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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SEOUL862 2008-04-29 01:28 기밀 주한 미국 대사관

제 목: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존재감, 한나라당의 당내혼란, 시사문제에 대한 견해

기 밀 SEOUL 000862 국방부망 배포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0/2018 태그: PGOV1), PREL2), PINR 3), KN 4), KS 5) 주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존재감, 한나라당의 당내혼란, 시사문제에 대한 견해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번역 주: 트위터 사용자 이름) — Micheal H. Rhee 2011/09/30 22:58

1. (기밀) 요점: 4월 25일 오찬 석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1993-98년) 이명박이 국내 정치 문제를 더 잘 취급해야 할 필요가 있음에 더해 최근에 무소속이나 친박연대의 이름으로 당선된 전직 한나라당 의원들을 수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버시바우 대사에게 말하였다. 김영삼은 이명박에게 정계 실세인 박근혜와의 타협이 필수라면서, 그래야 이명박이 바라는 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다. 김영삼은 북한을 믿을 수 있는지, 6자 회담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비관론을 피력했다. 그는 만일 그가 당시 영변을 타격하려는 클린턴 대통령의 생각을 막지 않았다면, 한반도가 지금은 비핵화 상태였을 거라고 자조 섞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 양반은 80세인데도 2시간의 식사 시간 내내 상냥하고 기운이 넘쳐 보였고, 자리를 비우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고, 한껏 정치 얘기를 즐기면서 모든 주제에 관한 자기 생각을 제공했다. 요약 끝.

2. (기밀) 김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4월 9일 국회의원 선거의 후보 공천 과정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인해서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무성 의원과 같은 높은 평가를 받는 많은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 일은 실책이라고 설명했다. 김무성은 그 뒤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정치란 선거에서 승리하자는 것이다. 김영삼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 석상의 발언과는 반대로 막후에서 전체 공천 과정을 장악하고 있다고 그는 믿었다. 이명박이 전체 공천 과정에 몸소 관여하고 있다고 류우익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최근 회동에서 류 실장이 그에게 말해줬다고 했다. 무소속과 친박연대 소속 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을 허용해야 하는데 한나라당 지도부가 이 문제를 두고 다투고 있다고 했다. 김영삼은 한나라당에 대한 영향력이 전혀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웃기는 얘기라고 말했다.

3.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4월 9일 선거에서 승리한(299석 중) 153명 의원으로 간신히 다수당이 된 일이 더 많은 친박계 의원을 포함한 거대 다수당보다 낫다고 이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믿고 있는 것인지 물었다. 김영삼은 153석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우리당도 비슷한 152석을 2004년에 당선시켰지만, 우리당의 공약을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보궐선거와 지방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열린우리당이 총선 승리 이후 2년도 채 안 돼 해체되었다. 이명박이 광범위한 개혁을 제도화할 만한 권력을 갖기 위해선, 여당인 한나라당이 적어도 170석은 돼야만 한다. 그 정도의 다수 의석이면, 한나라당이 모든 상임 위원회를 장악하게 된다. 김영삼은 단 50명의 의원과 함께 야당을 이끌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당시 근소한 원내 다수당인 집권당을 저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4. (기밀) 김영삼은 이명박에 대한 쓴소리와 감정이 쌓여 있으면서도 이명박이 가능한 청와대 후계자인 박근혜와 관련 마땅한 일을 함에 더해 종국에 박근혜 지지자들의 복당을 허락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영삼은 박근혜가 결코 한나라당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많은 정치권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대통령에 충성하기보다 그녀에게 충성하는 많은 수의 18대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까닭에 그녀는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이다. 이명박은 박근혜와 타협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지만, 이명박이 지난 당내 경선에서 격렬한 대결 이후로 심각한 상처로 남아 있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김영삼은 전화 통화에서 이명박에게 박근혜와 협력하라고 말했다면서, 직접 대면하게 되면 재차 당부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5. (기밀) 김영삼은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과의 통합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껄껄대고 웃었는데―양 이씨 서로가 악감정 때문에 “택도 없는 소리”라고 했다. 만일 친박계 무소속의원들과 친박연대 소속 의원들의 한나라당에 복당이 바로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세를 결집해서 (20석을 요하는) 교섭단체를 구성할 것이며, 국회에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 이어 3번째 큰 원내 정당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은 한나라당이 됐건 박근혜 됐건 이상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피해갈 수만은 없다.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김영삼은 이 발표가 한나라당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복당을 용의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반면에 김영삼이 생각하기에 박근혜와 이명박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전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결국 복귀하게 되겠지만, 지난해 고약한 경선에서 너무 많은 악감정이 쌓인 관계로 결코 박근혜는 만나지 않겠다고 이명박이 김영삼에게 말했다고 한다.

6. (기밀) 현재 남북 긴장 상태는 앞선 모든 정부 출범 초기 경험과 유사하다고 김영삼은 말했다. 1993년 북한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했던 것과 최근 평양발 이명박 대통령 모욕 발언이 비슷하다. 김영삼은 이런 북한의 행위가 남북 관계 악화의 신호탄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면서도, 이는 북한이 이명박을 시험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이명박이 북의 폭언을 무시한 것은 잘한 일이다. 김영삼은 잔인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기 전까지는 북한 원조 요청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은 전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기 전에 정상회담에 합의했다고 하면서, 만일 둘이 만났다면, 김일성이 많은 양보를 했을 것으로 그는 믿었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현재 한반도의 긴장 상태로 한국민들 사이에 걱정과 불안을 낳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영삼은 한국민들은 북한의 엄포에 익숙하다며, 단지 “또 시작했군.”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계속해서 각자의 삶을 영위할 거라고 말하였다.

7.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이 50만 톤의 식량 원조를 지난 2007년 북한에 제공하려 했지만, 북한이 거절한 까닭은 식량이 제대로 분배가 되는지 담보하기에 충분한 감시단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사람들이 또한 한국말 하는 사람이나 한국계 미국인이 감시단으로 선발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였다. 김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와 비밀주의는 동일체”라 북한이 대북 원조 감시단의 입국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김영삼은 북한에 더 많은 원조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요청을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8. (기밀) 김정일은 실제로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으며 미국과 6자 회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거라고 김영삼은 거듭 반복하였다. 김정일은 회담 과정을 질질 끌고 갈 것이고, 경제 원조를 챙기기 위해서 협상 과정을 계속 이용할 것이다. 그는 미국이 6자 회담 과정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이 핑계를 둘러댈 가능성을 인지한 가운데, 북한이 비핵화에 응할 가능성이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최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을 비핵화하는 일이 어렵기는 하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누가 되었건 부시 대통령이 양보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는 어떤 방안으로 합의를 보려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라고 버시바우 대사는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북핵 프로그램과 활동에 관한 북한의 핵 선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간 검증이 중요함을 강조해 왔다. 만일 북한이 비핵화하고, 그 사실이 검증되면 그제야 북미 관계 정상화나 그 밖의 사안도 고려할 수 있다. 김영삼은 북한은 절대 믿을 수 없다고 반복하였다.

9. (기밀) 김영삼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페리 국방장관은 1994년 북한을 공격하길 원했다면서 [국방부망 배포] 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공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돌이켜보면 만일 그가 미국의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하도록 재가했다면 모든 게 더 나아졌을 뻔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영삼의 거짓말 “미국의 영변 폭격, 내가 전화해 막았다” 1994년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영변을 포격하는 계획을 막 실행하려던 시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자신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폭격 계획을 중단하라, 미국이 전쟁을 벌여도 나는 단 한 명의 한국군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해 전쟁을 막았다고 위기 직후에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에 미 백악관은 발끈했다. “한국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은 적 없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백악관은 대통령 전용 전화선의 통화기록까지 공개했다. 이에 대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더 반박하지 못했다. 김영삼과 이명박의 거짓말… 어쩜 이렇게 닮았나 오마이뉴스 일독을 권장합니다.

10. (기밀) 김영삼은 한국이 아프간과 세계 곳곳의 국제적 노력을 지원하는데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이는 꼭 미국의 요청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그렇게 할 만큼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언론 기사들이 미국이 28,500명의 병력을 유지하기 원하는 까닭이 단순히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 주장하는 언론 보도는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병력 유지 결정은 한반도 안보에 무엇이 최선인가에 근거한 상호 결정이다. 김영삼은 미국과 한미 동맹을 비난하는 기사에 너무 비중을 두지 말라고 버시바우 대사에게 충고하면서, 한국 언론 지상에선 모든 협정이 광범위한 비판의 대상이라면서 최근의 합의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11. (기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8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총기라 있고, 정계에도 발을 담그고 있는 등 기운이 쇠할 기미가 전혀 없다. 그의 후임자인 김대중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나 국제적 명성은 없지만, 김영삼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소외되기를 거부한다. 김영삼은 대선 초기부터 이명박을 지지했고, 김영삼의 고향인 영남 지역에서 상당한 지지를 보탰다. 그러나 그는 투자에 따른 많은 보답을 받지 못했는데, 그의 예전 측근과 그의 아들이 9월 4일 총선에 후보 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점 때문에 그가 공개적으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불만을 표시하게 되었다. 여전히 김영삼은 이명박 대통령과 많은 그의 조언자들에게 세력을 떨치고 있다. 그의 쾌활한 성격과 강한 경상도 억양도 역시 새로운 보수 정권에 도움이 되었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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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SEOUL862.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862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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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2/10/2018 
TAG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INR [Intelligence],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SUBJECT: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STAYS RELEVANT, 
COMMENTS ON GNP MAELSTROM, CURRENT EVENTS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Over lunch on April 25, former President 
(1993-98) Kim Young-sam told the Ambassador that Lee 
Myung-bak needed to do better in handling domestic political 
issues and find a way to accept former Grand National Party 
(GNP) lawmakers recently elected as independents or under the 
Pro-Park Alliance (PPA) banner.  Kim said compromise with 
political heavyweight Park Geun-hye was essential for Lee so 
he could pass desired reforms in the National Assembly.  Kim 
expressed pessimism that North Korea could be trusted or that 
the Six Party process would produce any significant results. 
He wistfully opined that if he had not blocked then-President 
Clinton's idea to strike Yongbyon, the Peninsula would now be 
nuclear-free.  The octogenarian was pleasant and energetic 
throughout the two-hour lunch and was loath to leave, content 
to talk politics and offer his views on all topics.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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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stic Politics: Park-Lee 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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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 Former President Kim said he was upset by the way the 
GNP handled the nomination process for the April 9 National 
Assembly elections.  He explained that excluding many 
well-respected lawmakers like Kim Moo-sung, who were later 
elected as independents, was a mistake.  Politics was about 
winning elections.  Kim believed that President Lee Myung-bak 
had controlled the entire process behind the scenes despite 
public statements to the contrary; Blue House Chief of Staff 
Ryu Woo-ik told Kim during a recent meeting that President 
Lee was personally involved in the entire selection process. 
Independents and Pro-Park Alliance members should be allowed 
back into the GNP, but the GNP party leadership is fighting 
this.  Kim said Lee's recent statements that he had no 
influence over the GNP were laughable. 
 
¶3.  (C) The Ambassador asked if President Lee's supporters 
believed that the bare majority of 153 (out of 299) lawmakers 
that the GNP had won in the April 9 election was better than 
a bigger majority with more pro-Park members.  President Kim 
said that 153 had no meaning as former President Roh 
Moo-hyun's Uri Party won a similar 152 seats in the 2004 
elections but was unable to push through their party's 
platform; after a series of by-election and local election 
losses, the party dissolved just two years after this 
victory.  To have power to institute Lee Myung-bak's 
far-ranging reforms, the ruling GNP should have at least 170 
seats.  With that many seats, the party would control all of 
the standing committees.  Kim recounted that when he was 
leading an opposition party of just 50 lawmakers, he was able 
to block the ruling party that, at the time, had a slim 
majority of the seats. 
 
¶4.  (C) Kim said that despite rhetoric and hard feelings on 
President Lee's part, he was confident Lee would do the right 
thing vis-a-vis possible successor to the Blue House Park 
Geun-hye and would eventually allow her supporters back into 
the party.  Kim said Park would never leave the GNP.  Since 
she currently had a lot of political power and more lawmakers 
loyal to her than to President Lee in the upcoming 18th 
National Assembly, she was a political force to be reckoned 
with.  Lee needs to compromise and work with Park but he is 
not ready since the heated conflict during the presidential 
primary had left serious scars.  Kim said he told Lee by 
phone he should work with Park and said he would tell him 
again in person. 
 
¶5.  (C) Kim guffawed at the thought of Lee Hoi-chang's 
Liberty Forward Party (LFP) joining the GNP -- this was 
"impossible" because of the ill will the two Lees have for 
each other.  If the pro-Park independents and Pro-Park 
Alliance (PPA) members are not soon allowed back into the 
GNP, they will likely combine forces and create a negotiating 
bloc (20 seats needed) and become the third largest party in 
the National Assembly behind the GNP and the UDP.  This was 
not the ideal solution for either the GNP or Park, but it 
could prove inevitable.  In an April 25 press conference, 
Park announced she would not run for the GNP leadership; Kim 
said this announcement was intended to make it easier for the 
 
GNP to allow Park supporters back into the party.  While Kim 
said he thought Park and Lee would come to an understanding 
and the former GNP lawmakers would eventually return, there 
were so many hard feelings from last year's bitter primary 
that Lee had told Kim he would never meet Park Geun-hye. 
 
----------- 
North Korea 
----------- 
 
¶6.  (C) The current tension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is 
similar to that experienced at the start of all previous 
administrations, Kim said.  In 1993, the DPRK said Seoul 
would go up in "a sea of fire," similar to the recent 
rhetoric from Pyongyang insulting President Lee.  This did 
not signal a worsening of relations, Kim insisted, but was an 
attempt by the North Koreans to test Lee Myung-bak.  So far, 
Lee had done well to ignore the rhetoric.  Kim said that 
while it might be cruel, calls for aid to North Korea should 
also be ignored until the North made some progress toward 
denuclearization.  Kim said former DPRK leader Kim Il-sung 
agreed to a summit just before his death in 1994, and, if 
they had met, Kim believed Kim Il-sung would have made many 
concessions.  The Ambassador asked if the current tension on 
the Peninsula would eventually lead to uncertainty or concern 
among the Korean people.  Kim said that Koreans were used to 
North Korean bluster and would just think, "here they go 
again," and continue on with their lives. 
 
¶7.  (C) The Ambassador explained that the U.S. had attempted 
to give 500,000 tons of food aid to the DPRK in late 2007 but 
the DPRK refused it because they would not allow enough 
monitors to ensure that the food was distributed properly. 
The North Koreans also objected to Korean-speakers or 
Korean-Americans as monitors.  President Kim said that 
"communism equaled secrecy" so it was no surprise the DPRK 
was so averse to allowing people in to monitor the aid.  Kim 
said that the more aid we gave to North Korea, the more they 
would request. 
 
--------------- 
Six Party Talks 
--------------- 
 
¶8.  (C) Kim said repeatedly that Kim Jong-il was not 
genuinely interested in denuclearization and was using the 
U.S. and the Six Party Talks (6PT) to his advantage.  Kim 
Jong-il would attempt to drag out the process and continue to 
use the negotiating process to pocket economic assistance. 
He added that he felt the U.S. expected too much of the 6PT 
process.  The Ambassador said that President Bush, while 
recognizing the possibility Kim Jong-il may be stalling, 
thought that there was some chance North Korea would 
denuclearize.  Also, at the recent summit, President Lee 
declared that it would be difficult but not impossible to 
make North Korea denuclearize.  It was false, however, for 
anyone to think that President Bush would compromise and 
settle for anything less than a fully denuclearized North 
Korea, the Ambassador explained.  Similarly, we were not 
lowering the bar on the declaration of the North's nuclear 
programs and activities, and we had stressed that 
verification is very important.  If the North denuclearized 
and this could be verified, only then could progress on 
normalization and other fronts be considered.  Kim repeated 
that North Korea could never be trusted. 
 
---- 
1994 
---- 
 
¶9.  (C) Kim said that former President Clinton and Defense 
Secretary Perry wanted to attack North Korea in 1994, and 
 
SIPDIS 
would have done so had he not intervened.  Looking back, he 
said we all would be better off if he had allowed the U.S. to 
strike the Yongbyon nuclear fac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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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ghanistan and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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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 Kim said that the ROK should take a larger role 
supporting international efforts in Afghanistan and in the 
world, not because the U.S. asked the ROK to do so, but 
because Korea was strong enough to do so.  The Ambassador 
said that press articles claiming the U.S. wanted to maintain 
our troop levels in Korea at 28,500 simply to get more money 
from the ROK were ridiculous; this was a mutual decision 
based on what was best for security on the Korean Peninsula. 
Kim advised the Ambassador not to take too much stock in 
articles that criticized the U.S. and the alliance -- all 
agreements are criticized widely in Korean press, so this 
recent agreement should not expect different treatment. 
 
------- 
Comment 
------- 
 
¶11.  (C) Former President Kim is still lucent and plugged-in 
politically and, at 81 years of age, shows no signs of 
slowing down.  Without the Nobel Peace Prize and global 
acclaim of his long-time rival -- and presidential successor 
-- Kim Dae-jung, Kim Young-sam still tries to stay 
politically relevant. Kim backed Lee Myung-bak early on in 
the campaign and lent considerable support in Kim's home 
region in the southeast.  He did not, however, see many 
returns on his investment, as his former aides and his son 
did not receive nominations for the April 9 National Assembly 
elections.  This has led him openly to express 
dissatisfaction with Lee Myung-bak and the GNP.  Still, Kim 
holds sway with President Lee and many of his advisors.  His 
winsome personality and strong southern accent are also 
helpful with the new conservative administration. 
VERSHBOW

1)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Intelligence]
4)
[Korea (North)]
5)
[Korea (So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