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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SEOUL365 2008-02-25 08:24 2011-08-30 01:44 기밀 서울대사관

제 목: 노무현, 격동의 임기: 역사가들 후한 평가를 내릴 수도

  • 기 밀 SEOUL 000365
  • 국방부망 배포1)
  • 국방부망 배포
  • 행정명령12958: 비밀해제: 12/10/2018
  • 태그: PGOV2), PREL3), PINR4), KN5), KS6)
  • 제 목: 노무현, 격동의 임기: 역사가들 후한 평가를 내릴 수도
  •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d).
  • 번역자: PoirotKr(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03/30 01:08

1.(기밀) 노무현은 크게 낙담한 체 자신의 임기를 마쳤다. 청와대 접선책에 따르면, 노무현은 12월 대선에서 보수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로 결판이 난 이래로 울적하고, 시무룩했다. 노무현의 기분에 부채질 한 것은 심지어 자신의 전통적인 지지자들 조차도 비난 공세를 수위가 높이고 있는 점인데, 정책의 패착, 중도좌파 정책상의 어떤 공감대 쌓기의 실패, 공격적이고 분열적인 공개적 발언, 그리고 국민의 복지, 특히 경제적으로 잘살기보다 이념을 상전에 놓은 점 등을 그에게 비난을 돌리고 있다. 실상은 대부분의 한국민은 노무현의 임기의 끝을 보는 것에 크게 안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동안 남은 날짜를 셈하며 지내왔다.

2.(기밀) 노무현은 과거 인물들, 특히 당대보다 사가들에 의해 호평 받았던 트루먼 대통령과 자신이 비교됨으로써 확실히 위안을 받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북한 정책이 근본적으로 건실했고, 그로 인해 남북한 대화에 새 시대를 열었는데, 남북대화는 북한과의 화해에 있어 전재조건이다. 그는 지역주의를 줄여온 점에 자부심 역시 대단한데, 영남과 호남사이에 악의적인 주도권 다툼은 과거부터 한국 정치와 사회 전반에서 영향을 미쳐왔다. 또한 노무현에게 위안이 될 일은 자신과 자식이 부패로 인해 옥살이를 하지 않는 10년 만에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란 점이다. 또한 그는 선거 자금상에 부패를 극적으로 줄이는데 공이 인정된다. 이러한 발전상에 많은 부분은 남한 정치가 성숙되었기 때문은 물론이지만, 노무현의 재임기에 남한에서 공정성과 평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 및 정치에 대규모 참여를 강조하는 중도좌파 정부가 설 땅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반면에 그가 신봉하는 사상과 정치가 존속할 것이지만, 노무현은 당분간 정치판에서 모습을 감출 듯하다. 요점 끝.

3.(기밀)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후보인 정동영이 참패를 당한 이후에 노무현은 눈에 띄게 말이 줄었다. 정동영은 보수 이명박 후보의 48.7퍼센트에 비해 26.3퍼센트의 득표를 했다. 더욱 분명하게 다가오는 점은 진보진영과 좌파 후보가 받은 36.2퍼센트 득표율에 비해, 노무현에 반대한 후보들이―이명박과 이회창―63.8퍼센트들 득표한 점이다. 고위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노무현은 패배를 예상했지만, 그렇게 엄청난 표차는 패하리라곤 예상 못했다. 과거 두 달이 넘게, 노무현은 가까운 친구 및 보좌관들과 술을 과하게 마셔온 것이 분명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깊은 환멸감을 토로했다.

4.(기밀) 노무현에게 가장 상처가 것은 심지어 예전 지지자들이 패배로 인한 비난을 자신에게 덤터기로 퍼부은 점이다. 소속당의 충직한 당직자들로 노무현의 서투른 국정 성적표를 공개적으로 한탄하고 있으며, 사실상 만장일치로 노무현의 국정운영의 실정을 이명박의 승리의 이유로 돌리고 있다. 중도적 당 관계자인, 예로 전직의원이며, 노무현의 선거 참모인 정대철은 당 정책을 무시하고, 무능력한 인물의 임용, 그리고 공개적인 빈번한 말실수 등에 대해서 노무현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특정한다면, 북한 관련 및 사회적 쟁점사안들인 교육과 부동산 소유권에 관련한 좌파 정책의 이행에 대해 그를 비난하고 있는데, 그런 정책이 남한 주류사회에 용납이 안되었던 것들이다.

5.(기밀) 한편, 노무현의 좌파 지지자들은 노무현이 한미 FTA를 밀어 붙이고,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는 등 자신의 핵심 지지기반에 등을 돌렸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 또한 경제발전에 대해서 목소리가 큰 수사에 비해 그의 행보가 따르지 못하는데 크게 실망했는데, 특히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 격차가 증가 일로 벌어지는 것에 대한 대처에 실패한 점이다. 한동안 좌파세력도 “변화”을 향한 노무현의 무기력한 실천력으로 인해 지쳤고, 그의 정책들이 너무 이념적이거나 감성적이라며 비판하고, 노무현 자체에 대해선 융통성이 없고, 고집스럽다고 책망했다.

6.(기밀) 아마도 가장 대표적으로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의 상징적 징표는 젊은 유권자에게서 찾아 볼 수있는데, 이들은 2002년 혼전을 거듭한 대선 당시에 노무현에게 투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바 있다. 2007년 12월 서울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젊은 세대는 가장 불만을 표명한 내용을 보면 노무현의 국정운영(단 12.1퍼센트만 승인), 교육정책(14.6퍼센트), 사회 양극화 문제(16.1퍼센트) 노동 및 고용정책(17.5퍼센트) 등의 순이다. 숭실대학교의 강원택 교수는 “진보 정부가 세금을 증가하는 것은 아마도 수긍을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에 따른 혜택이 피부에 와 닫지 않는 점이 문제인데, 교육비 및 집값이 과거 10년에 걸쳐 치솟았다.”고 말했다. 노무현에 의리를 지키는 단체가 없다―심지어 전통적으로 진보인 전라도 호남지역도 그러한데, 그 곳에서 진보후보가 전형적으로 90퍼센트의 지지를 받아왔는데, 정동영이 단 80퍼센트만을 득표했다.

7.(기밀) 비록 숫자상으로 일부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노무현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박선원인데, 그는 노무현의 임기가 시작된 이래로 줄고 청와대 통일안보비서관이였다7). 노무현이 어설프고 완고한 점은 인정했지만, 노무현은 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정부 내 투명성을 도입하고, 또한 여성 및 기타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기회를 제공한 공로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고 박선원은 말했다. 심지어 노무현의 훼방꾼들 조차도 노무현 정부 하에 상당한 실적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 검찰과 국세청 그리고 국정원의 권한과 권력의 축소. 전통적으로 이들 기관들은 청와대가 반대세력을 통제하고 협박하는 도구로 삼아왔던 기관들이다. 그 희생자들의 범위가 정치적 반대세력에서 신문사와 대기업에 까지 이른다. 공감대가 있는 견해는 이들 세 기관에 의한 권한 남용사례가 노무현 하에 극적으로 감소해왔다는 점이다.
  • 부패의 감소. 검찰과 국세청 그리고 국정원의 감소된 역할과 더불어, 부패가 감소한 점을 들 수있다. 노무현 정부는 대체로 불법 정치적 자금과 부패 그리고 뇌물 스캔들 등에 자유로웠다. 만일 노무현이 법적으로 곤경에 빠진다면, 대부분 전문가들은 추정하길, 전임 대통령인 김대중에 의한 불법 자금을 덮는데 역할을 했다는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 지역주의 감소. 열정적인 이념주의자로써 노무현은 중도좌파 정책 공약으로 선출되었다. 노무현은 진보적인 정책을 계속 고수했는데, 특히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남한에서 지역보다는 정책기반의 정치를 만들었다. 지역주의는 여전히 살아서 건재하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그 예로 1997년 김대중이 92.9퍼센트 그리고 2002년에 노무현이 93.2퍼센트를 받은 것과 비교해서, 정동영이 전라도 지역에서 단 80퍼센트의 득표율을 얻었다는 점이다.
  • 인권의식의 증대. 노무현 정부는 여성부를 신설했는데, 인신매매와 매춘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중요한 점은 도시화 및 세계화의 결과로 인한 사회적 불균형을 개선하는 조치들을 옹호하는데 노무현 스스로 상당부분 앞장서왔다는 점이다. 허나 어떠한 실체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는 부분에선 부족했다.

8.(기밀) 안보문제에 있어 노무현은 약간의 실적을 기록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북한 정책을 비판하지만, 그는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이뤄냈으며, 개성산업공단을 개원했고 경제협력을 확대했는데, 이는 많은 비평가들조차도 한반도에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동의한다. 심지어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비록 대선 내내 보수세력들의 많은 비판을 노무현이 받았지만, 그는 제2보병사단의 이전 및 주한미군 본부의 평택 이전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수용했다. 또한 한미 FTA를 타결했다. 또한 미합중국과 한국은 노무현의 임기 중에 전시작전권 한국 이양에 합의했고, 미군 주둔지 및 기기의 반환에 요구되는 환경기준을 놓고 벌어진 장기간의 이견을 해결할 수있었다.

9.(기밀) 노무현의 대통령직에 대한 접근방식은 남한에서 “삼김시대”(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김종필)로 대표되는 정치 전통과의 철저한 단절이였다. “보스”정치를 종식하겠다고 약속한 노무현은 대통령이란 신분을 (일반인이) 다가설 수있도록 만들었다. 취임과 동시에, 노무현은 전례없던 시민과의 공개적 회의에 나서고, 심지어 청와대 누리집에 직접 불로그 글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그가 주장한 범위는 왜 교육개혁이 필요한지부터 해서 한국의 일본 식민지 역사 의 해악에 이른다. 노무현은 한국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고, 이기심을 버리고 먼 장래까지 미치는 정치적 개혁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있을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이러한 고상하고, 아마도 달성할 수없는 목표라고 하겠지만, 다수의 한국민이 불쾌해 하는 노무현의 개인적 행동방식이 그 목표를 어렵게 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목표와 정책은 한국에서 많은 추종자를 끌어낼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새로운 대변자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지만, 앞으로도 노무현이 중도좌파가 정권을 잡을 준비와 능력을 갖춘 세력으로 발돋움 했다고 당연하게 결론지을 것이다. 버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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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SEOUL365.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365 
 
SIPDIS 
 
SIPDIS 
 
E.O. 12958: DECL: 12/10/2018 
TAG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INR [Intelligence],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SUBJECT: ROH MOO-HYUN'S TURBULENT TERM:  HISTORIANS MAY BE 
KINDER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 
SUMMARY 
------- 
 
¶1.  (C) Roh Moo-hyun ends his presidency a deeply 
disappointed man.  According to Blue House contacts, Roh has 
been moody and morose since the presidential election in 
December which resulted in a lopsided victory for the 
conservative candidate Lee Myung-bak.  Not helping Roh's mood 
is the piling on by even his traditional supporters, 
fingering him for policy missteps, failure to build any 
consensus around his center-left policies, offensive and 
divisive public remarks, and placing ideology above the 
people's welfare, especially their economic well-being.  The 
reality is that most Koreans are enormously relieved to see 
the end of Roh's tenure; they have been counting the days for 
some time. 
 
¶2.  (C) Roh apparently takes some comfort in comparing 
himself to figures from the past, especially President 
Truman, who have been judged with more kindness by historians 
than contemporaries.  He tells his staff that his North Korea 
policy was fundamentally sound and that it opened a new era 
of inter-Korean dialogue, a prerequisite for reconciling with 
the North.  He also takes considerable pride in having 
reduced regionalism, the malignant rivalry between the 
Southeast and the Southwest, which has traditionally infected 
all aspects of Korean politics and society.  Also of comfort 
to Roh is that he is likely to be the first president in 
decades without himself or his sons facing jail for 
corruption, and he deserves credit for dramatically reducing 
corruption in election finance.  Many of these developments 
are of course due to the maturing of South Korean politics, 
but it is also true that Roh's tenure has shown that there is 
a place in South Korea for center-left government that 
emphasizes fairness, equality and, above all, mass 
participation in government and politics.  While the policies 
and ideas he advocated will remain, Roh is likely to 
disappear from the political scene for now.  END SUMMARY. 
 
-------------------------- 
REASONS TO BE DISAPPOI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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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 Roh has been remarkably quiet since the crushing 
defeat of his candidate, Chung Dong-young, in the December 19 
presidential election.  Chung won just 26.3 percent of the 
vote compared to 48.7 percent for Lee Myung-bak, the 
conservative candidate.  More telling, candidates opposed to 
Roh -- Lee Myung-bak and Lee Hoi-chang -- won 63.8 percent, 
compared to 36.2 percent for progressive and left-wing 
candidates.  According to a senior Blue House official, Roh 
expected a defeat, but not by such an enormous margin.  Over 
the past two months, Roh has apparently been drinking heavily 
with close friends and aides, expressing deep disillusionment 
at the turn of events. 
 
¶4.  (C) Most hurtful for Roh is the blame for the defeat 
heaped on him even by his former supporters.  His party 
stalwarts are openly lamenting Roh's inept performance, 
virtually unanimous in tracing Lee Myung-bak's victory to 
Roh's mishandling of state affairs.  Centrist party 
officials, such as former lawmaker and Roh campaign advisor 
Chyung Dai-chul, blame Roh for ignoring party politics, 
hiring incompetent staff, and making frequent public speaking 
gaffes.  Mostly, however, they blame him for implementing 
leftist policies, especially toward North Korea and on social 
issues such as education and real estate ownership, that are 
unacceptable to mainstream South Koreans. 
 
¶5.  (C) On the other hand, Roh's leftist supporters note that 
Roh turned his back on his core support base when he pushed 
through the KORUS FTA and sent troops to Iraq.  They were 
also deeply disappointed that Roh's rhetoric was far louder 
than his action on economic development, especially his 
failure to do anything about the ever-increasing gap between 
rich and poor.  For some time, even the leftists were tired 
of Roh's inability to execute "change," criticizing his 
policies as too ideological and sentimental, and chiding Roh 
 
himself for being inflexible and stubborn. 
 
¶6.  (C) Perhaps the most telling sign of widespread public 
discontent can be seen in the youngest group of voters who 
were instrumental in voting him in during the chaotic 2002 
presidential elections.  In a November 2007 survey of Seoul 
university students, the younger generation expressed the 
greatest displeasure with Roh's handling of state affairs 
(only 12.1 percent approved), education policies (14.6 
percent), social polarization (16.1 percent), and 
labor/employment policies (17.5 percent).  Professor Kang 
Won-taek of Soongsil University said, "It may be 
understandable for a liberal government to increase taxes, 
but the problem was that the people couldn't feel the 
benefits in return, since the education and housing prices 
soared over the past decade."  There was no group that stayed 
loyal to Roh -- even in the traditionally liberal southwest 
Jeolla region, where liberal candidates typically receive 
over 90 percent support, Chung Dong-young won only 80 
percent. 
 
---------------------- 
TOO EARLY TO BE ANGRY? 
---------------------- 
 
¶7.  (C) Although numbering only a few, there are still 
defenders of Roh Moo-hyun.  One of them is Park Sun-won, who 
has been a senior Blue House staffer since the beginning of 
Roh's term.  Granted, Roh has been clumsy and stubborn, Park 
said, but Roh will be remembered for reducing the power of 
the government, introducing transparency in government, and 
providing opportunities to women and other disadvantaged 
segments of the population.  Even Roh's detractors admit that 
under Roh's presidency, there have been significant gains: 
 
-- A reduction in the power and authority of the Prosecutors' 
Office, the National Tax Office, and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  Traditionally, these three 
offices have been the tools of choice for the Blue House to 
threaten and control its detractors.  Victims have ranged 
from political opponents to newspapers to big business.  The 
consensus view is that abusive practices by these three 
offices have declined dramatically under Roh. 
 
-- A reduction in corruption.  Along with the diminished 
roles of the prosecutors, tax officials and NIS, there has 
been a reduction in corruption.  Roh's presidency has been 
largely free of illegal political funds, corruption and 
bribery scandals.  If Roh is to get into legal trouble, most 
pundits speculate, it will be because of suspicions that he 
had a role in covering up for illegal fundraising by the 
previous president, Kim Dae-jung. 
 
-- A decrease in regionalism.  A passionate ideologue, Roh 
was elected on a center-left policy platform.  Roh's 
continued adherence to progressive policies, especially his 
founding of the Uri Party, has made South Korean politics 
based more on policies than regions.  Regionalism is still 
alive and well, but its influence is less pervasive.  As 
noted, Chung Dong-young, for example, received only 80 
percent of votes from Jeolla Provinces, compared to 92.9 
percent for KDJ in 1997 and 93.2 percent for Roh in 2002. 
 
-- An increase in human rights awareness.  Roh's 
Administration created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which 
was instrumental in passing anti-trafficking and 
anti-prostitution laws.  Also significant, Roh himself was 
very much out in front in advocating measures to correct 
societal imbalances resulting from urbanization and 
globalization, although he fell short of passing any concrete 
legislation. 
 
¶8.  (C) On security issues, Roh also chalked up a few gains. 
While many criticize his North Korea policy, he achieved a 
summit with Kim Jong-il, opened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and expanded economic cooperation that even many 
critics agree helped ease tensions on the Peninsula.  Even on 
U.S.-ROK relations, while Roh was much criticized throughout 
the election campaign by the conservatives, he was 
accommodating in relocating the Second Infantry Division and 
USFK headquarters to Pyeongtaek, dispatching troops to Iraq, 
 
and concluding the KORUS FTA negotiations.  The U.S. and 
Korea also agreed to transfer operational wartime control 
(OPCON) to the ROK during Roh's tenure, and were able to 
settle longstanding differences over the environmental 
standards to be met in the return of military bases and camps. 
 
------- 
COMMENT 
------- 
 
¶9.  (C) Roh's approach to the presidency was a radical 
departure from the political traditions in South Korea 
represented by the "Three Kims" (Kim Dae-jung, Kim Young-sam 
and Kim Jong-pil).  Promising an end to "boss" politics, Roh 
made the presidency approachable.  On taking office, Roh had 
unprecedented public meetings with citizens and even blogged 
directly on the Blue House web site, arguing his case ranging 
from why Korea needed educational reform to the evils of 
Japanese colonial rule.  Roh promised that he could 
fundamentally renovate Korean politics and selflessly push 
forward with far-reaching political reforms.  These were 
lofty, probably unattainable goals, but made worse by Roh's 
personal style, which many Koreans found distasteful.  Still, 
these remain goals and policies that attract a large 
following in Korea.  They will now have to find a new 
champion and, over time, Koreans may well conclude that Roh 
advanced their goal of establishing the center-left as a 
force capable of and prepared to hold the reins of 
government.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Intelligence]
5)
[Korea (North)]
6)
[Korea (South)]
7)
번역 주: 영어를 그대로 그대로 옮기면 ‘청와대 수석 비서진’이라고 해야 겠으나 당시 정부에 정식 직책인 ‘통일안보비서관’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