
Former Unification Minister Park Jae-kyu told poloffs on 
January 9 that what to do with North Korean defectors outside 
Korea was a "huge problem" for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MOFAT) and predicted that it could grow 
into an even bigger headache unless the ROK changed its 
current practice of universal acceptance of North Korean 
defectors.  Park estimated over 90 percent of defectors were 
unable to adapt successfully to life in South Korea, adding 
that many suffered from mental and physical health problems. 
To expect this group to play a productive mid to long-term 
role in Korean unification was unrealistic, he said.  As 
Unification Minister during the Sunshine Policy days of Kim 
Dae-jung, Park had overseen implementation of a more 
selective ROK policy on accepting defectors, he said. 
 
¶11.  (C) The South Korean public, Park continued, was 
"psychologically not ready for defectors," and was certainly 
not prepared to accept them as leaders of any sort.  To think 
that the adjustment process would be effortless because 
"defectors are also Koreans" would be a "naive and 
irresponsible" notion.  Informal comments made in a separate 
meeting with MOU officials seemed to bear this out.  North 
Korean neighbors they could live with, they agreed, but they 
would not stand for seeing one of their children marry one. 
Deputy Foreign Minister Lee Yong-joon echoed former Minister 
Park's opinion that acceptance of virtually all defectors who 
wish to settle in South Korea coupled with ROKG resettlement 
incentives had attracted less desirable defectors to the 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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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ers: Kept at Arm's Length by RO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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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 Former DPRK propagandist Kim Seong-min spearheaded 
development of the largest of the defector-associated 
broadcasters, Free North Korea Radio (FNK), though he has 
turned over responsibility for the radio portion of his 
expanding operation to another defector, Lee Keum-ryong. 
Employing 13 defectors and planning to increase total staff 
from 15 to 20, FNK now broadcasts five hours per night and 
produces over 50 different programs on everything from 
current events, useful life skills, and women's rights to 
defector testimonies, statistical comparisons of the North 
and South, lectures by well-known North Korea specialists, 
and English and Mandarin lessons.  All programs are hosted by 
defectors speaking in North Korean dialect.  Kim and his FNK 
colleagues have branched out into other activity, too, 
including an online clearinghouse of North Korea-related 
information, images, and videos (some from FNK's North Korea 
contacts) called NK Information Center (www.fnkinf.com) and a 
defection support operation enlisting the assistance of a 
team of trusted brokers and contacts in Vietnam and Cambodia. 
 Ignored by mainstream South Korean press, FNK was recognized 
and awarded for its work by Reporters Without Borders in 
December. 
 
¶13.  (C) Not all have been pleased with FNK Radio's 
activities; employees discovered a "bloody axe" on the 
station office's doorstep one day and the office now receives 
constant police protection.  Kim claimed in a December 
meeting with poloff that those responsible for sending 
threatening mail to FNK in the past had since been arrested 
under the National Security Law.  Initially wary of the 
police, Kim said he now gets along well with them and 
believed that elements of the NIS approve of their 
broadcasting efforts.  Many who logged on to the NK 
Information Center website, he noted, were from the NIS.  A 
female defector that worked for FNK two years ago, he said, 
was in fact later recruited by the NIS, which employed other 
defectors as well. 
 
¶14.  (C) Radio Free Chosun (RFC) president, the non-defector 
conservative activist Han Ki-hong, likewise told poloff in 
December that the broadcaster had close relations with the 
NIS, friendlier now under President Lee Myung-bak than under 
previous administrations.  Also like FNK, RFC monitored 
defector responses to its broadcasts and adjusted programming 
content accordingly, tailoring the contents to those mostly 
likely to listen in: intellectuals, students, black 
marketeers.  Part of a larger organization encompassing small 
publisher NKnet and online North Korea news source The Daily 
NK, RFC creates about 15 programs in-house on such topics as 
the North Korean economic situation, stages of transition to 
a new regime, music, and dramas, broadcasting for an hour and 
a half per day. Ten employees worked on radio programs in one 
capacity or another and RFC aimed to have defectors broadcast 
70-80 percent of its programming in North Korean dialect. 
 
¶15.  (C) One of two other smaller, but notable, broadcasters 
is North Korea Reform Radio, a two-person operation run by 
1990s defector Kim Seung-chul producing 1 hour of programming 
per day targeted at North Korean leadership elites.  The 
other is Open Radio, run by South Korean Young Howard, who 
employs two or three defectors and broadcasts two hours p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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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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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 North Korean defectors have been quite successful in 
forming groups and organization to publicize repression back 
home.  Broadcasting is probably the most successful model, 
attracting funds and interest from South Korean conservative 
groups and foreign human rights and religious activists. 
Understandably, these defector groups see themselves as 
trailblazers and their work as preparation for leadership 
roles in a unified Korea.  This, however, is not a view their 
southern compatriots share, who see a divided defector 
community without much depth or leadership.  Correct or not, 
South Koreans also assume that North Koreans will not respond 
well to the returnees. 
STEPHENS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Human Rights]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Propaganda and Psychological Operations]
5)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6)
[Korea (South)]
7)
[Korea (North)]
8)
POL M/C Joseph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