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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971 2007-04-03 06:33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제목 : 한일 외무장관 회담 역사문제로 발목 잡혀

기 밀 SEOUL 000971 국방부망 배포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기밀해제: 04/03/2017 태그: PREL PGOV ECON KS JA 제목: 한국-일본 외무장관 회담 역사문제에 발목 잡혀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죠셉 윤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4/07/30 13:33

1. (기밀) 요약: 4월 2일에 이희섭 외교통상부 동북아 1과장은 송민순 외교부 장관과 방한 중인 타로 아소 일본 외무상 간의 3월 31일~4월 1일 사이 회담에서 (독도, 배타적 경제 수역, 자유무역협정, 문화 교류 등) 양자 문제에 더해 북한과 북동아시아 등의 논의도 포함해 위안부, 교과서, 야스쿠니 등의 역사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했다. 한일 회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이렇다 할 진전이 있기에는 한국과 일본의 견해 차이가 너무 컸다; 양측은 2007년 노 대통령의 방일을 논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희섭은 6월 3일 한국 한·중·일 3자 외무장관 회담 출범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요약 끝.

2. (기밀) 4월 2일에 외교통상부 이희섭 동북아 1과 (일본)과장은 3월 31일~4월 1일간 제주에서 한국 외교부 장관 송민순과 방한 중인 아소 타로 일본 외무성 장관 사이 장관급 회담의 전언을 대사관 정치 직원에게 제공하였다. 이희섭은 양국 장관이 3월 31일 토요일에 두 시간 회담에 이어 2시간 석찬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4월 1일 일요일에 두 장관은 10분여간 잠시 산책를 함께했다. 한일 회담은 역사 문제와 한일 문제, 북한과 역내 문제에 집중했다.

3. (기밀) 송민순 외무 장관은 모두 발언에서 “역사인식은 미래를 비춰보는 거울인데 굴곡된 거울을 통해서는 올바른 미래를 볼 수 없다”고1) 언급했다고 이희섭은 밝혔다. 일본은 반드시 자국의 역사를 분명하게 기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향후 일본의 역할과 역내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만 커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송민순은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역할을 부인한 일본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 아소 외무성 장관은 아베가 1993년 고노 담화를 재확인하고, 총리로서 사과를 표했던 3월 26일 일본 국회 발언을 재차 언급하였다. 이희섭은 최근 논란은 공식 석상 발언에 그가 보기에 더 능란했던 아베의 전임자 준이치로 고이즈미 정권에서는 불거지지 않았을 거라고 한탄하였다.

위안부, '협의(俠義)의 강제성은 없었다' …(중략)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협의(俠義)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궤변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사더니, 그의 복심이라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관방부장관은 “일부 부모가 딸들을 팔았던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일독을 권합니다.<문창재 칼럼>보기 딱한 아베 총리의 산술 서울신문

4. (기밀) 일본 교과서 관련해서 한일 양국 정부는 회담을 앞두고 자국의 입장을 만방에 알린 바 있다. 3월 30일 아소가 방한하기 하루 전날에 일본의 문부 과학성은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란을 사는 해설 부분을 묵과했거나, 독려한 고등학교 교과서 1차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외교통상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3월 30일에 일본 장관이 독도를(역주: 미 대사관은 동 전문에 전체에 걸쳐 '리앙쿠르 암도'란 표현을 사용했다.) 일본의 영토로 기술한 교과서를 통과시킨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성명을 냈다; 외교통상부는 또한 교과서 검정 승인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일 외무 장관 회담에서 아소는 일본 정부가 출판사에 교과서를 어떻게 기술하라고 명령할 수 없으며, 단지 지침을 제시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이희섭은 밝혔다. 송민순은 보통 교과서와 일본 정부를 구분하지 않는 관계로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고 대응하였다. (주의: 한국 지역 일간지는 4월 2일 논설에서 일본 문부 과학성은 양국 사이 해역을 “동해”라고 칭하는 한국의 주장을 무시하기 위해 교과서 내용 일부를 수정했고, 오키나와 전투 중에 일본군의 시민 집단자결 명령을 다루는 독해를 삭제하고, 또한 난징 학살에 사망자 수에 대한 수정 의견이 포함해 기술했다고 했다. 주석 끝.)

日교과서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중략) 당시 열한 살이었던 미야기 쓰네히코(宮城恒彦·73) 씨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시에 ‘미군과 영국군은 짐승이다. 붙잡히면 남자는 여덟 갈래로 찢기고 여자는 강간당한다’고 배웠다. (그런 분위기에서) 군이 섬 주민들에게 수류탄을 나눠줬다. 자결은 사실상 명령이었다.” 전투에 방해가 되는 주민들을 일본군이 스파이로 몰아 살해한 일도 적지 않았다. 유아가 살해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기자의 눈] 日, 교과서 내용 지우면 과거가 지워지나 동아일보

5. (기밀) 야스쿠니 관련해서 송민순은 1급 전범들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추앙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소 장관은 이 문제가 신사 관계자들이 결정할 일이며, 일본 정부는 이를 국가 문제로 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6. (기밀) 송민순과 아소가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 가능성을 논의했는지 묻자 이희섭은 일본 정부가 외무 장관 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의 방문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어려울 것”이라고 발표한 관계로 송 장관과 아소 장관이 이 문제를 더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희섭은 일본은 이 시점에 노 대통령의 방일이 단지 역사 문제를 더욱 부각할까 봐 아마 걱정할 거라는 의견을 냈다.

7. (기밀) 이 과장은 송민순과 아소는 2007년 1분기 안으로 배타적 경제 수역에 관한 실무급 회담 일정을 한 차례 잡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배타적 경제 수역은 3월 4일에 국장급 회담과, 3월 11~13일 차관급 회담에서 논의된 바 있지만, 여러 사항 중의 한 가지 난제는 독도를 배타적 경제 수역의 시점으로 사용한다는 일본의 주장이며, 이는 한국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아소는 양국 정부 각기 독도에 대한 자국의 입장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송민순은 한국 정부는 작은 섬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떤 주장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맞대응했다. 공동 해양조사의 전망을 묻자, 이희섭은 한국이 2005년 말에 조사를 시행할 의도 표명을 하자 2006년에 문제가 불거졌으며, 일본이 역조사 압박을 느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 한일 정부 어느 쪽도 해양 조사를 발표하지 않은 관계로 사실상 중단 상태다. 이런 상태는 어느 한쪽이 (해양 조사) 추진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해양 국장급 회담에 더해, 송 장관과 아소는 중동과 미주 지역에 대한 실무급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8. (기밀) 아소 장관은 한일 자유무역협정 회담을 재개할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동 회담은 6차례 협상 이후에 2004년 말에 중단된 상태이다. 송 장관은 제일 우선할 일은 실무급 논의가 재개되기에 앞서 포괄적인 고위급 양해안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희섭은 일본은 자유무역협정이 농산물 시장의 50%를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한국 정부는 75~80% 개방을 원한다고 설명하였다. 공통된 목적의식이 없이는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에 앞서 자유무역협정 협상 전망이 낮다.

9. (기밀) 한 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아소 장관이 양국 사이 교환 프로그램 형식으로 앞으로 5년간 매해 남한 학생 1,000명을 초대하였다. 이희섭은 아베 총리 집무실은 매해 학생 6,000명을 초대하는 제안을 개발했으며, 한국 정부가 6분의 1을 할당받은 점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10. 송민순과 아소는 2.13 “초기 조치” 합의를 구현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아소 장관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 진전을 이루는 것 또한 일본 정부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민순은 한국 정부는 일본의 민감한 문제들을 이해한다면서, 일본의 노력에 도움이 될 부분은 그렇게 하겠다고 제시하며, 2월 27일~3월 2일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에 한국인과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라고 독려하겠다고 언급하였다. 아소 장관은 그런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11. (기밀) 송민순은 양국이 6월 3일 제주에서 중국 외교부장 리 자오싱과 함께 3자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이에 아소는 동의하였다. 중국의 견해를 묻자, 이희섭은 한국 정부는 최종 통보를 받지는 못했지만, 중국 정부가 다소 긍정적 신호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이희섭은 1월 필리핀 세부 아세안+3 회담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이 모두 석유 수입국인 점을 참작해 3자 회담이 에너지 문제와 중동 문제를 논의하자고 의견을 송 장관이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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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04/03/2017 
TAGS: PREL PGOV ECON KS JA
SUBJECT: ROK-JAPAN MINISTERIAL TALKS DOGGED BY HISTORY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On April 2, MOFAT Northeast Asia Division I 
Director Lee Hee-sup told poloff that the March 31 - April 1 
talks between ROK Foreign Minister Song Min-soon and visiting 
Japanese Foreign Minister Taro Aso focused on history issues 
(comfort women, textbooks, Yasukuni) and included discussions 
of bilateral matters (Liancourt Rocks, EEZ, FTA, and cultural 
exchanges) as well as North Korea and Northeast Asia.  While 
the atmosphere was cordial, the ROK and Japanese positions 
were too far apart to allow much progress; the two sides did 
not discuss a visit to Japan by President Roh in 2007.  Lee 
said that Seoul, however, had received initial positive 
reactions to its initiative for a ROK-Japan-PRC Foreign 
Ministerial trilateral on June 3 in Korea.  END SUMMARY. 
 
¶2.  (C) On April 2, Lee Hee-sup, Northeast Asia Division I 
(Japan) Director at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provided poloff a readout of the March 31 - April 1 
ministerial talks between ROK Foreign Minister Song Min-soon 
and visiting Japanese Foreign Minister Taro Aso on Jeju 
Island, South Korea.  Lee said that the two Ministers held a 
two-hour meeting on Saturday, March 31, followed by a 
two-hour dinner.  On Sunday, April 1, the ministers took a 
short walk together for about 10 minutes.  Talks focused on 
history issues, ROK-Japan matters, North Korea and regional 
sub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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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IS THE MIRROR FOR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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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 In his opening remarks, Foreign Minister Song 
commented that history was like a mirror to see the future, 
and that unless one had a proper and clear mirror, one would 
get a distorted perception, Lee said.  Japan must endeavor to 
clearly portray its history or risk, among other things, 
increased suspicion of its future role and regional 
relations.  Song expressed regret over Japanese Prime 
Minister Abe's remarks that suggested a denial of the 
Government of Japan's role in the comfort women issue. 
Japanese Foreign Minister Aso restated Abe's March 26 
comments to the Japanese Diet that reaffirmed the 1993 Kono 
statement and expressed Abe's apology as Prime Minister.  Lee 
lamented that the recent controversies would not have arisen 
under Abe's predecessor, Junichiro Koizumi, who Lee 
characterized as more skilled in public remarks. 
 
¶4.  (C) On Japanese textbooks, Seoul and Tokyo had trumpeted 
their positions ahead of the talks.  On March 30, a day 
before Aso's arrival, Japan's Education Ministry had 
announced initial results of its review of high school 
textbooks that had allegedly allowed, or encouraged, 
controversial descriptions of Liancourt Rocks and comfort 
women issues.  MOFAT in response, also on March 30, issued a 
statement that it was intolerable that the Japanese Ministry 
endorsed textbooks that described the Liancourt Rocks as 
Japanese territory; MOFAT also called for a withdrawal of 
that endorsement.  At the ministerial talks, Aso stated that 
Tokyo could not order publishers how to write textbooks and 
could only offer guidelines, Lee said.  Song responded that 
some would not differentiate between textbooks and the 
Japanese Government, so Tokyo should take steps to address 
the matter.  (NOTE: a local Korean daily on April 2 
editorialized that the Japanese Education Ministry had 
changed elements of the textbooks to ignore the ROK claim 
that the waters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called the 
"East Sea," to delete readings that discussed the Japanese 
Army's order of mass suicide of civilians during the battle 
of Okinawa, and to include alternative views on the numbers 
of deaths in the Nanjing Massacre.  END NOTE.) 
 
¶5.   (C) On Yasukuni, Song argued that Class-A war criminals 
should not be honored in the Yasukuni Shrine.  Aso, however, 
noted that this issue was for Shrine officials to decide and 
that Tokyo did not consider this a state matter. 
 
¶6.  (C)  Asked if Song and Aso had discussed a possible visit 
to Japan by President Roh, Lee said that Tokyo had announced 
before the meeting that a Roh visit would be "difficult" 
ahead of July Upper House elections, so there was no reason 
for Song and Aso to discuss it further.  Lee opined that 
Japan would probably be concerned that a visit by Roh at this 
point would only give the history issue more prominence. 
 
---------------------------- 
EEZ, FTA, CULTURAL EXCHANGES 
---------------------------- 
 
¶7.  (C) Lee said that Song and Aso agreed to hold another 
round of working-level talks on Exclusive Economic Zones 
(EEZ) within the first half of 2007.  The EEZ had been 
discussed during Director-General talks on March 4 and at 
Vice Ministerial talks March 11-13, but one sticking point, 
among many, was that the Japanese insisted on using the 
Liancourt Rocks as a starting point for its EEZ, which the 
ROKG could not accept.  Aso noted that each capital had their 
own positions on the Liancourt Rocks, but Song countered that 
the ROKG would not accept any Japanese claim to the islets. 
Asked about the potential for dueling oceanographic surveys 
this spring, Lee offered that problems arose in 2006 when the 
ROK had announced its intention to conduct surveys in late 
2005 and the Japanese felt compelled to counter-survey.  At 
this point, however, neither Seoul nor Tokyo had made any 
announcements for 2007, so there was a de facto standown. 
This could change if either side decided to push ahead.  In 
addition to maritime DG talks, Song and Aso agreed to hold 
working-level talks to discuss the Middle East and the 
Americas. 
 
¶8.  (C) Aso raised the need to resume ROK-Japan FTA talks, 
which stopped in late 2004 after six rounds of meetings. 
Song, however, insisted that the first order of business 
should be to reach an understanding on a high-level, 
comprehensive FTA before working-level meetings resumed.  Lee 
explained the Japanese position to be that a FTA should open 
50 percent of the agricultural markets, but the ROKG wanted 
openings of 75 to 80 percent.  Without a common objective, 
the prospects for resuming FTA talks before the next ROK 
administration were low. 
 
¶9.  (C) On a positive note, Aso invited 1,000 South Korean 
students per year for the next five years on a bilateral 
exchange program.  Lee said that Prime Minister Abe's office 
had developed a proposal to invite 6,000 students per year 
and that it was notable that South Korea would get one-sixth 
of the slots. 
 
----------- 
NORTH KOREA 
----------- 
 
¶10.  (C) Song and Aso agreed to work closely to implement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Aso emphasized that 
it was important to Tokyo to also make progress on the 
abduction issue.  Song noted that Seoul understood Japan's 
sensitivities and offered to do what it could to help 
Japanese efforts and during the February 27 - March 2 
inter-Korean ministerial talks had encouraged DPRK delegates 
to resolve the issue of Korean and Japanese abductions.  Aso 
said he appreciated that ef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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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LATERAL FM M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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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 Song proposed to Aso that they hold a trilateral 
meeting with Chinese Foreign Minister Li on June 3 in Jeju, 
South Korea, and Aso agreed.  Asked for China's view, Lee 
said that Seoul had not received a final decision, but 
Beijing had sent some positive signals.  Lee added that at 
ASEAN Plus Three talks in Cebu, Philippines in January, Song 
had initially raised the idea for a trilateral meeting to 
discuss energy issues and the Middle East, given that South 
Korea, Japan and China were all oil importing nations. 
VERSHBOW

1)
번역 주: 기사화된 실제 발언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