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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449 2007-02-14 07:33 미분류 주한 미국 대사관

제 목: 한국의 대통령 후보 박근혜: 청와대에 재입성할 수 있을까?

미 분 류 SEOUL 000449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해당없음2) 태그: KS3) , PGOV4) , PINR5) , PREL6) 제 목: 한국의 대통령 후보 박근혜: 청와대에 재입성할 수 있을까?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11/05 00:30

1. (민감하지만 미분류) 모든 대선 여론조사에서 20% 지지를 받아 현재 2위인 야당 대통령 예비후보 박근혜는 한국 대선에 출마한 첫 번째 여성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박 대통령 집권기간(1961~1979)의 두 자리 수 경제 성장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표를 얻었고, 그녀 부친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불의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표를 잃고 있다. 2004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그녀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2004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결과가 좋았다. 또한, 후속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도 다수의 승리를 이루었다. 그녀의 인기는 그 뒤로 수직으로 상승하였고, 연설 도중 공격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긴 했어도, 영웅적으로 병원을 나와 선거 운동에 나섰다. 그녀의 고무적인 활약은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양부모를 1970년대에 암살로 잃었으며, 전혀 결혼한 적이 없다. 대통령 후보로 그녀는 깨끗한 이미지와 국가에 대한 헌신은 공고한 보수 지지기반을 획득하도록 했지만, 그녀는 선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한참 뒤처져 있다. 요약 끝.

2. (민감하지만 미분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52년 2월 2일에 태어나 9살때부터 청와대에서 성장하였다. 박근혜의 모친은 공립학교에 보내고 다른 어린이들과 같이 전차를 타게 하는 등 박근혜가 평범한 삶을 살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공식적인 인적 사항에 따르면, 박근혜는 인생 초기에 “전통예술을 배웠으며, 중요한 사건을 지켜보며 조용한 삶을 살았다.”라고 되어 있다. 박근혜가 최고의 교육을 받도록 하는데 그녀 모친의 공이 인정된다.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인 유명인사가 공학이 한국의 미래의 핵심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에 박근혜는 공학을 전공하기로 하였다. 그녀가 명문 서강대학교에서 전자공학 학위와 함께 졸업할 당시에 그녀는 해당 학위를 소지한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3. (민감하지만 미분류) 박근혜는 천주교계 서강 대학을 1974년에 졸업한 이후에, 더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 1974년 8월 그녀의 모친이 당시 박정희에 대한 북한의 암살 계획으로 재일교포에 의해 사망하였다. 박근혜는 그녀 모친이 사망한 이후 귀국하였고, 대통령의 장녀로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담당하였다.

4. (민감하지만 미분류) 1979년 10월 26일 그녀의 부친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되었다. 박근혜가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당시에, 그녀의 첫 반응은 “DMZ는 괜찮나요?”라고 분명하게 물었다. 일각에선 박정희가 그녀의 큰 딸을 대통령으로 준비시키고 있었다고 믿는다. 다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뒤이은 전두환 정권 집권기에 중앙정보부의 미행으로 박근혜는 사생활이 어려웠고, 그녀의 많은 절친들이 감옥에 투옥되어 고생했고, 심지어 고문을 당했다.

5. (민감하지만 미분류) 1979년 말부터 1996년 말까지, 박근혜는 대체로 고독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양친 부모의 사망 충격을 견뎌 내야 했고, 수많은 시간을 개인적 슬픔을 견뎌 내면서 숱한 나날을 보냈다. 집안의 가장으로써 박근혜는 여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박근혜 남동생은 심각한 마약 중독으로 고통을 겪었고, 몇 차례에 걸쳐 체포되기도 했다. 그녀의 여동생은 그 시기에 이혼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다. 비록 그녀가 그 시기에 대구 영남 대학교 재단 이사장을 지내긴 했지만, 박근혜는 대부분 집에서 일했다. 1992년 그녀는 일기장에 “이러한 삶을 다시 사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라고 썼다.

6. (민감하지만 미분류) 박근혜는 부친이 설립한 자선 재단인 육영재단과 새마음 종합병원에서 그녀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논란이 있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도 맡았는데,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설립자가 아마 강요받아 “헌납한” 부산일보사 주식으로 설립되었다. 그녀가 1974년 한국 걸 스카우트와 함께 일을 시작한 이래로 그녀는 70년대와 80년대 다양한 복지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그녀는 자선 사업에 대해 항상 강조해왔다.

7. (민감하지만 미분류) 1996년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 참여하였고, 1998년 보궐선거를 통해 대구를 대표하는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녀는 “구국의 심정으로” 국민 곁으로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박근혜의 연설에서 그녀는 1997년 경제 위기가 동기가 되었고, “정당 제도와 전반적인 정치 환경을 개혁”하길 원한다고 말하였다.

8. (민감하지만 미분류) 2006년 10월 박근혜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지만, 2006년 6월 한나라당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로 선거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2006년 6월 50대 남자가 작은 칼로 10센티 상처를 입힌 사건 이후에 그녀의 인기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그 사건으로 한 시간 동안 60바늘을 꿰매야 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공격이 있던 직후 그녀의 첫 마디는 “전 괜찮아요. 과민반응하지 마세요.”라고 잘 알려졌는데, 그 발언으로 한나라당이 전국적인 승리를 휩쓸었다.

9. (민감하지만 미분류) 박근혜는 선두 주자인 이명박을 겨냥해 대놓고 하는 공격과 은근한 공격을 번갈아 가며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그녀는 정책 기조를 제시하는 세간의 이목이 쏠린 연설을 여러 차례 했으며 심지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머리 모양을 바꾸기도 하였다. (주석: 그녀의 예전 머리 모양은 그녀의 모친의 머리 모양과 같다. 그녀의 현재 머리 모양은 더 현대적이다. 주석 끝.) 그녀의 연설 방식은 에두르지 않되 신중을 기한다. 전문가 일각에서는 그녀의 연설 스타일은 역동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긴 하지만, 그녀의 해방 꾼들도 그녀가 “특정한 카리스마”가 있다고 동의한다.

10. (민감하지만 미분류) 1975년 박정희 통치 반대 투쟁을 했던 8명의 학생이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 교사라는 날조된 협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8명은 그 판결 이후에 24시간도 채 못돼 처형되었다. 최근에 법원은 동 사건을 재심의 하였고 8명의 운동가들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박근혜는 그 인혁당 사건에 대한 평가를 요청받았다. 박근혜는 인혁당 사건이 지금 거론되는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밖에는 없다며 그녀가 청와대 있을 당시에 행해진 불의에 대해 이미 사과한 바 있다고 대답하였다.

11. (민감하지만 미분류) 박근혜는 현재 미합중국에 머무르고 있는데, 더 큰 무대에서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길 바라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경제와 “MB노믹스” 제안에 초점을 맞춰 모든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는 참모의 말을 빌리자면 경제와 국가 문제에서 신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지도자상을 보여줄 요량이다. 그녀는 연설에서 한나라당이 단지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만을 선택해선 안 되며, 대선에서 언론과 야당의 검증과 공격을 견뎌낼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12. (민감하지만 미분류) 박근혜는 만나는 사람마다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녀의 국가에 대한 온전한 헌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가 모든 여론조사에서 공고한 2위를 달리고 있고, 무시할 수 없긴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도 많은 이들은 한국은 아마도 아직 여성 대통령을 선출할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말이 아마 일리가 있다고 보는 까닭은 그녀가 이명박에 20~30 포인트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경선에서 패배할지라도, 박근혜는 앞으로 수년 간 한국 정치계 핵심 인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7SEOUL449.rtf
UNCLAS SEOUL 00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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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N/A
TAGS: KS [Korea (South)],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INR [Intelligence],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SUBJECT: ROK PRESIDENTIAL CANDIDATE PARK GEUN-HYE: CAN SHE
RETURN HOME TO THE BLUE HOUSE?
 
¶1. (SBU) Summary: Opposition presidential hopeful Park
Geun-hye, currently second in all presidential polls with
about 20 percent support, is the first woman to run for
president in Korea.  As former President Park Chung-hee's
daughter, she earns votes from those who are nostalgic for
the double digit economic growth of President Park's rule
(1961-1979) and loses votes from those who remember the
injustices of her father's authoritarian reign.  She
successfully led the main opposition Grand National Party
(GNP) from March 2004 until June 2006 to a surprisingly good
result in the National Assembly elections in April 2004 and
multiple victories in subsequent local and by-elections.  Her
popularity peaked after, despite being attacked during a
speech and hospitalized, she heroically left her hospital bed
and went directly to campaign.  Her inspiring performance led
the GNP to a sweeping victory in the May 31 local elections.
She lost both her parents to assassination in the 1970s and
has never married.  As a presidential candidate, Park's clean
image and devotion to her country have won her a solid base
of conservative support, but she remains well behind the
leading GNP candidate Lee Myung-bak.  End Summary
 
Formative Years
---------------
 
¶2.  (SBU) Former GNP Chair Park Geun-hye was born February 2,
1952 and raised in the Blue House from the age of 9. Park's
mother made every effort to offer Park a normal life, sending
her to public schools and allowing her to ride the tram like
other children.  According to her official bio, she spent her
early years, "learning traditional arts and living a quiet
life observing great events."  Her mother is credited with
ensuring Park had the best education.  After hearing a
distinguished American visitor to the Blue House say that
engineering was the key to Korea's future, Park decided to
major in engineering.  When she graduated from prestigious
Sogang University with a degree in electrical engineering,
she was one of a handful of women with such a degree.
 
Mother's Assassination
----------------------
 
¶3.  (SBU) After graduating from Catholic Sogang University in
1974, Park went to France for further study.  In August of
1974, her mother was killed in a North Korean assassination
plot by a Japanese-Korean on then President Park Chung-hee.
Park Geun-hye returned home after her mother's death and as
the president's eldest daughter, Park served as acting first
lady from 1974 to 1979.
 
Father's Assassination
----------------------
 
¶4.  (SBU) On October 26, 1979, her father was assassinated by
his KCIA chief.  When Park Geun-hye learned of her father's
death, her first reaction was apparently to ask, "Is the DMZ
all right?"  Some believe Park Chung-hee was grooming his
eldest daughter to be president, although there is no
evidence to support this claim.  During the ensuing Chun
Doo-hwan regime, Park's personal life was difficult as she
was shadowed by the KCIA and many of her confidants were sent
to hard-time prisons and even tortured.
 
Preparing for the Blue House? 17 Years of Solitude
--------------------------------------------- -----
 
¶5.  (SBU) From late 1979 until late 1996, Park lived a
largely solitary life.  She dealt with the shock of both her
parents' deaths and spent much of her time dealing with her
own grief.  As the family head, Park also had a number of
serious problems.  Her brother suffered serious drug
addiction and was arrested on several occasions.  Her sister
had a difficult divorce during this time.  Park Geun-hye
worked mostly at home although she did hold the chairperson
position at Daegu's Youngnam University during this period.
In 1992, she wrote in her diary, "If I were to choose, I
might choose death over a life like this again."
 
¶6.  (SBU) She spent a considerable amount of her time with
Yukyoung Foundation and the Saemaeum Hospital, charitable
foundations established by her father.  She also held a
controversial position as head of the Jangsu Scholarhip
Foundation that was founded with Busan Ilbo newspaper stock
 
"given" -- possibly under pressure -- to the foundation by
Busan Ilbo's founder.  Since she started work with Girl
Scouts of Korea in 1974 and she became involved in various
welfare projects during the 70s and 80s, Park has always put
a strong emphasis on charitable work.
 
Step Back into the Spotlight
----------------------------
 
¶7.  (SBU) In 1996 Park joined the New Korea Party (the Grand
National Party predecessor party) and became an Assemblywoman
representing Daegu through by-elections in 1998.  She said
she returned to public view to "save the country."  In
speeches Park says that she was motivated by the economic
crisis of 1997 and wanted to "reform the party system and the
overall political environment."
 
Campaign Trail
--------------
 
¶8.  (SBU) Park officially declared her candidacy in October
2006 but has been working on her campaign since she stepped
down in June 2006 from her position as Chairman of the GNP.
Her popularity peaked in May 2006 after a 50-year-old man
slashed her with a small knife, causing a 10-centimeter wound
on her face that required 60 stitches and hours of surgery.
Her well-publicized first words after the attack were, "I am
all right.  Don't overreact," which helped sweep the GNP to
victory across the nation.
 
¶9.  (SBU) In January 2007, Park put her campaign into high
gear with veiled and not-so-veiled attacks at front-runner
Lee Myung-bak.  She has had a series of high profile speeches
laying out her policy positions and she has even changed her
trademark hairstyle.  (Note: Her previous hairstyle was
identical to that of her mother's.  Her current style is much
more modern.  End Note)  Her speaking style is
straightforward and cautious.  While some pundits criticize
her for a lack of dynamism in her speaking style, even her
detractors agree that she has a "certain charisma."
 
¶10.  (SBU) In 1975 eight students who struggled against
Park's rule were sentenced to death on trumped up charges of
violating the National Security Law and treason.  The eight
were executed less than 24 hours after the trial.  Recently,
a court revisited the cases and declared the eight activists
innocent.  Park Geun-hye was asked to comment on the case.
She replied that the case was only being dealt with now for
political reasons and she had already apologized for any
injustices committed when she was in the Blue House.
 
¶11.  (SBU) Park is now in the United States, hoping to shore
up her image as a leader on a bigger stage.  While former
Seoul Mayor Lee Myung-bak leads all polls with his focus on
the economy and his proposed "MBnomics," Park seeks,
according to advisors, to show she is a capable leader who
can be trusted with the economy and the country.  She
emphasizes in her speeches that the GNP should choose not
just the candidate who can win the primary, but the candidate
who can withstand scrutiny and attacks from the press and
progressive candidates in the general election.
 
Comment
-------
 
¶12.  (SBU) Park Geun-hye impresses all who meet her and her
complete devotion to her country is unquestionable.    While
she is running a strong second in all polls and cannot be
dismissed, many, even in the GNP, say that Korea may not be
ready yet to elect a female president.  They probably have a
point, because she is running 20-30 points behind Lee.
Still, even if she loses this time, Park will remain a key
figure in Korean politics for many years to come.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N/A
3)
[Korea (South)]
4)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5)
[Intelligence]
6)
[External Political Rel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