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참조번호 생성일 비밀등급 출처 태그
07SEOUL794 2007 March 19, 09:06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제 목: 김근태, 선거에 대해서는 침묵, FTA와 중국에 대해서는 목소리 높여

기 밀 서울 000794

국방부망 배포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0/2014 태그: PGOV, PREL, KS 제 목: 김근태, 선거에 대해서는 침묵, FTA와 중국에 대해서는 목소리 높여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4/07/21 18:29

1. (기밀) 대사와 함께한 3월 15일 오찬 석상에서 전 우리당 의장 김근태는 대권에 대한 포부를 묻는 직접적인 질문을 피해 가면서도 한미 FTA, 위안부, 남북 정상회담, 6자 회담 등에 대해선 진솔한 예기를 했다. 김근태는 FTA에 대해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결론을 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때면 협상의 장점들을 충분하게 평가할 좀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대사는 신속무역협상권이 종료돼가는 상황에서 지금이 아니라면 아마도 결코 협상 기회가 없을 거라고 설명했다.) 김근태는 개성공업지구 상품들이 최종 FTA 협정에 들어가도록 활로가 있기를 여전히 희망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김근태는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감정의 골이 깊지만, 아직 폭발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최근 아베 일본 총리의 성명을 충분하게 반박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근태는 남북 정상회담이 6자 회담을 앞두고 추진되는 까닭은 6자 회담에서 시너지 효과를 생성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6자 회담은 궁극적으로 북한과 한국 사이의 문제이므로 한반도에서 열려야 한다. 중국은 영구적인 평화 체제 논의에서 배제돼야 한다; 현재 휴전선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3개국만이 포함돼야 한다. 국회의원 이인영, 홍미영, 우원식 국회의원이 이번 오찬에 배석했다. 요약 끝.

2. (기밀) 우리당 김근태 의원은 3월 15일 버시바우 대사와 함께한 오찬 회동에서 우리당 의장으로 8개월 동안 지내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의 수많은 난제에 직면했었다고 말했다. 김근태는 한국인들은 현 정부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개선된 부분이 일정 부분 있지만, 사람들은 현 정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점은 5월 31일 지방 선거에서 우리당이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확실해졌다. 김근태는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 임기 말까지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지속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만약 부시, 노 대통령,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면, 노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지지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3. (기밀) 우원식 의원은 한미 FTA가 한국에서 분열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FTA 협상이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개성공업지구 상품은 남북 협력과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질 것을 희망하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개성공단은 북한이 자유 시장 경제와 한층 광범위한 경제 개혁을 맛보게 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했다; 게다가, 미국은 개성공단에서 특정 기술을 도입하도록 라이센스를 허가함으로써 개성공단 사업에 기여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한미 FTA 포함 여부는 다른 문제다. 지금으로서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 만일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노동권과 인권 문제가 합당하게 해소된다면 미국은 개성공단 상품에 대한 견해를 재고할 수도 있다.

4. (기밀) 김근태는 한미 FTA의 사회 분열적 성격에 대한 우원식의 발언에 동조하였다.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춘 유사한 공공 캠페인은 한국이 OECD에 가입할 당시인 1996년에 활용되었지만, 결국 해당 희망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물거품이 되었다. 상당수 사람들이 한국 경제에 미칠 한미 FTA의 영향력에 큰 기대를 갖고 있지만, 다수는 농업과 같은 취약한 분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빠르게 벗어난 점은 한국 경제의 힘과 심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응대하였다. 한미 FTA와는 별개로 FTA 자체는 외부 시장의 도전을 받게 될 한국 경제의 여러 부문을 살펴보고 개혁을 촉발하였다.

5. (기밀) 김근태는 우리당의 지지 기반은 대체로 한미 FTA에 반대한다고 설명하였다. 한미 FTA에 직설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당의 지지 기반을 달래기 위해 차기 행정부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 결정을 미루자고 노무현 정부에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런 입장은 결국 FTA 반대나 마찬가지라고 대응하였다. 신속무역협상권의 종료가 임박한 상태에서 오랫동안 다시 기회가 오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한국은 한미 FTA로부터 큰 이득을 얻을 것이다. 예들 들자면 호주가 미국과의 FTA 타결 이후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서비스 분야 수출에서 급속한 성장을 보게 될 입지를 갖추었다.

6. (기밀) 이인영 의원은 한미 FTA와 관련해 두 가지 우려를 표명하였다. 하나는 많은 한국민이 한미 FTA에 대한 지지와 개성 공단 상품의 한미 FTA 포함 문제를 연계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취약한 산업 분야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한국이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하게 된다면, 대체로 한미 FTA와 미국에 대한 지지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상원이 최근 비자면제 프로그램의 확대가 가능토록 법안 수정안을 제출했다고 말하였다.

7. (기밀) 김근태에 의하면 일본은 미국에 대한 호소력을 상실했다. 아마도 한국은 미국과의 양자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다. 김근태는 지금이 동북아 지역의 중대한 시기라며, 미국이 한국의 도움으로 안보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기를 희망하였다. 김근태는 민감한 이슈도 이념 논쟁 없이 해결될 수 있다는 증거로 전시작전권 이양 시기에 대한 성공적인 합의를 언급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과 마찬가지로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역내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열쇠임이 틀림없다고 견해를 같이했다.

8. (기밀) 홍미영 의원은 그녀가 상임위 여성위원회 소속이었을 당시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미국을 갔었다고 말했다. 미 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심의하기는 이번이 일곱 번째라며 이번에 성공하리라 큰 기대가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위안부 문제는 미국 정부의 우선 과제로 국무부 네그로폰테 차관이 최근 동북아 지역 방문 중에 일본 정부 관리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음을 홍미영에게 분명히 하였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은 정부가 위안부에 관여했음을 인정했다고 버시바우 대사는 말했다. 아베 총리가 1993년에 나온 고노 담화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왜 그런 초기의 입장에서 후퇴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김근태는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감정의 골이 깊지만, 아직 폭발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최근 아베 일본 총리의 성명을 충분하게 반박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9. (기밀) 김근태는 미국 정부 일각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6자 회담에 방해가 될까 우려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김근태는 6자 회담의 (남북 정상화담이) 방해물이 아니라 6자 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사이에 필요한 시너지라고 말하였다. 남북 정상회담이 대통령 선거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김근태는 회의적인 모습이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발표 이후 열린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에 거의 도움이 안 됐다.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문제는 6자 회담과 북한 비핵화 목표에 보탬이 될지에 기초해 바라볼 거라고 김근태를 안심시켰다. 6자 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최대로 높이는 길은 5개 당사국의 모든 노력을 조율하는 데 있다.

10. (기밀) 정전협정을 대체하고, 한반도 전쟁을 종식할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협상 문제로 화제를 들린 김근태는 중국은 평화체제 논의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평화 협정도 북한과 남한, 미국 사이에서 이뤄져야 하는 까닭은 현재 비무장지대에서 3개국만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TV 드라마가 40~50%의 남한 시청자를 매료시킨 까닭은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은 동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주석: 이 드라마는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중국에 맞서 굴복하지 않는, 강한 나라를 묘사하고 있다. 주석 끝.)

11.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전략적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김근태에게 물었다. 김근태는 미국이 안전 보장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북한은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일성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북한에서 살아있다. 김일성의 유언은 한반도의 비핵화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북한 간부들이 이 문구를 반복한다. 김근태는 6자 회담이 한반도가 아닌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점에 실망감을 표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중국의 영향력이 북한의 6자 회담 참여 의욕을 돋우는데 그간 보탬이 되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진의를 묻는 진정한 첫 시험대는 2.13 초기조치 합의로 출범하는 2단계 조치에서 북한의 핵 시설 불능화 조치 여부이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7SEOUL794.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794
 
SIPDIS
 
SIPDIS
 
E.O. 12958: DECL: 12/10/2014
TAGS: PGOV, PREL, KS
SUBJECT: KIM GEUN-TAE SILENT ON ELECTIONS, VOCAL ON FTA AND
CHINA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
SUMMARY
-------
 
1.  (C) While deflecting direct questions about his
presidential aspirations, former Uri Party Chairman Kim
Geun-tae spoke candidly over lunch with the Ambassador on
March 15 about a number of issues including the KORUS FTA,
Comfort Women, an inter-Korean Summit, and the Six-Party
Talks.  On the FTA, Kim said that he would issue a statement
saying the FTA should not be concluded until the next ROK
administration when there would be more time to adequately
evaluate the merits of the deal (the Ambassador explained
that, with TPA expiring, it was now or probably never).  Kim
said that he was still hopeful that Kaesong Industrial
Complex products would find their way into the final FTA
agreement.  On Comfort Women, Kim said that Koreans held very
deep feelings about the issue but were not yet speaking out
because they trusted that the U.S. would adequately rebut
Japanese PM Abe's recent statement.  Kim said that the push
for an inter-Korean summit was to create a "synergy" with the
6PT, not to get ahead of the talks.  Further, the Six-Party
Talks should be held on the Korean Peninsula as it was
ultimately a ques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orth
and South.  China should be excluded from talks on a
permanent peace regime; only the three countries with forces
still facing off in the DMZ should be included.  National
Assembly Representatives Lee In-young, Hong Mi-young, and Woo
Won-shik accompanied Kim to the meeting.  END SUMMARY.
 
-------------------------
WHAT KOREANS ARE THINKING
-------------------------
 
2.  (C) Uri Rep. Kim Geun-tae, in a March 15 luncheon meeting
with the Ambassador, said that during his eight-month tenure
as Uri Party Chairman, he faced many tough challenges
including the DPRK's missile launches and nuclear test.  Kim
said that the Korean people were "bored" with the current
administration.  Working people complained they did not have
enough money.  Despite some improvements, people were not
satisfied with the current administration.  This was clear in
the May 31, 2006 local elections where Uri received little
support.  Kim said he hoped that President Bush would keep up
his support for President Roh until the end of Roh's term in
office.  If Bush, Roh and Kim Jong-il held a summit, it would
provide much needed support for Roh.
 
-------------------------
KORUS FTA DIVIDED KOREANS
-------------------------
 
3.  (C) Rep. Woo noted that the KORUS FTA was a divisive
force in Korea.  As the negotiations entered the final stage,
Koreans still hoped that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goods would be admitted as they were a sign of inter-Korean
cooperation and hope.  The Ambassador agreed that the KIC
represented a good opportunity to expose the DPRK to free
market principles and broader economic reforms; moreover, the
U.S. had contributed to the project by granting licenses to
employ certain technologies at KIC.  Inclusion in the FTA was
another matter, however.  For now, the U.S. did not have a
normal relationship with the DPRK.  If the relationship
improved and if labor and human rights concerns were
adequately addressed, the U.S. might reconsider its view on
KIC products.
 
4.  (C) Kim echoed Woo's comment on the divisive nature of
the FTA.  Similar public affairs campaigns focusing on
economic growth were used in 1996 when Korea joined the OECD,
only to have those hopes dashed by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While some people had high hopes for the FTA's
impact on the Korean economy, many were concerned about
vulnerable sectors like agriculture.  The Ambassador
responded that Korea's quick rebound from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showed the strength and depth of its
economy.  The FTA had prompted Korea to look at and reform
many of its sectors that would be challenged by outside
markets, regardless of the KORUS FTA.
 
5.  (C) Kim explained that the Uri base was generally opposed
to the KORUS FTA.  To appease the base without speaking out
directly against the deal, Kim said he planned to issue a
statement asking the Roh administration to delay a decision
until the next administration takes control.  The Ambassador
replied that this position was tantamount to opposing the
FTA.  There would not likely be another opportunity in a long
time, given the upcoming expiration of TPA.  Korea would
benefit greatly from the FTA.  For example, Korea was poised
to see rapid growth in service exports, just as Australia
experienced in the year following ratification of its FTA
with the U.S.
 
6.  (C) Rep. Lee expressed two concerns with the FTA.  First,
many Koreans correlated their support for the FTA to the
inclusion of KIC products.  Second, there were not enough
protections for vulnerable industries in Korea.  If Korea
were admitted to the Visa Waiver Program (VWP), that would
build support for the FTA and the U.S. in general.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Senate recently put forward an
amendment to a bill that would make expansion of VWP possible.
 
-----------------------
COMFORT WOMEN AND JAPAN
-----------------------
 
7.  (C) According to Kim, Japan had lost its appeal to the
U.S.  Perhaps, Korea now had the upper hand in its bilateral
relations with the U.S.  Kim said that this was a critical
time in the region and he hoped that the U.S. would work hard
to establish security and order with the ROK's help.  Kim
cited the successful negotiation of a compromise on the
timing of wartime OPCON transfer as proof that sensitive
issues could be resolved without an ideological debate.  The
Ambassador agreed that the U.S.-ROK alliance was indeed key
to effectively resolving regional issues, as was the
U.S.-Japan alliance; this was not a zero-sum game.
 
8.  (C) Rep. Hong said that she traveled to the U.S. in
support of the Comfort Women issue when she was a member of
the Women's Committee.  This was the seventh time that the
issue was considered by the U.S. Congress, Hong had high
hopes for success.  The Ambassador assured Hong that the
Comfort Women issue was a high priority for the USG and that
Deputy Secretary of State Negroponte had raised it with
Japanese officials during his recent trip to the region.  In
the early 1990s, Japan had acknowledged government
involvement with Comfort Women, the Ambassador noted.  It was
not clear why PM Abe was retreating from those earlier
findings--although he had stated he would not renounce the
Kono Statement of 1993.  Kim said that Koreans held very deep
feelings about the issue but were not yet speaking out
because they trusted that the U.S. would adequately rebut
Abe's recent statement.
 
-------------------
INTER-KOREAN SUMMIT
-------------------
 
9.  (C) Kim said that he realized that some within the USG
were concerned that an inter-Korean summit would get in the
way of the 6PT.  Rather than hinder the 6PT, Kim said a
synergy was needed between the 6PT and an inter-Korean
summit.  As for the effect that a North-South summit might
have on the Presidential elections, Kim remained skeptical.
The announcement of the 2000 North-South Summit did little to
help the then ruling party in parliamentary elections held
just after the announcement.  The Ambassador assured Kim that
the U.S. would view the question of a North-South summit on
the basis of whether it helped the 6PT process and the goal
of denuclearization.  The best chance for success was for the
five parties to coordinate all their efforts.
 
-------------------------
PEACE REGIME NEGOTIATIONS
-------------------------
 
10.  (C) Turning to the question of negotiations to establish
a permanent peace regime that would replace the armistice and
end the Korean War, Kim said that China should be excluded
from the talks.  Any peace agreement should be among the
North the South and the U.S., as the only three countries
 
with forces still facing off along the DMZ.  A Recent TV
drama captivated 40-50 percent of the population because it
embodied the hope for a better future; a view shared by those
who watched the program (NOTE:  The drama, set in the Koguryo
period of Korea's history, portrayed the country as defiant
and strong versus China.  END NOTE.).
 
---------------
SIX-PARTY TALKS
---------------
 
11.  (C) The Ambassador asked Kim if he thought the DPRK was
ready to make a strategic decision to denuclearize.  Kim
responded that he thought that if the U.S. was ready to
provide a security guarantee, the DPRK would be ready to
denuclearize.  Kim Il-sung was still alive, in a figurative
sense, in the North.  His dying wish was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Even today, many DPRK officials
repeated this phrase.  Kim expressed dismay that the 6PT were
held in Beijing, rather than on the Korean peninsula.  The
Ambassador said that China has been helpful in using its
leverage and influence to keep the DPRK motivated in the
talks.  The first real test of the DPRK's intentions was
whether the DPRK would proceed with the disablement of their
nuclear facilities in the second phase of the process
launched by the February 13 agreement.
VERSH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