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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426 2007-11-30 07:24 기밀 주한 미국 대사관

제 목: 베일을 벗는 김대중 납치 사건: 권위주의 과거의 일단락

기 밀 서울 003426 국방부망 배포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0/2014 태그: KN 1) , KS 2) , PGOV 3) , PREL 4) , PINR 5) 제 목: 베일을 벗는 김대중 납치 사건: 권위주의 과거의 일단락 참조: 가. SEOUL 003287 나. SEOUL 003224 참조하는 전문: 07SEOUL3515 분류자: 정치 참사관 조셉 윤.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03/05 15:31

1. (기밀) 요점: 흔히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일컬어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전후 격동의 한국 정치사의 축소판이다. 1960년에 태동한 김 대통령 정치사는 역사적으로 억압받던 전라도 지역 출신으로 목소리 드높던 민주주의 운동가가 되었고, 집권 군사정부에 맞서 반복적으로 대선에 출마했으나, 그 이유로 박해를 받고, 투옥됐고, 1973년에는 외국 땅에서 한국의 중앙정보부 요원에 납치되었다. 10월 24일에 국정원 진실위는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최소한 “묵시적으로 승인”했고, 납치 사건 전모에 “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오래도록 가시지 않던 의구심을 확인해 주었다. 불확실성의 장막에 덮여 있던 김대중 납치 사건과 기타 사건들에 관한 국정원 진실위의 결론은 중요한 파급력을 갖고 있는데, 특히 대선 기간 중이고, 권위주의 시대를 뒤로하고 민주주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요약 끝.

2. (기밀) 10월 24일에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이하 진실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을 1973년에 도쿄에서 납치할 것을 “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진실위는 김대중 납치의 궁극적 목적이, 김대중과 다른 인사들이 견지하듯이, 김대중을 살해하기 위함이었다고 확정적으로 결론짓는 데 실패하였다. 진실위의 보고는 “정부가 생명을 위협하고,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해 피해자인 김대중에게 공식으로 사과해야 하며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역시 언명하였다.

3. (기밀) 진실위의 조사는 2004년 11월에 수립되어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것으로 협의를 두는 7대 주요 사건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진실위는 많은 정보부 요원의 과거 악행을 폭로했는데, 8명을 공산주의 음모 혐의자들이 부당하게 사형당한 인혁당 사건을 포함한다. 진실위는 대한항공(KAL) 858기가 1987년에 버마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개입 없이, 북한 요원의 단독 범행이라고 또한 결론 냈다. 당시에 국가의 정보부 요원들이 독재 정권을 위한 폭정의 흉기로 기능했고, 정치 라이벌이나 반정부 모임을 겨냥하여 공격을 실행하곤 했다.

4. (기밀) 11월 23일 강원택 숭실대학교 교수는 대사관 정무 직원을 상대로 한 발표에서 2007년 대선을 한국 정치의 “정상화”한다는 의미로 설명하였다. 강 교수에 의하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30년이 넘게 권력을 움켜줬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권위주의 정권의 권력남용을 바로잡고, 평등한 민주주의 토대를 쌓는 데 집중하였다. 지난 세 번의 행정부는 박정희 정권의 “성역”과 그 잔재를 청산하는 일을 했다. 말하자면 지역 차별, 군사 당국, 정부와 재벌기업체와의 빈번한 불법 유착관계 등이다. 지난 15년간을 설명하자면, 전두환과 노태우가 횡령혐의로 구속되는 걸 목도했으며, 1961년 쿠데타 이후 나라를 운영하던 비밀스러운 군사 도당을 척결했으며, 전라도 지역 출신들이 정부 내 곳곳으로 등용되었고, 유의미한 재계의 개혁 등을 목도해 왔다.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배후에 감춰진 역사적 사실들을 드러낸 일은 한국이 과거 권위주의 역사를 파악하게 해주는 마지막 장일 듯하다.

5. (기밀) 반독재 친 민주주의와 공약으로 출마했던 김대중은 1971년 대선에서 현직 박정희에게 97만 표차로 패했다. 많은 한국민은 만일 그 대선이 공정하고, 자유롭고, 투명한 선거였더라면, 김대중이 승리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김대중은 자동차 사고로 위장된 암살시도의 피해자가 됐는데, 그 사고로 영구적인 옆구리 부상을 당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김대중은 일본으로 도망쳤고 국외에서 그의 정치활동을 계속했다. 1973년 8월 8일 또는 도쿄의 재외 한국인으로 구성된 반박정희 조직을 발족하기 닷새 전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그를 납치했다. 특히 미국정부 등 외국 정부의 개입 이후에, 김대중은 5일간의 감금 이후에 서울로 돌려보내 지고, 그의 자택 근처에서 풀려났으며, 그 이후에 가택연금에 처했다.

6. (기밀) 수년간의 구속상태와 무산된 암살기도와 대선 도전 실패 이후에,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위업을 세웠다. 아시아 경제 위기의 여파로, 김대중은 박정희 유산의 상당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동안에, 예전에 소외당하던 전라도 출신들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고, 경제 개혁의 닻을 올렸고, “햇볕 정책”으로 냉전 시대 남북관계가 해빙되었고, 종국에는 김대중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준다.

7. (기밀) 김대중은 그의 대변인을 통해서 진실위 보고서의 내용이 박정희의 직접 개입 또는 납치공작 배후에 있는 암살 동기에 대해 인정하지 않은 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김대중은 납치 후 며칠 만에 납치범들이 그를 작은 보트에 태워 바다로 데려갔고, 그의 다리에 콘크리트 추를 달아서 배 밖으로 던지려 했다고 수년에 걸쳐 주장해 왔다. 김대중에 의하면 머리 위 미국 중앙정보부 헬리콥터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운명의 날에 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 김대중이 진실위 조사결과의 불확정성으로 말미암아 [국방부망 배포] 실망했으며, 정치를 떠나 개인적인 이유로도 그는 “모든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고 11월 23일에 김대중의 비서 박준희는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했다. 김대중은 그가 모든 진실이 공개적으로 밝혀지길 34년을 기다려 왔으며, 그날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릴 거라고 역시 언명했다.

8. (기밀) 공식적인 조사가 없었음에도,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김대중 납치 사건을 놓고 수년 동안 진실공방을 펼쳤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직후 박정희 정권은 공식적으로 개입 여부를 부인했으며, 일본정부를 달래기 위해서 김종필 총리를 도쿄로 보냈다. 비록 중앙정보부의 개입이 널리 의심되고 있었지만, 일본정부는 1973년과 1975년에 양국 정부 간에 외교적인 “해결” 이후에 동 납치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를 마감하였다. 하태연 선임 참모는 납치문제를 파헤치기 위한 일본정부가 “합당한 조사”를 실행하지 않는 점에 대해 김대중이 격분했으며,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원했다고 대사관 직원에게 말했다. 냉전 시대 우려 사안과 경제적 상호 이해관계, 일본의 한국 점령 역사에서 기인한 어색한 양국 관계 등이 일본의 정치적인 타협을 촉발한 듯하다.

9. (기밀) 김대중 납치 사건에 가담한 중앙정보부의 역할을 공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한국정부는 범죄의 현장이 되었던 일본의 주권 침해 부분을 역시 인정한 것이다. 국정원의 발표 직후에, 일본 외무성은 한국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로서는 경악하게도 한국 정부는 단순히 납치 사건에 대해 완전한 사과가 아닌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표명하였다.

10. (기밀) 노무현 정부가 야당 한나라당 대선 후보 이명박에 상처를 입히도록 진실위 발표 시기를 맞췄다는, 특히 일본 언론의 억측이 있다. 그러나 국정원 진실위의 보고는 단지 뻔한 결론만을 드러냈을 뿐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중앙정보부와 박정희가 김대중 납치의 배후라고 당연시해왔다. 궁극적으로 이번 발표가 한국의 유권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유권자들은 과거를 캐내는 것보다 경제 활성화에 대해 더욱 관심이 있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7SEOUL3426.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426
 
SIPDIS
 
SIPDIS
 
E.O. 12958: DECL: 12/10/2014
TAG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INR [Intelligence]
SUBJECT: UNCOVERING THE DJ KIDNAPPING: CLOSING THE DOOR ON
AN AUTHORITARIAN PAST
 
REF: A. SEOUL 003287
 
     B. SEOUL 003224
 
Classified By: POL Joseph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The life of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often referred to as Asia's Nelson Mandela, is a microcosm of
the turbulent course of post-war Korean politics.  Beginning
in the 1960s, Kim, a native of the historically repressed
Jeolla region, became a vocal pro-democracy activist and
repeatedly ran in presidential elections against the ruling
junta, for which he was persecuted, jailed and, in 1973,
kidnapped by Korean intelligence agents on foreign soil.  On
October 24, an investigative committee of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 confirmed longstanding suspicions
that then-president Park Chung-hee, at a minimum, "tacitly
approved" and was "indirectly involved" in the kidnapping
plot.  The NIS committee findings regarding the kidnapping
and other incidents previously shrouded in ambiguity hold
important ramifications, especially during this presidential
election season, for a nation leaving behind an authoritarian
past and looking ahead to a democratic future.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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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UNTING FOR PAST WR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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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 On October 24, the Development Committee for
Clarifying the Past of the NIS announced its finding that
former president Park Chung-hee "tacitly approved" of the
1973 kidnapping of then-opposition leader Kim Dae-jung in
Tokyo.  However, the Committee failed to definitively
conclude that the ultimate objective of the kidnapping was to
murder Kim Dae-jung, as he and others have maintained.  The
Committee's report also stated that "the government should
officially apologize to the victim Kim for threatening his
life and infringing upon his human rights and restore his
honor."
 
¶3.  (C) The investigative committee was established in
November 2004 to investigate seven major incidents allegedly
involving NIS' predecessor 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
(KCIA).  The committee revealed many of the intelligence
agency's past misdeeds including the Inhyeokdang incident, in
which eight alleged communist conspirators were unjustly
executed.  The Committee also concluded that the bombing of
Korean Air (KAL) flight 858 over Burma in 1987 was committed
solely by North Korean agents, without KCIA involvement.
During this era, the national intelligence agency served as
the arm of despotism for the authoritarian regimes, often
carrying out targeted attacks against political rivals and
dissident groups.
 
¶4.  (C) At a November 23 presentation to poloffs, Soongsil
University professor and political commentator Kang Won-taek
described the 2007 presidential election as signifying the
"normalization" of Korean politics.  According to Kang,
Presidents Kim Young-sam, Kim Dae-jung and Roh Moo-hyun
focused on rectifying the abuses of the Park Chung-hee, Chun
Doo-hwan and Roh Tae-woo authoritarian regimes, which had
held power for over thirty years, and laying the foundation
for an egalitarian democracy.  The last three administrations
worked to overturn the "sacred cows" and legacies of the Park
Chung-hee regime: regional discrimination, military
authority, and the often illicit relationship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chaebol industry groups.  To illustrate,
the last 15 years saw the arrests of former Presidents Chung
Doo-hwan and Roh Tae-woo on charges of embezzlement, the
removal of a secret military cabal that had run the country
since Park Chung-hee's coup d'etat in 1961, inclusion of
natives from the Jeolla region into all levels of government
and significant reform in the business world.  Disclosing the
facts, at least in part, behind the 1973 kidnapping of Kim
Dae-jung seems to be the latest chapter in the Korean
nation's coming to grips with its authoritarian past.
 
-------------------------
DJ: FROM VICTIM TO VI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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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 Running on a pro-democracy and anti-dictatorship
platform, Kim Dae-jung lost the 1971 presidential election to
incumbent Park Chung-hee by 970,000 votes.  Many Koreans
 
believe that Kim would have won the presidency had the
election been fair, free and transparent.  Soon thereafter,
Kim Dae-jung almost fell victim to an assassination attempt
disguised as a car accident, which left him with a permanent
hip injury.  Fearing for his life, Kim fled to Japan to
continue his political activities abroad.  On August 8, 1973,
or five days before the establishment of an anti-Park
organization of overseas Koreans in Tokyo, KCIA agents
kidnapped him.  After intervention from foreign governments,
especially the USG, Kim was brought back to Seoul and
released near his residence after five days of confinement,
after which he was placed under house arrest.
 
¶6.  (C) After years of arrests, thwarted assassination
attempts and failed presidential campaigns, Kim Dae-jung was
elected president in 1997, marking Korea's first ever
peaceful transfer of power to an opposition group.  In the
aftermath of the Asian Financial Crisis, Kim rolled back many
of Park Chung-hee's legacies.  During Kim's presidency,
previously ostracized Jeolla natives became prominent in both
public and private sectors, economic reform was initiated and
the "Sunshine Policy" thawed Cold War North-South relations,
ultimately netting Kim the Nobel Peace Prize.
 
¶7.  (C) Kim Dae-jung, through his spokesman, has openly
criticized the Committee report for not acknowledging Park's
direct involvement in or an assassination motive behind the
kidnapping plot.  Kim has claimed for years that, in the days
following the kidnapping, his captors took him out to sea in
a small boat and placed concrete weights around his legs,
intending to throw him overboard.  According to Kim, only
direct intervention from an overhead CIA helicopter saved him
from drowning on that fateful day.  On November 23, Kim's
secretary Park Jun-hee told poloffs that he was disappointed
 
SIPDIS
by the inconclusiveness of the committee findings and "wants
the whole truth to come out" for personal, not political,
reasons.  Kim Dae-jung has also stated that he has waited 34
years for the entire truth to be publicly disclosed and will
continue to wait until tha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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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IFICATIONS FOR JAPAN-ROK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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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 In the absence of an official inquiry, both the ROK
and Japanese governments have danced around the kidnapping
incident for years.  Immediately following the kidnapping in
1973, the Park regime formally denied any involvement and
dispatched Prime Minister Kim Jong-pil to placate Tokyo.
Although the KCIA's involvement was widely suspected, the
Japanese government ended its official investigation into the
matter after diplomatic "settlements" between the two
governments in 1973 and 1975.  Senior advisor Ha Tae-yun told
emboffs that Kim Dae-jung was outraged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had not conducted a "proper investigation" into
the matter and wanted an official apology from the Japanese.
Cold War concerns, mutual economic interests and an awkward
bilateral relationship stemming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likely prompted this political compromise from Japan.
 
¶9.  (C) By openly admitting the KCIA's role in the
kidnapping, the ROK also conceded to infringing upon the
sovereignty of Japan, the scene of the crime.  Soon after the
release of the NIS report, the Japanese Foreign Ministry
demanded that the ROK offer a formal apology.  However, to
the Japanese government's consternation, the ROK government
merely expressed its "thoughts of regret" for the incident,
rather than an outright apology.
 
-------
COMMENT
-------
 
¶10.  (C) There was speculation, particularly in the Japanese
media, that the Roh administration timed the announcement to
hurt Lee Myung-bak, the presidential candidate of the
opposition Grand National Party.  However, the NIS committee
report revealed only foregone conclusions; most people had
already assumed that the KCIA and Park Chung-hee were behind
Kim's kidnapping.  Ultimately, this announcement is unlikely
to have any effect on the Korean electorate, who are more
concerned with improving the economy than digging up the
past.
 
VERSHBOW



1)
[Korea (North)]
2)
[Korea (South)]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5)
[Intelli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