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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550 2007-12-17 05:56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제 목: 민경욱 KBS 기자: 이명박은 실용적이고, 소심한 사람

기 밀 SEOUL 003550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0/2014 태그: KN2), KS3), PGOV4), PREL5), PINR6) 제 목: 민경욱 KBS 기자: 이명박은 실용적이고, 소심한 사람 분류자: 정치 참사관 조셉 윤.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07/03 03:39

1. (기밀) 요점: 2007년 6월까지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민경욱 KBS 기자는 현재 12월 20일에 전국 방송망인 KBS에서 30분간 방영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최근에 민경욱은 한 달간 그의 오랜 지인들을 만나고, 이명박의 고향인 포항을 수차례 방문하며 이명박의 인생을 취재한 이후 자신이 느꼈던 여러 인상을 함께 나눴다. 민경욱은 이명박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돌아왔으며, 이명박의 가난했던 가정환경과 어린 시절의 실제 장사 경험이 이명박이 현대건설에서, 서울 시장으로, 또한 대통령 후보로써 놀랄만한 성공을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요점 끝.

2. (기밀) 선임 KBS 기자인 민경욱은 한반도 동남쪽 부근의 포항에 있는 이명박의 유년시절 집을 방문했다고 정치 담당관에게 말했다. 그의 방문은 이명박과 그에 인생을 관한 다큐멘터리 취재의 일환이며, 이명박이 당선될 공산이 큰 대선 결과가 확정된 이후 12월 20일에 방송할 내용이다. 민경욱은 이명박과 정동영 그리고 이회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세 개의 팀이 있다고 말했다. 당선된 후보의 다큐멘터리만 방송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3. 민경욱은 이명박이 성장한 가옥은 일제 점령기의(1910~1945) 불교 사원이었지만 일본인들이 떠난 이후 버려졌다고 말했다. 이명박이 그곳에 살 당시, 옛 사원 부지로 구조상 단 한 가구가 살만한 가옥에 10가구까지 거처했다. 중학교를 마친 이후 집안 형편이 어려운 관계로 똑똑한 손위 형인 이상득(지금 국회 부의장)의 학비도 감당하기 벅찬 관계로 이명박의 모친은 이명박에게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명박은 낮 동안 일하며, 밤에는 동지 상고에 다녔다. 그는 뻥튀기를 팔거나 석탄을 배달하는 등 여러 다양한 일을 통해 학비를 벌어 학교에 다녔다. 포항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타 오랜 이명박의 지인들의 말로는 이명박은 건강하고 부지런했으며, 또한 예의 바른 어린이였다고 민경욱은 말했다.

4. (기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명박은 서울로 갔고, 용산의 한 시장에서 청소부 일을 하면서 공부해 대학교 입학시험을 통과했다. 이명박은 명문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이명박은 자신의 등록금은 용산 시장의 상인들이 지급했고, 청계천 근처에 헌책방 상인들이 자신에게 책을 공급해줬다고 여러 연설에서 말한 바 있다. 졸업에 맞춰, 이명박은 당시 중소업체였던 (98명 고용) 현대 건설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현대에서 이명박과 함께 일한 동료들의 말로는 이명박은 현대 설립자 정주영의 눈에 띄었고, 이명박의 실무 능력과 과거 경력은 정주영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민경욱은 말했다. 그는 35세 나이에 최고 경영자의 자리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5. (기밀) 민경욱은 이명박이 실용적이며, 과거 수년간 사치스러운 생활을 탐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경욱은 이명박의 가난한 성장기를 그 원인으로 생각했다.

6. (기밀) 민경욱은 이명박의 측근 보좌관이나 지인들은 이명박이 본래 내성적인 사람이며, 그 점이 그의 주변에 많은 이들이 왜 “그의” 사람들인지 설명해 준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이명박은 그가 아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것을 편하게 느낀다. 현 선거 스태프 중에는 그가 서울 시장 시절(2002~2006)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민경욱은 말하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명박은 너무 내성적이라 그의 측근에 대해 사소한 칭찬도 못 할 정도였다.<blockquote 민경욱의 번역>전체적으로 이 후보는 단지 자신이 아는 사람들 속에서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다.</blockquote>

7. (기밀) 민경욱은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술 마시는 게 중요한 관계로 이명박이 술을 꽤 잘 마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성실하며, “잡담”을 하지 않고, 오히려 회의나 사교 석상에서는 오히려 매우 직설적이다. 민경욱은 자신이 2006년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에서 이명박을 처음 만났을 당시 놀란 것은 이명박이 기자회견 전후에 다른 정치가들과는 다르게 기자들과 눈을 맞추거나 “환심” 사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경욱은 이명박 관계자들이 그가 내성적이라고 설명했을 때, 그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blockquote -민경욱의 번역>민 기자는 자신이 2006년 워싱턴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를 처음 보았을 때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 후보가 기자회견 전후에 기자들과 눈을 맞추거나 다가와 말을 걸지 않아서 놀랐다고 했다.</blockquote>

8. 이명박은 “충성스런 부하”보다는 “능력 있는 부하”을 선호하는 것이 분명하며, 또한 이명박은 정실인사와는 무관해 보인다고 민경욱은 기정사실로 했다. 이명박의 고향 친구나 친인척들은 이명박이 현대에 있었을 당시에도 개인적인 인사 청탁을 들어 주지 않아서 실망했다고 민경욱에게 말했다. 이명박의 고려 대학교 동창 중 몇몇은 이명박은 단 한 명의 친한 친구도 없었으며, 이명박이 학연이나 지연 때문에 누군가를 승진시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은 이명박이 정실인사에 기대였다면, (그가 40대에 여러 현대 계열사에서 최고 경영자가 되는) 성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민경욱에게 말했다.<blockquote -민경욱의 번역>이명박 후보는 충성스러운 부하보다는 능력 있는 부하를 분명히 더 좋아하며 정실인사는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민 기자는 예측했다.</blockquote>

9. (기밀) 현대에 근무할 때, 이명박은 현대 설립자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은 실재 정주영의 맏아들을 관리할 정도로 승진했다고 민경욱은 말했다. 민경욱은 이명박이 본인 능력에 기초해 성공한 관계로, 그의 장관이나 정부 내 인물들을 능력에 기초해서 인선할 것이지, 그와 관계가 있다거나 가깝다고 해서 뽑지는 않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이명박의 최측근 혹은 참모라고 주장하는 많은 교수가 있지만, 다수는 이명박의 청와대에서 자리를 확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민경욱은 추정했다민경욱은 “불도저” 이명박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정신을 정부에 도입해서, 능력에 기초한 고용과 해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민경욱은 인정했다.

10. (기밀) 이명박을 둘러싼 많은 혐의에도 불구―이명박은 다양한 금융 및 부동산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민경욱은 그가 만난 이명박을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명박이 매우 “깨끗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명박은 최근에 자녀들을 위장 고용했으며, 최고의 학교 교육을 담보하기 위해 수차례 위장 전입한 사실을 최근에 인정했다. 민경욱은 이명박은 세금을 적게 내고, 자신의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낫다고 아마 합리화할 수 있는 관계로 그런 과거의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예상하며, 게다가 그가 돈 있는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그의 행동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세나 탈법에 대한 이명박의 태도 때문에 이명박은 한국과 행정부 안에서 법질서와 규율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번 선거는 도덕성보다는 경제에 관한 선거이기 때문에 이명박이 “도덕적 결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KBS 민 기자는 말한다.

11. (기밀) 이명박 측근들은 이명박의 최대 장점은 과거 현대 건설 최고 경영자 경험에 있다고 민경욱에게 말했다. 그렇게 거대한 기업의 회장이 되려면, 이명박이 핵심 비전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이명박이 서울 시장 시절에, 버스 교통편 시스템 개편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것은 이명박의 구상이었다. 민경욱은 일련의 성공적인 사업이 꼭 핵심 비전과 동일한 것은 아니며, 이명박이 대운하와 같은 다양한 건설 사업과 같은 구상을 넘어서는 어떤 경제에 대한 비전을 가졌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이 경제적 전문성에 제한이 있었지만, 탁월한 의사결정력 덕분에 아시아 경제위기를 극복의 길로 한국을 인도할 수 있었던 김대중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 민경욱은 말했다.

12. (기밀) 민경욱은 이명박은 평생 독실한 기독교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그 점을 부각할 필요가 없었다―많은 정치가는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지 않는다―그러나 이명박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솔직한 이유는 그를 기독교인의 길로 인도한 사람이 바로 그의 모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3. (기밀) 민경욱이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한국민의 20~30%가 시청할 것이다. 방송 내용은 이명박에 대한 정통한 내용으로 여겨질 것이다. 민경욱은 이번 다큐멘터리를 위한 취재를 해온 한 달 만에 이명박과 관계자들에 의해 회유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번 KBS 작품은 이명박에 대해 아주 호의적일 것이며, 아마도 공공 부문에 속해 있는 한국 제일의 방송국인 점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blockquote -민경욱의 번역>민 기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취재하는 한 달 동안 이 후보와 그의 관계인들에게 분명히 넘어간 것 같다. </blockquote>

하이라이트 부분은 민경욱 기자의 오역? 혹은 마사지 부분을 강조 영어 원문과 비교해보면, 하이라이트 한 부분을(영어의 뜻) 자의적으로 마사지 한듯합니다. 청와대 대변인에는 적격?인가요? 민경욱 기자의 최초 번역 버전을 참고하세요.

07SEOUL3550.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550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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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2/10/2014 
TAG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INR [Intelligence] 
SUBJECT: KBS REPORTER: LEE MYUNG-BAK PRAGMATIC, SHY 
 
Classified By: POL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KBS reporter Min Kyung-wook, Washington 
correspondent until June 2007, is currently producing a 
30-minute documentary on Lee Myung-bak to air December 20 on 
the national TV station.  Recently, Min shared his 
impressions after a full month researching Lee's life, 
meeting his old acquaintances and traveling several times to 
Lee's hometown of Pohang.  Min came away with a very positive 
view of Lee and emphasized that Lee's impoverished background 
and hands-on business experience from an early age led to 
Lee's startling success at Hyundai, as Seoul Mayor, and as 
presidential candidate.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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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hang R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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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 Senior KBS reporter Min Kyung-wook recently told 
poloff that he had been to Lee's boyhood home in Pohang, in 
the southeastern part of the Peninsula, as part of his 
research for a documentary on Lee and his life to air 
December 20 after the results of the presidential election -- 
which Lee will likely win -- have been finalized.  Min said 
there were three teams producing documentaries on Lee 
Myung-bak, Chung Dong-young, and Lee Hoi-chang.  Only the 
winning candidate's documentary would be aired, he said. 
 
¶3.  (C) Min said the house where Lee grew up was a Buddhist 
templ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1910-1945) but was 
abandoned after the Japanese left.  When Lee lived there, the 
former temple grounds housed up to ten families in a 
structure meant for just one family.  After middle school, 
Lee's mother told him he could not attend regular high school 
since Lee's parents, struggling financially, could barely 
afford to send his smart, elder brother Lee Sang-deuk (now 
the Vice Speaker of the National Assembly) to school. 
Therefore, Lee worked during the day and attended Dongji 
Commercial High School at night.  He paid his way through 
school by working various odd jobs such as selling snacks and 
delivering coal.  According to people he met in Pohang and 
other long-time Lee acquaintances, Min said that Lee as a 
child was healthy, diligent and pol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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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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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 After high school, Lee went to Seoul and studied to 
pass the college entrance exam while working as a cleaner in 
a market in Yongsan.  Lee attended the elite Korea 
University.  Lee says in speeches that his tuition was paid 
by the merchants in the Yongsan market and used-book sellers 
near the Cheonggye Stream provided him with books.  On 
graduating, Lee got a job at the then small (98 employees) 
Hyundai Construction company.  According to those who worked 
at Hyundai with Lee, Min said that Lee caught the eye of 
Hyundai founder Chung Ju-young and impressed Chung with his 
hands-on ability and past work experience.  He rose quickly 
through the ranks to become CEO at age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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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gma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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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 Min said he felt Lee was pragmatic and he appears not 
to have indulged in many extravagances over the years.  Min 
supposed that was due to Lee's poor upbri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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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y 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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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 Min said that several of Lee's closest aides and 
acquaintances told him that Lee Myung-bak was at heart a shy 
person and this explained why so many surrounding Lee were 
"his" guys.  Overall, Lee simply felt more comfortable around 
people he knew.  Currently among the campaign staff, there 
were many that worked for Lee when he was Seoul Mayor 
(2002-2006).  Min said that at dinners, Lee was so shy he 
would not even give out small compliments to those close to 
him. 
¶7.  (C) Min said that those he interviewed admitted that Lee 
was quite a good drinker since it was important to drink to 
succeed in business in Korea.  However, Lee was diligent and 
did not engage in "small talks" but rather was very direct in 
meetings and social settings.  Min said he was surprised when 
he first met Lee in Washington at a press conference in 2006, 
because, unlike other politicians, Lee did not make eye 
contact or "talk up" the reporters before or after the press 
conference.  Min said that when Lee's associates explained 
that Lee was shy, he felt it explained such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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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nel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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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 Lee Myung-bak clearly prefers an "able subordinate" 
to a "loyal subordinate" and Lee appears to be immune to 
cronyism, Min posited.  Some of Lee's hometown friends and 
relatives expressed disappointment to Min that Lee had not 
accepted their personal requests even when he was at Hyundai. 
 Some of his fellow Korea University alumni claimed that Lee 
Myung-bak did not have a single close friend and they could 
think of no one Lee had promoted due to any school or 
regional connection.  Many told Min that Lee could not have 
succeeded (becoming chairman of several Hyundai affiliates in 
his 40s) if he had relied on cronyism. 
 
¶9.  (C) At Hyundai, despite Lee having no blood connection to 
the Hyundai founder, Lee had actually risen to the point 
where he managed Chung's eldest son, Min said.  Min said he 
thought that Lee's success based on his ability would likely 
lead him to choose his cabinet and others in government based 
on ability and not proximity to or relationship with Lee. 
For example, there are many professors who claim to be Lee 
Myung-bak confidants and advisors, but many might not find 
positions in a Lee Myung-bak Blue House, Min speculated.  Min 
admitted that "Bulldozer" Lee could bring in an "ends justify 
the means" spirit to government, hiring and firing would 
likely be based on ability. 
 
-------- 
Scandals 
-------- 
 
¶10.  (C) Despite the many accusations surrounding Lee 
Myung-bak -- that he was involved in a variety of financial 
and real estate improprieties -- Min said most people he met 
who knew Lee well claimed that Lee was a very "clean" person. 
 Lee has recently admitted to falsely employing his children 
and changing his address multiple times to ensure the best 
schooling for his kids.  Min said he expected Lee would not 
feel any guilt about these past indiscretions since Lee might 
reason that it was better to pay fewer taxes and give your 
kids the best, and besides, he would likely think that, since 
all with money acted similarly, his actions were excusable. 
Because of Lee's attitude toward tax evasion and law-bending, 
Lee might have difficulty keeping discipline, law and order 
in his administration and in Korea, but since this election 
is about the economy rather than morality, Lee has been able 
to overcome these "moral deficiencies," according to the KBS 
reporter. 
 
------------------- 
Lacking Core 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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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 Those close to Lee Myung-bak have told Min that Lee's 
greatest strength was his past experience as CEO of Hyundai 
Construction.  To be CEO of such a large company, Lee had to 
have a core vision.  Also, when Lee was Seoul Mayor, it was 
Lee's idea to revamp the bus transportation system and to 
unveil Cheonggye Stream.  Min allowed that even a string of 
successful projects did not necessarily equal a core vision 
and said he was unsure if Lee had any vision for the economy 
beyond ideas for various construction projects like the 
cross-country canal.  However, Min said that Lee might be 
similar to Kim Dae-jung, who, despite limited economic 
expertise, was able to guide Korea through the Asian economic 
crisis thanks to superior decision-making. 
 
-------- 
Religion 
-------- 
 
¶12.  (C) Min said that Lee has been a devout Christian all 
his life.  However, Lee did not have to highlight this -- 
many politicians do not divulge their religion -- but Min 
said that Lee was up front about his belief because it was 
his mother that started him on the path to Christianity. 
 
------- 
Comment 
------- 
 
¶13.  (C) The documentary that Min is producing will be 
watched by 20-30 percent of the Korean people.  It will be 
considered the authoritative piece on Lee, his life and 
background.  Min has clearly been won over by Lee and his 
associates in the month he has been researching for this 
documentary.  The KBS piece will, therefore, be quite 
favorable to Lee Myung-bak, perhaps not surprising for 
Korea's number one network, which belongs to the public 
sector.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Korea (North)]
3)
[Korea (South)]
4)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5)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6)
[Intelli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