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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SEOUL2285 2008-11-28 06:32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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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반북 민간단체 전달 살포 계속한다고 공언

기 밀 SEOUL 002285 국방부망 배포1)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1/28/2018 태그: PROP2), PREL3), KS4), KN5) 제 목: 반북 민간단체 전달 살포 계속한다고 공언 참조: 가. SEOUL 002282 나. SEOUL 002178 참조하는 전문: 08SEOUL2390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6).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4/18 12:09

1. (기밀) 요점: 11월 26일 정치 공사 참사관은 가중되고 있는 남북 관계 긴장을 촉발한 반북 전단 살포의 책임 당사자인 박상학7)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회동하였다. 박상학은 통일부와 민간단체 등의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지만,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음번 전단 혹은 박상학이 부르는 말인 “풍선 엽서”는 바람의 상황에 따라 이르면 12월 1일 판문점 근처에서 날려 보낼 수 있다. 박상학은 그의 단체가 정부 또는 돈 많은 개인의 기부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금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하였다. 박상학은 한국 정부가 그가 믿기엔 자신의 단체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털어놓으며, 그 이유는 한국 정부가 “진짜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가 만든 민간단체를 폐쇄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양 엘리트의 아들로서 박상학은 북한에서 밝은 미래가 보장되었지만, 대남 공작원으로 근무하던 그의 부친이 북한 당국자와 충돌을 빚으면서 1999년에 북한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박상학은 한국의 첩보 기관인 국정원의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난 전 북한 장교 출신의 다른 탈북자와 2001년 결혼하였다. 요약 끝.

2. (기밀) 11월 26일 정치 공사 참사관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회동하였다. 그는 전단 살포 활동 때문에 현재 악화하는 남북관계의 한복판이 서 있다. 박상학은 특히 통일부뿐만이 아니라 시민 단체와 교회 단체로부터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격렬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결과로 11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3개월간 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북한이 개성관광을 비롯한 열차 운행, 개성공업지구 통행 제한 등 국경 통행을 제한하는 새로운 조치를 발표하였다(참조전문 가). 그러면서 그가 애초의 결정을 뒤집기가 용이해졌고, 11월 24일 실제로 그렇게 했다.

3. (기밀) 판문점 근처에서 예고된 다음 전단 살포는 바람에 상태에 따라 이르면 12월 1일이나 2일경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박상학은 미화 700달러 상당의 1달러 지폐와 중국 5위안 지폐를 모았다. 박상학은 만일 한국 정부가 자신의 민간단체를 폐쇄하길 진짜 원한다면,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전단 활동을 막으려는 시도가 없는 걸 보면 한국 정부가 실제는 자신의 전단 활동을 지지함을 증명한다고 박상학은 털어놓았다. 또한, 박상학은 한국 정부가 “현재로선 여타 다른 도구를 보유한 게 없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박상학은 그가 전단 활동을 시작하기로 한 11월 25일 이래로 보수 단체 사이 그에 대한 지지가 지대하게 증가하였다고 말하였다.

4. (기밀) 박상학은 자금 부족이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살포한 전단의 효과는 북한의 반응을 볼 때 명백하다고 그는 말하였다. 전단은 북한 사람들을 교육하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에 비해 라디오 방송은 그 영향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민간단체와 정부 단체는 그의 전단 활동은 무시하면서도 방송 자금은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다.

5. (기밀) 박상학은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과거 1년에 대략 미화 85,000달러를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으로부터 받았지만, 동 기금은 2년 전 달걀 세례 사건 이후 중단되었다. (주석: 전직 안기부 직원을 지냈고 당시 국회정보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정형근은 수년 동안 북한에 간첩을 보낸 책임 당사자인데 2006년 7월에 국가보안법 수정을 제안했었다. 한국의 보수단체는 그 제안에 반대하였다. 화풀이로 던진 달걀 세례 용의자가 바로 박상학이다. 주석 끝.) 박상학은 그 사건에도 전혀 검찰의 기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어떻게 지원금 중단의 소재가 될지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박상학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 관계자와 회동하였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국립민주주의기금과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정체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 축출을 위한 반 차베스 세력의 쿠데타 계획을 몇 달 앞두고 부시 정부는 미국국제개발처국립민주주의기금(NED)을 통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차베스 반대 세력에게 수백만 달러를 지원했으며8), 반북 전단살포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연합에 2008년까지 13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국제 뉴스를 보면 볼리비아 대통령이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야당을 지원한다며 추방하기도 했다.9)

6. (기밀) 박상학은 전단 비용으로 화제를 돌려 미화 5,000달러 정도면 반북 전단이 가득한 풍선 하나를 날려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그가 바꾼 이름인 “풍선 엽서” 3만 개 정도에 해당한다. 현금이 딸린 전단은 비용을 더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통 200개 전단마다 미화 1달러를 첨부한다. 박상학은 북한의 친척에게서 소식을 듣기론, 북한 서남지역 부근에 떨어진 1달러 지폐가 담긴 전단은 북한과 중국 국경 부근에 빠르게 알려졌으며 지역 주민은 전역에서 전단을 찾아다닌다고 말하였다. 암시장에서 1달러를 환전하면 한 달 임금에 상당한다. 마찬가지로 북한 당국자들도 감 잡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1달러 지폐를 환전하는 자들이 곤란한 지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상학은 이제 중국과 북한 경계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북한 5,000원권 지폐를 전단에 사용할 계획이다.

7. (기밀) 박상학의 부친은 남한으로 요원을 남파하는 책임을 진 고위급 대남 공작원이었다. 1997년 요원 다수가 조직을 배신하면서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에 박상학은 평양 소재 사회주의청년동맹 선전선동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평양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박상학은 김일성 대학과 김책공업대 체신학부를 졸업했기에 그의 장래는 밝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가 부친과 접촉할 당시 부친은 일본에 체재하고 있었다. 숙청이 임박한 상태에서, 박상학은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중국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박상학과 모친, 형제자매 두 명과 함께 압록강을 횡단했고 1999년 베이징을 경유해 남한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상학은 어린 조카들을 비롯해 먼 친척들은 박상학의 소재와 관련해 심문을 받은 이후에 사망했음을 알게 되었다. 박상학은 국정원을 통해 만난 다른 탈북자인 전 북한군 장교와 결혼하였고, 슬하에 6살 먹은 자녀가 있다.

8. (기밀) 박상학과 6명의 직계 가족 역시 탈북자로 자유북한운동연합 직원의 70%를 구성하고 있다. 최근까지 세 개의 민간단체가 북한에 전단을 보내곤 했다: 박상학의 자유북한운동연합, 납북자가족모임10), 그리고 한 종교 단체(번역 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국민적 비난을 받은 이후에 10월에 모든 전단살포를 중단하였다. 납북자가족모임은 여전히 버티고 있지만, 실제 공헌도는 없다. 그래서 박상학의 조직이 당분간 대북 전단 살포의 책임에 맡은 유일한 단체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의 노력은 여전히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 민간단체의 실태 "납북자가족모임"으로 언론에 알려졌지만, 그 실체는 탈북자동지회, 그리고 그 산하 2개 단체를 보면 박상학과 일가족이 주도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그리고 종교 단체인 빤스 목사 전광훈이 뒷돈을 대는 것으로 주진우 기자에 의해 밝혀진 “대한민국아버이연합”이다. “탈북자아바이연합”이 실제 명칭이 아닌지 모르겠다.

9. (기밀) 남북한 사이의 선전전은 한반도의 분단만큼이나 해묵은 일이며, 전단을 비롯해 때때로 가벼운 라디오를 풍선에 담아 보내는 일도 오래되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선전보다도 박상학의 소자본 사업만큼 북한을 괴롭혔던 기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박상학의 전단은 아주 간단한 디자인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점에서 종교적이거나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양상의 예전 전단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박상학의 가장 최근 전단은 김정일의 건강, 김정일의 첩과 전처, 딸린 자손을 포함한 가계도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물론 다른 핵심적인 차이점은 전단에 미화 1달러 지폐나 소액의 중국 위안화 지폐를 전단에 첨부한다는 점이다. 박상학은 이러한 혁신을 겸비하여 북한 주민들이 전단을 구하러 다니도록 담보하고 있는데, 그의 전단이 엄청나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스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8SEOUL2285.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2285 
 
SIPDIS 
 
E.O. 12958: DECL: 11/28/2018 
TAGS: PROP [Propaganda and Psychological Operation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KS [Korea (South)], KN [Korea (North)] 
SUBJECT: ANTI-DPRK LEAFLET DROPPING WILL CONTINUE, VOWS NGO 
 
REF: A. SEOUL 002282 
     B. SEOUL 002178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On November 26, POL M/C met with 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Chair Park Hak-Sang, responsible for 
sending anti-DPRK leaflets, triggering mounting tensions in 
South-North relations.  Park said he was facing increasing 
pressure to stop, including the Ministry of Unification and 
fellow NGOs, but was determined to carry on.  The next batch 
of leaflets, or "balloon postcards," as Park called them, 
could be sent as early as December 1 near Panmunjom, pending 
wind conditions.  Funding was the biggest concern, Park said, 
as his organization does not receive government or big-ticket 
private donations.  Park confided that he believed the ROKG 
is using his organization as a tool, because the government 
has not shut down Park's NGO, even though it could do so 
"anytime, if they really wanted to."  As the son of Pyongyang 
elite, Park had a bright future in North Korea, but was 
forced to defect in 1999, when his father, who worked for a 
DPRK intelligence agency, ran afoul of the authorities.  Park 
married another defector, a former DPRK Army officer, in 
2001, after meeting her through an introduction by NIS, the 
South Korean spy agency.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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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ure from MOU, but Renewed Support From Public 
--------------------------------------------- 
 
¶2. (C) Pol M/C met November 26 with 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Chair Park Sang-hak, now at the center of the 
deteriorating South-North relations because his leaflet 
activities.  Park said that he had come under intense 
pressure to stop sending leaflets, especially from the 
Ministry of Unification, but also from civic groups and 
church organizations.  As a result, he announced through a 
November 22 press conference he would suspend leafleting for 
3 months.  However, within hours, Pyongyang announced new 
measures restricting border access, including stopping 
Kaesong City Tours and, stopping rail services and 
restricting access to Kaesong Industrial Complex (Ref A).  It 
was therefore, easy for him to reverse the earlier decision, 
which he did on November 24. 
 
¶3. (C) The next launch, planned from near Panmunjom, could be 
as early as December 1 or 2, depending on the wind.  So far, 
Park has collected 700 USD worth of one-dollar bills and 
Chinese five-Yuan notes.  Park confided that if the 
government really wanted to shut his NGO down, they could, 
but a lack of ROKG effort to stop his activities served as a 
proof to him that the ROKG is in fact supportive of his 
activities.  Park also believed that the ROKG was using him 
as a tool because "they don't have any other tool at this 
time."  Park said that his support among conservative groups 
had increased substantially since November 24, when he 
decided to continue the activities. 
 
--------------- 
Lack of Funding 
--------------- 
 
¶4. (C) Park said that lack of funding was the biggest 
challenge.  The effectiveness of his leaflets was obvious 
from Pyongyang's reaction, he said.  The leaflets were having 
an enormous effect in educating -- and destabilizing -- the 
North.  In contrast radio broadcasts had limited impact, yet, 
NGOs and government groups continued to fund them, while his 
activities were ignored. 
 
¶5.  (C) Park recounted that 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had 
been given approximately USD 85,000 a year from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 in the past, but this was cut 
off after an egg throwing incident two years ago.  (NOTE: 
Then-Chairman of the National Assembly Intelligence Committee 
and a former intelligence officer Chung Hyung-keun, who was 
responsible for sending spies to North Korea for a number of 
years, proposed a change of the National security law in July 
2006.  ROK conservative groups opposed this proposal.  Park 
was the alleged angry egg thrower.  END NOTE.)  Park did not 
see how this served as material for cutting off aid, since he 
was never prosecuted for this incident.  Park said that he 
met with NED to explain the situation, but no avail to date. 
 
¶6.  (C) Turning to the costs of leafleting, Park said that 
about USD 5,000 could send one balloon-full of anti-DPRK 
leaflets, or around 300,000 "balloon postcards" as he renamed 
them recently.  Leaflets with cash attached would cost more, 
he added.  Usually, he attaches USD 1 bill to one in 200 
leaflets.  Park said that he heard from a relative in North 
Korea that the leaflets with USD 1 bills dropped in the 
southwest part of North Korea became known around the 
DPRK-Chinese border quickly, with locals searching everywhere 
for the leaflets.  One dollar exchange at black market was 
equivalent to a month wage.  Authorities also caught on too, 
because those changing one dollar bills were getting into 
trouble.  So, Park now plans to use in the leaflets NKwon 
5,000 bills, which he could get easily from the Chinese-North 
Korea border areas. 
 
---------------- 
Personal History 
---------------- 
 
¶7.  (C) Park's father was a high ranking DPRK intelligence 
officer responsible for sending agents to South Korea.  In 
1997, many agents betrayed the organization, leading to a 
huge purge.  About that time, Park was working in the Central 
Youth Propaganda Committee in Pyongyang.  As a member of the 
Pyongyang elite, Park had graduated from the Kim Il-sung 
University and Kim Chaek Technical University and had a 
bright future ahead of him, when he was contacted by his 
father, who was then stationed in Japan.  Facing an imminent 
purge, Park had no choice but to flee to China.  Park, his 
mother and two younger siblings crossed the Yalu River and 
flew into South Korea through Beijing in 1999.  Park later 
learned that his extended family members, including young 
nieces and nephews, died after an interrogation regarding 
Park's whereabouts.  Park married another defector, a former 
DPRK military officer whom he met through the ROK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and they have a six-year-old child. 
 
¶8.  (C) Park and his six immediate family members, also 
defectors, make up 70 percent of the 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staff.  Until recently, three NGOs used to send 
leaflets to North Korea: Park's 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the Organization for South-North Family Reunions, and 
a Christian organization.  The Christian organization stopped 
all leafleting activities in October after public criticism. 
The family reunion group is still hanging on, but with no 
real contribution.  Hence, Park's organization serves as the 
sole organization responsible for sending leaflets to North 
Korea for the time being, and his efforts remain in the 
spotlight. 
 
------- 
Comment 
------- 
 
¶9.  (C) Propaganda warfare between the two Koreas is as old 
as the division of the Peninsula, and sending balloons with 
leaflets, and sometimes with light-weight radios, is just as 
old.  Yet, we cannot recall any other propaganda tool that 
has bothered Pyongyang as much as Park's shoestring 
operation.  Quite simple in design, Park's leaflets are 
different in that they are informational; previous leaflets 
tended to be either religious or a call to overthrow the 
regime.  For example, Park's most recent leaflets detail Kim 
Jong-il's health, and his family tree, including Kim 
Jong-il's various wives, mistresses and their children.  The 
other key difference is, of course, attaching to the leaflet 
USD 1 dollar bill or small Chinese notes.  With this 
innovation, Park has made sure that North Koreans look for 
the leaflets, because they have an enormous value. 
STEPHENS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Propaganda and Psychological Operations]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Korea (South)]
5)
[Korea (North)]
6)
POL M/C Joseph Yun.
7)
번역 주: 원본에는 '박학상'이라고 했는데 '상'과 '학'이 뒤봐 꼈다. 주한미국대사관 전문에서 이름이 잘못 표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2문단에는 정확히 표기되어 있다
8)
번역 주:다큐멘터리 War on Democracy
9)
번역 주:알자리라 INSIDE
10)
번역 주: '탈북자동지회'가 주도하는 단체, 자세한 내용은 제 목: 탈북자동지회 탈북자의 지위 향상과 결속력 추구와 아래의 납북자가족모임, 15일 대북전단 살포 보류 한겨레 기사를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