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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SEOUL1719 2008-08-29 06:37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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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국정부 남북관계의 시기를 저울질

기 밀 SEOUL 001719 국방부망 배포1)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8/29/2018 태그: KS2), KN 3), PGOV 4), PREL 5) 제 목 : 한국정부 남북관계의 시기를 저울질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6)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번역 주: 트위터 사용자 이름) — Micheal H. Rhee 2011/10/02 04:42

1. (기밀) 이명박 정부가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한국 정부는 갈수록 올해 북한과의 대화를 안 하는 쪽으로 체념하는 분위기이며 2009년 즈음에나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주길 기대하는 듯하다.

  • 청와대와 통일부 관리에 의하면 “햇볕정책”의 출범을 도왔던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남북 관계를 상호주의 토대 위해 재편할 의지가 확고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 남북 관계가 틀어진 까닭은 상호주의와 비핵화에 대한 관심을 주문한 이명박의 주장에 대해 북한이 반동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빈발하는 적대적인 언사와 이명박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7월 11일 남한 관광객의 금강산 피격 이후 교착상태; 북한이 1991-1992 기본합의서와 부속 한반도 비핵화 합의문은 무시하고 2000년 8.15 남북 공동성명과 2007년 10.4 남북 합의 기초한 회담을 고집.

2. (기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그가 김대중 대통령 아래에서 외교안보수석(2000-2001) 이었을 당시에 햇볕정책의 개발과 구현을 도왔다. 김하중이 판단한 애초 햇볕정책의 취지는 유준하 청와대 통일비서관에 의하면 북한에 협력의 손길을 뻗어 북한의 변화를 촉발하려는 것이었지만, 남한이 계속 접촉을 “구걸”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북한이 변화지 않자 미몽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김하중은 기존의 접근 방식을 바꾸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3. (기밀) 유준하는 김하중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와 관련 인내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장관 업무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7일을 일한다. 그는 북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기도를 비롯해 하루에 2시간을 기도한다고 유준하는 말했다. 김하중의 종교적 관점이 북한 정권을 협상의 상대로는 너무 악한 정권으로 본다는 의미인지 묻자, 유준하는 그와는 반대로 북한을 상대로 실용적인 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하중의 종교 성향은 이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유준하는 이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통일부 폐지 위협에 시달린 이후에 열외 취급을 당하면서 외교통상부가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지금은 김하중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점차 통일부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4. (기밀) 통일부와 외교통상부는 이러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남북 정책을 제창했다. 외교통상부의 북핵정책과 과장 함상욱은 8월 28일에 대북 접촉 재개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김건 북핵협상과 과장은 6자 회담과 에너지 논의는 베이징 채널을(북한 대사관) 통해서 계속할 거라고 말했다.

5. (기밀) 통일부 정책기획과 김정노도 똑같이 “서두르지 않겠다”란 말로 통일부의 대북 접근 방식을 설명했다. 그와 동료들은 통일부가 요즘 북한과의 궁극적인 회담을 준비하며 정책 분석 측면에 분주하다고 말했다. 이는 작년 이맘때 즈음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정상회담을 위해 전속력으로 준비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다른 통일부 관리인 통일부 사회문화교류협력 과장 박광호는 통일부가 한국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을 근거로 삼아 아리랑 축전 참가를 위해 북한에 가길 원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교원 노조 및 그 밖의 단체의 신청을 거부하느라 바쁘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6. (기밀) 한국 정부 관리들은 남한 여성 관광객의 7월 11일 금강산 피격 이후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 국민 “정서”을 이유로 들며 지금까지 세계식량계획의 대북 식량 원조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유준하는 통일부 여론조사를 언급하길(공개되지 않음) 7월 11일 피격 사건 이전에는 국민 40%만이 대북 식량 제공에 찬성했는데 이후 찬성 비율이 17%대로 떨어졌다고 언급했다. 좌파 성향 한겨레 신문은 과거 3개월 동안 3개의 사설을 통해 한국 정부가 북한의 식량 원조 요청을 기다린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고 역설하며 세계식량계획을 통한 원조를 촉구하고 조건 없는 직접적인 인도적 원조 재개를 주문하였다. 그러나 그 이외에는 심지어 한겨레의 사설에서도 대체로 남한 정부의 강경 기조를 지지한다.

7. (기밀) 우리가 진단하기에 한국 정부는 금강산 사건을 대화 재계의 걸림돌로 삼을 게 아니라 이 사건을 지난 일로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지만, 쌍방이 참호를 파고 눌러앉은 형국이다: 남한은 사망 사건의 조사를 거듭 주장했고 북한은 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남한에 대해 관광객이 떠돈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감독하고 있는 통일부 교류협력국 김훈아는 8월 27일에 일의 진척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설래 절래 흔들면서 답하길 북한이 사과하라고 고집을 부려 어떤 논의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양측이 적십자 회담을 개최하는 방법이 한 가지 돌파구이지만, 김정노는 북한이 그런 접근도 거절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8월 28일 언론은 현대 아산 최고경영자 윤만준이 사임했다고 했는데 사임 사유가 금강산 사건을 논의 목적의 7월 12~14일 평양 방문에서 활로 모색에 실패했기 때문인 듯하다.

8. (기밀) 왜 한국 정부는 북한이 2009년에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지 묻자, 청와대 관리 유준하는 과거 두 정부인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서로 적응하기 위한 기간이 1년 정도 소요된 점을 우리에게 상기하였다. 그는 가을 추수기가 9월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당장에 북한이 식량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2009년에 식량 사정이 악화할 공산이 큰 이유는 북한이 예년과 같은 30만에서 40만 톤 상당의 비료를 한국으로부터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준하는 북한은 한국 정부와 교섭할지 결정하기에 앞서 새 미국 정부가 취임해서 북한에 대해 반응을 보이길 기다리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9. (기밀) 북한이 이명박의 “비핵개방 3000” 제안을 격렬하게 거부함에 더해 이명박을 역도, 사기협잡꾼이라고 부르며 인신공격을 하고 있고 금강산 피격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남북 사이 분위기가 얼어 붙였다. 그러나 남북한 어느 쪽도 문호를 전부 닫으려 하지 않는다: 개성공업지구는 계속 가동되고 있고 3만 이상의 북한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으며 현대 아산이 우리에게 말한 바로는 연말에는 북한 노동자가 두 배가 될 수 있는 상태이고 하루 일정의 개성시 여행도 계속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남한 민간단체가 제공하는 농업과 의료, 그 밖의 원조에 대해 계속 환영하고 있다. 쌍방은 대화 석상에 마주하기에 앞서 금강산 피격 사건과 북한의 적대적인 레토릭을 과거 지사로 정리하는 방안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다만 양측은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을 극복한 바 있다. 통일부 관리들은 예전에 남북한 대화에 참여한 많은 북한 관리들이 부패나 여타 혐의로 숙청되었다고 믿고 있는데, 그 점도 남북한 대화 재계를 힘들게 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엉터리 보도를 동아와 중앙, MBC가 확대 재생산 아래 연합뉴스,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사는 통일 뉴스의 단독 보도로 <단독> 최승철, 직총 부위원장으로 복귀 통일뉴스8-) 모두 오보 아니면 날조 보도로 밝혀졌다. 소위 `최승철 숙청설` 거론하는 한국의 당국자는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뿐만 아니라 문무홍 개성공단관리위원장, 이 전문에 등장하는 유준하 청와대 비서관 등 부지 기수다. 한국의 소위 고위급 공무원의 수준이 이렇다.

10. (기밀) 이명박 대통령은 대화 재계를 바란다는 한국 정부의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이명박은 8월 15일 광복절 연설에서 금강산에서의 “유감스러운 피격사건”이라고 한 후 바로 이어서 <q>“그렇지만, 평양이 전면적인 대화와 경제 협력에 나서길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놓쳐서는 안 될, 변화의 호기이기 때문입니다”</q>고 언급했다.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풀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11. (기밀) 쌍방에 남북 대화 성사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과거 합의문의 위상 문제다. 한국 정부 관리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논의에 유연한 자세로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 모두 네 차례의 대표적인 남북 합의에 기초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고수할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한다.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1992년 2월에 발효되었으며 보통 “기본합의서”라고 부른다;
  •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1항에 보면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고 나온다;
  • 2000년 6월에 『6.15 남북공동선언』; 그리고,
  • 2007년 10월에 『10•4 남북정상선언』

12. (기밀) 그러나 북한은 “2000년 6.15 공동 성명과 2007년 10.4 선언 만을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한이 특히 2000년 6.15 공동 성명에 대해서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거부하는 근거로 본다는 점을 시사하며 “자주통일의 대강(大綱)“으로 추앙한다. 한편 2007년 10월 합의도 한국 정부의 평가에 의하면 오천만 미불에서 일억 미불 상당의 경제 사업이 포함된 까닭에 북한에게 확실히 매력적인 합의다. 그러나 북한은 기본합의서에 관한 세부적인 논의에 절대로 합의하지 않았다. 기본합의서는 다양한 분야 교류와 협력을 주문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거부하고 있으며, 남한 정부의 비핵화 요구 언급에 대해 발끈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근본적인 이견을 극복하는 일이 이명박식 실용주의의 시험이 될 것이다. 남한 전문가에 의하면 이러한 실질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북한이 그 밖의 모든 합의보다 최근 2개의 합의를 우선시하는 까닭은 2가지 합의를 김정일이 협상해서 타결했기 때문이다; 앞선 남북 합의는 김일성의 지휘 하에 타결된 합의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8SEOUL1719.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719 
 
SIPDIS 
 
E.O. 12958: DECL: 08/29/2018 
TAGS: KS [Korea (South)], KN [Korea (North)],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SUBJECT: ROKG BIDING ITS TIME ON SOUTH-NORTH RELATIONS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un.  Reasons 1.4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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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 
 
¶1.  (C)  -- Six months into th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the ROKG appears increasingly resigned to having no dialogue 
with North Korea this year, expecting the North to come to 
the table sometime in 2009. 
 
-- Minister of Unification (MOU) Kim Ha-joong, who helped 
launch "Sunshine Policy," is determined that South-North 
relations be reframed on the basis of reciprocity and has 
gained President Lee Myung-bak's confidence, according to 
Blue House and MOU officials. 
 
-- South-North relations have soured because of the DPRK's 
reaction to Lee's call for reciprocity and attention to 
denuclearization; the spate of hostile rhetoric and ad 
hominem attacks on Lee from the North that followed; the 
impasse following the July 11 Mt. Kumgang shooting of a South 
Korean tourist; and, more fundamentally, the North's 
insistence that discussions be based on the June 15, 2000 and 
October 4, 2007 summit agreements without regard for the 
1991-1992 Basic and Denuclearization agreements.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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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 MINISTER PATIENT, FOCUSED ON RECIPRO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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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 Minister of Unification Kim Ha-joong helped develop 
and implement Sunshine Policy when he was National Security 
Advisor (2000-2001) under then-President Kim Dae-jung.  Kim 
believed in the initial intent of the policy, which was to 
begin transforming North Korea by reaching out, according to 
Yu Joon-ha, Assistant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Unification Policy, but grew disenchanted when no changes in 
the North resulted, while the South continued to "beg" for 
more contact.  Kim was now determined to change that 
approach. 
 
¶3. (C) Yu said that Kim remains patient about resuming 
dialogue with the North, but at the same is totally focused 
on his portfolio:  he works seven days a week, and told Yu 
that he prays two hours per day, including for the welfare of 
the North Korean people.  Asked whether Kim's religious views 
meant that he saw North Korea's regime as too evil to 
negotiate with, Yu said that, on the contrary, Kim is ready 
to have pragmatic discussions with the North, and that Kim's 
religious leanings line up with President Lee's.  Yu said 
that when Lee took office, the MOU was sidelined (after being 
threatened with elimination) and MOFAT began playing a 
dominant role in inter-Korean policy.  But Kim had now gained 
Lee's ear, gradually raising MOU's influence again. 
 
¶4. (C) MOU and MOFAT officials echoed this description of a 
patient ROKG inter-Korean policy.  MOFAT's North Korea 
Nuclear Policy Division Director Ham Sang-wook said on August 
28 that there was "no rush" to reestablish contact with the 
North generally, though Nuclear Negotiation Division Director 
Kim Gunn said that Six-Party and energy discussions continue 
through the reliable Beijing channel (DPRK Embassy). 
 
¶5. (C) MOU Policy Planning Officer Kim Jong-ro also used the 
term "no rush" in describing his Ministry's approach to North 
Korea.  He and colleagues said that MOU is now busy on the 
policy analysis side, preparing for eventual discussions with 
the North, whereas last year at this time they were preparing 
full speed for the October 2007 summit between President Roh 
Moo-hyun and Kim Jong-il.  Another MOU official, Director of 
Inter-Korean Social Exchanges and Cooperation Park Kwang-ho, 
told us that his office is busy rejecting requests from South 
Korean Democratic Party legislators, teacher's union members 
and other groups that want to travel to North Korea for the 
Arirang Festival, citing negative ROK public opinion as the 
jus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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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DIALOGUE LIKELY THIS YEAR, BUT PROBABLY NEXT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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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 ROKG officials also cite negative public "emotion" 
toward the North, in the wake of the July 11 Mt. Kumgang 
shooting of a South Korean female tourist, as a reason for 
refusing, so far, the World Food Program's (WFP) appeal for 
food aid for the North.  Yu cited MOU polling date (not 
published) indicating that only 40 percent of the public 
supported providing food aid to the North before the July 11 
shooting, but that such support had dropped to 17 percent 
afterward.  The left-leaning Hankyoreh newspaper has 
published three editorial in the past three months calling 
for aid through the WFP and a return to unconditional 
humanitarian aid directly to the North, arguing that it is 
unreasonable for the ROKG to insist on a request for food aid 
from the DPRK.  But otherwise, even Hankyoreh's editorials 
generally support the ROKG's firm stance. 
 
¶7. (C) Our assessment is that the ROKG would like to get past 
the Mt. Kumgang incident, rather than have it stand in the 
way of a resumption of dialogue, but both sides have dug in: 
the South insisting on an investigation of the death and the 
North not only rejecting that but calling on the South to 
apologize for allowing a tourist to stray.  Hoona Kim, Deputy 
Director of MOU's Trade Support Division, who oversees the 
Mt. Kumgang tourism project, shook her head when asked on 
August 27 whether there was any movement on the case, saying 
that the North's insistence on an apology precluded any 
discussions.  One possible way out is to have the two sides' 
Red Cross organizations open discussions, but Kim Jong-ro 
thought that the North would reject such an approach.  Press 
reports on August 28 said that Hyundai Asan CEO Yoon Man-joon 
had resigned, perhaps because of his failure to make headway 
on the shooting during a July 12-14 visit to Pyongyang to 
discuss the case. 
 
¶8. (C) Asked why the ROKG expects the DPRK to come to the 
table during 2009, Blue House official Yu reminded us that 
the past two ROK Administrations, Kim Dae-jung's and Roh 
Moo-hyun's, took about a year to start dialogue with the 
North, as both sides adjusted to the other.  He added that 
the ROKG view is that the DPRK does not face a food emergency 
now, with the fall rice harvest expected to begin in 
September, but that 2009's food situation would likely be 
worse, because the DPRK had not received its customary 
300,000-to-400,000 metric tons of fertilizer from the ROK. 
Yu also assessed that the DPRK is waiting for a new U.S. 
administration to take office, and react to North Korea, 
before deciding whether to engage with the RO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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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RULES FOR DISCUSSION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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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 The South-North atmosphere is frosty because of the 
North's vehement rejection of Lee's "denuclearization, 
openness, USD 3000" proposal, the North's ad hominem attacks 
calling Lee a traitor and charlatan, and the unresolved Mt. 
Kumgang shooting. But neither side has tried to shut all the 
doors: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continues to operate, 
employs over 30,000 North Korean workers, a number that 
operating company Hyundai Asan told us could double by the 
end of the year, and daily tours to Kaesong City are 
continuing.  Similarly, the DPRK continues to welcome ROK 
NGOs providing agricultural, medical and other assistance. 
The two sides will have to find a way to get past the Mt. 
Kumgang shooting and forget the North's hostile rhetoric 
before they sit down, but they have managed to overcome 
similar situations in the past.  MOU officials believe that 
many DPRK officials formerly involved in South-North talks 
have been purged, after corruption or other charges, adding 
to the difficulty of resuming dialogue. 
 
¶10. (C) President Lee Myung-bak has repeatedly signaled ROKG 
desire for reopening dialogue.  In his August 15 National Day 
speech, he cited the "regrettable shooting death" at Mt. 
Kumgang  but then immediately added, "Despite that, I have 
expectations that Pyongyang will come forward for 
comprehensive dialogue and economic cooperation because now 
is the most opportune time for the North to change."  Let's 
get past this impasse, Lee seemed to be saying. 
 
¶11. (C) The major impediment to the two sides agreeing to sit 
down is the status of past agreements.  ROKG officials say 
that the ROKG is prepared to be flexible in discussions with 
the North, but is determined to uphold the principle that 
discussions be based on all four major past South-North 
agreements: 
 
-- the "Agreement on Reconciliation, Nonaggression and 
Exchanges and Cooperation between South and North," which 
took effect in February 1992, commonly referred to as the 
"Basic Agreement"; 
 
-- the "Joint Declaration of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rticle 1 of which says "The South and 
North shall not test, manufacture, produce, receive, possess, 
store, deploy or use nuclear weapons"; 
 
-- the June 2000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and, 
 
-- the October 2007 "DPRK-ROK Summit Joint Declaration." 
 
¶12. (C) The DPRK, however, has called for only "fully 
implementing the June 15 (2000) joint declaration and the 
October 4 (2007) declaration."  The June 2000 declaration in 
particular is praised as a "milestone for independent 
national reunification," implying that the DPRK sees it as 
grounds for rejecting U.S. involvement on the Peninsula.  The 
October 2007 agreement, meanwhile, is clearly attractive to 
the DPRK because it contains 50-100 billion of dollars in 
economic projects, according to ROKG estimates.  But the DPRK 
has never agreed to talk in detail about the Basic Agreement, 
which calls for exchanges and cooperation in various areas. 
More important, the DPRK rejects the Denuclearization 
agreement, bristling at any ROKG mention of the need to 
denuclearize.  Getting past these fundamental disagreements 
will be a test of Lee's pragmatism.  Beyond the substantive 
concerns, according to South Korean experts, Pyongyang has 
put the two recent agreements above all else because Kim 
Jong-il negotiated and concluded them; the earlier agreements 
were reached under the auspices of Kim Il-sung.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Korea (South)]
3)
[Korea (North)]
4)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5)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6)
POL M/C Joseph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