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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851 2007-03-23 01:06 2011-08-30 01:4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김영삼 전 대통령, 북한과 국내 정치 언급

  • 기 밀 SEOUL 000851
  • 국방부망 배포1)
  • 국방부망 배포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3/23/2017
  • 태그: PREL2) , PGOV3) , KS4)
  • 제 목: 김영삼 전 대통령, 북한과 국내 정치 언급
  •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11/13 19:53

1. (기밀) 요점: 3월 21일 대사와 함께한 오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그의 모습이였다: 에너지 넘치고 따듯하고, 무엇보다도 본인의 견해를 밝히는데 관대하다.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믿을 수 없다” 라고 경고하면서, 워싱턴이 북한 정부와 너무 가까워 지고 있다며, 다음 대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 북한은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김영삼은 이틀 전에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손학규를 정치가로써 끝났다고 단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집권당의 김근태나 정동영과 같은 진보주의자들이 자신의 대통령 야망을 제쳐놓고 한나라당 패배자에게 길을 양보할 거라고 생각하는 손학규는 놀라울 정도로 순진하다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제3당 후보나 (전 대통령의 사투리로 된) “배신자들” 은 결코 잘된 적이 없다며, 손학규도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은 이명박이 차기 대통령이 될 거라는 평가에도 마찬가지로 확고하였다. 이명박의 지지는 폭 넓고 깊이가 있다; 그러한 지지는 절대 사라질 수가 없다. 박근혜는 당내 경선이건 대선이건 승리할 가망이 없다며, 다만 그녀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었다. 요점 끝.

2. (기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도동 자택에서 대사를 환대하게 맞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상도동 자택을 다른 전 대통령의 집과는 다르게 훨씬 작지만 현대적인 집이라고 말한다. 김영삼은 남한의 절대다수가 “친미” 임을 대사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한국 전쟁 중에 대학생이었고, 미합중국의 역할을 직접 목격하였다. 40,000명이 넘은 미국인 목숨의 희생이 없이는, 남한은 존재하지 않을 거다. 남한 일각에서 인천에 있는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릴 생각을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매우 소수만이 그러함을 확실히 믿어도 된다고 전 대통령은 말하였다. 대사는 자신도 같은 인상을 받았고, 정규적으로 본국정부에 전달하였다고 대사는 말하였다. 여전히 일부긴 하지만 때때로 매우 시끄럽게 야단스럽다.

3. (기밀) 김영삼은 6자 회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하였다. 55년 한국 정치사에 청와대에 5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배운 점은 공산주의자를 믿지 말라는 것이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기 얼마 전 북한 고위 당국자 허담과 장시간 논의를 가졌다. 북한 당국자는 두 가지 문제를 두 시간에 걸쳐 논의를 했다: 남한에서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다. 국가보안법과 미군이 없다면, 북한 사람들은 통일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평양은 여전히 무력 통일을 할 작정이다. 1950년 미군이 철수했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였다. 북한의 야심은 끝이 없다.

4. (기밀) 6자 회담 관련, 김영삼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하고, 경제 원조를 받길 또한 원한다고 평가했다. 그런 것들은 확실히 강탈이나 다름없다. “많이 줄수록, 북한은 더 많을 것을 원한다.” 라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6자 회담은 예측할 수 없는 요인이며, 예로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5. (기밀) 대사는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한 미망(迷忘)이 없다고 말하였다. 2월 13일 초기조치 합의는 각 당사국이 진전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명시하는 등 엄격한 구조로 되어 있다. 만일 북한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원조는 중단될 것이다. 미합중국은 만일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한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할 수 없다. 한국군의 가공할 전투력을 비롯해 미군 주둔으로 북한은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수 없다는 의미임을 모든 한국인이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한미동맹으로 북한의 침략을 저지한다는 점은 근본적인 사실이다.

6. (기밀) 김영삼은 손학규가 자신의 수제자임을 회상하면서,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일은 중대한 실수를 한 것이라며, 정치적인 사망 선고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김영삼은 탈당의 동기가 욕심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손학규와 그의 아내를 몇 달 전에 본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은 손학규의 인기가 커질 것으로 확신하는 듯 보였다며, 김영삼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손학규에 충고했는데도 확신하는 듯했다고 그렇다고 했다. 손학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자신을 환영할 거라고 믿는다면 잘못이다. 그들이 환영할 이유가 뭐가 있나? 그들 정당의 진보주의자들은 자체적인 후보가 있고, 일부는 강하고 능력이 있다. 김근태나 정동영과 같이 노련한 열린우리당 정치가들이 손학규에 양보할 거로 생각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학계 후보인 서울대의 정운찬 같은 후보나 유한킴벌리 최고경영자인 문국현과 같은 초보자도 역시 양보할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소심한 자는 한국 정치에서 설 자리가 없다.

7. (기밀) 한나라당 후보로 화제를 돌려는데 김영삼은 꽤 낙관하는 모습이었다. 김영삼은 어떻든 이명박이 패배할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명박은 여론조사에서 한결같이 40퍼센트 넘고 있는데, 박근혜의 두 배의 지지율이다. 한국여론조사는 꽤 믿을 만하다. 1991년 대통령 선거 내내, 김영삼은 김대중에 7퍼센트 앞서고 있었는데; 대선 결과도 똑같았고 김영삼이 7퍼센트 차로 승리하였다. 전문가들은 이명박의 과거사에서 추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과거사에서 나온 게 아무것도 없다.

8. (기밀) 김영삼은 박근혜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데 확고하다. 결국에, 한나라당은 인기 있는 후보와 함께해야만 하며, 그 이유는 승리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영삼은 손학규와는 다르게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뛰쳐나오지 않을 것이며, 그런 점이 이명박의 확실한 승리로 나타날 것이다.

9. (기밀) 1954년에 26살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영삼은 야당에서 그의 정치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다. 평생 정적이었던 김대중과 함께, 김영삼은 군사독재 시대 전체를 통해 남한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1992년 거의 30년 만에 김영삼은 남한의 첫 문민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임기 중에, 김영삼은 북한 핵 문제에 많은 시간을 바치도록 강제되었다. 국내적으론 반부패 운동을 비롯해 금융실명제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등 정치와 경제 개혁에 초점을 두었다. 김영삼은 또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한국 가입을 추동한 배후 세력이었는데, 김영삼은 OECD 가입으로 남한이 선진국가 위상을 굳힐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단 1년 만에 남한은 아시아 금융위기에 휩싸였고, 김영상의 국정 지지율은 한 자리 수로 곤두박질쳤다. 지금 80대인 김영삼은 김대중과는 다르게 정치의 외곽에 있다. 여전히 김영삼은 지역 근거지인 부산에서 일부 영향력이 있다. 우리는 상도동 자택은 계속해서 모든 야심 찬 부산 정치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으로 이해한다. 버시바우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한다.

07SEOUL851.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851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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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03/23/2017
TAG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KS [Korea (South)]
SUBJECT: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ON NORTH KOREA AND
DOMESTIC POLITICS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In a March 21 luncheon meeting with the
Ambassador,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KYS) was his
usual self:  energetic, warm, and, above all, generous with
his opinions.   Warning that "communists could never be
trusted," KYS expressed the concern that Washington was
getting too close to Pyongyang, which could even affect the
upcoming presidential elections.  North Korea had not
abandoned its goal of unifying the Peninsula through force.
On the presidential race, KYS was categorical in assessing
that Sohn Hak-kyu, who bolted from the GNP two days before,
was finished as a politician.   Sohn was incredibly naive,
KYS said, to think that progressives in the ruling Uri Party,
such as Kim Geun-tae and Chung Dong-young, would put aside
their own presidential ambitions and make way for a GNP
loser.   Third-party candidates, or "betrayers" in the former
president's vernacular, never prospered, and Sohn would be no
exception.   KYS was equally firm in his assessment that Lee
Myung-bak would be the next president.   Lee's support was
broad and deep; there was no way such support could
evaporate.  Park Geun-hye had no chance to win either the
nomination or the election, but KYS did not believe she would
run as an independent. End Summary.
 
---------------------------------
ROK-US ALLIANCE: FORGED IN BLOOD
---------------------------------
 
¶2.  (C)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warmly received the
Ambassador at his Sangdo-dong residence -- a modest house,
much smaller than those of other former presidents, Kim said.
 KYS said that it was important for the Ambassador to know
that an enormous majority of South Koreans were "pro-U.S."
He was a college student during the Korean War, witnessing
first-hand the role of the United States.  Without the
sacrifice of over 40,000 American lives, there would be no
South Korea.  It was absurd that some people in South Korea
were thinking about pulling down General MacArthur's statue
in Incheon.  Rest assured, the former president said, this
was a very small minority.  The Ambassador said that he had
the same impression, which he conveyed regularly to
Washington.  Still, these few sometimes made loud noises.
 
------------------------------
NK: "DO NOT TRUST COMMUNISTS"
------------------------------
 
¶3.  (C) KYS noted that substantial progress seemed to be
taking place in the Six Party Talks (6PT).  Fifty-five years
in Korean politics, five of those in the Blue House, had
taught him not to trust communists.  Some time ago, before he
became president, he had a long discussion with senior DPRK
official Huh Dam.  The North Korean official spent over two
hours discussing two issues: the withdrawal of U.S. troops
from South Korea and the repeal of the National Security Law.
 In the absence of the NSL and U.S. troops, North Koreans
believed that unification was possible, Kim said.  Pyongyang
was still intent on unification by force.  In 1950, North
Korea attacked the South because U.S. troops had pulled out.
There was no end to North Korean ambitions.
 
¶4.  (C) For the 6PT, Kim assessed that North Korea wanted to
normalize relations with the U.S. and also receive economic
assistance.  To be sure, much of this was no different from
extortion.  "More you give, more they want," Kim said.  The
6PT could become a factor in unpredictable ways, for example
influencing the presidential elections in South Korea, Kim
said.
 
¶5.  (C)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USG had no illusions
about the DPRK.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was tightly structured, specifying clearly what each side had
to do to make progress.  The aid would stop if North Korea
did not fulfill is obligations.  The United States could not
have normal relations with North Korea if it had nuclear
weapons or nuclear programs.  All Koreans must also know that
the presence of U.S. troops, as well as the ROK's own
formidable capabilities, meant that North Korea could not
unify the peninsula by force.  The U.S.-ROK alliance was a
fundamental fact deterring North Korean aggression.
 
--------------------------------------------- --
DOMESTIC POLITICS: SOHN FINISHED; LEE WILL WIN
 
--------------------------------------------- --
 
¶6.  (C) Recalling that Sohn Hak-kyu had been his protege, Kim
Young-sam said that Sohn had made a grave mistake in
abandoning the GNP; it would mean certain political death.
KYS believed that greed motivated Sohn.  He had seen Sohn and
his wife several months ago; they seemed so certain his
popularity would increase, even though Kim had advised him
that that would not be the case.  Sohn was wrong to believe
that the Uri or Democratic Party would welcome him.  Why
would they?  The progressives in these parties had their own
candidates, some of them tough and able.  It was
inconceivable that seasoned Uri politicians like Kim Geun-tae
and Chung Dong-young would make room for Sohn.  Also hard to
believe, according to KYS, were the candidacies of academics,
such as Seoul National University's Chung Un-chan, or
neophytes, like Yuhan-Kimberly CEO Moon.  Korean politics
were not for the faint-hearted.
 
¶7.  (C) Turning to GNP candidates, KYS was quite optimistic.
Kim could not see how former Seoul Mayor Lee Myung-bak could
lose.  Lee consistently polled over 40 percent, double the
support for Park Geun-hye.  Korean polls were quite reliable.
 In the 1991 presidential election, KYS had maintained a 7
percent lead over Kim Dae-jung throughout the campaign
period; the election result was the same, victory for KYS by
7 percent.  Pundits were still saying that there might be
scandals in Lee's background.  However, all this looking had
turned up nothing.
 
¶8.  (C) KYS was adamant that Park Geun-hye could not win the
GNP nomination.  In the end, the party had to go with the
popular candidate, because the goal was to win.  KYS believed
that Park, unlike Sohn, would not bolt from the GNP, which
translated into a certain victory for Lee Myung-bak.
 
-------
COMMENT
-------
 
¶9.  (C) Elected to the National Assembly in 1954 as a
26-year-old, Kim Young-sam spent most of his career in the
political opposition.  Along with his life-long nemesis Kim
Dae-jung, KYS was an icon for South Korean democracy and
human rights movements throughout the era of military
dictatorship.  In 1992, KYS became South Korea's first
civilian president in more than three decades.  During his
presidency, KYS was forced to devote a lot of time to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Domestically, he focused on
political and economic reforms, including anti-corruption
drives and forcing the use of real names in financial
transactions.  KYS was also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ROK's accession to the OECD in 1996, which, he believed,
cemented South Korea's status as a developed nation.
However, only a year later, South Korea was engulfed in the
Asian financial crisis, pulling down KYS's approval ratings
to single digits.  Now an octogenarian, KYS, unlike KDJ, is
out of politics.  Still, KYS has some influence, especially
in Busan, his regional base. We understand his Sangdo-dong
residence continues to be the place to be seen for all
aspiring Busan politicians.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Korea (So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