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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287 2007-11-08 06:55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노무현 대통령, 레임덕에 빠지지 않아?

기 밀 SEOUL 003287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0/2014 태그: KN2), KS3), PGOV4), PREL5), PINR6) 제 목: 노무현 대통령, 레임덕에 빠지지 않아? 참조: 가. SEOUL 2026 나. SEOUL 3224 참조하는 전문: 07SEOUL3297, 07SEOUL3426 분류자: 정치 참사관 조셉 윤7).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9/26 05:01

1. (기밀) 요점: 노 대통령은 그의 임기 마지막 100일에 들어서면서 전임 대통령이 겪었던 레임덕 운명을 피해 보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까지 그는 그렇게 믿을 만한 일을 해냈다.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지막 임기 한 달 동안 한자릿수 지지율을 보이며 절름발이로 보내야 했다. 대게 그 원인은 대통령의 아들들이 연루된 스캔들 때문으로 김영삼의 경우는 아시아 금융위기도 포함된다. 최근의 노무현의 측근이 연루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스캔들이 다소 있었지만, 김영삼을 괴롭힌 한보 스캔들이나 김대중의 세 아들이 연루된 뇌물 스캔들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비록 스캔들에서 자유롭고, 2007년 대부분 기간에 노무현의 지지율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남은 임기 중에는 자신의 정책 의제 일부를 진척시킬 수 있는 입장에 놓인 듯이 보인다. 요점 끝.

2. (기밀) 노무현이 2006년 말 그의 지지율이 15~20퍼센트 대에 머무른 이래로 대체로 레임덕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지만, 그의 마지막 5년 차 임기 중 성과는 인상적이었다. 2월 23일 미국과 한국은 2012년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에 합의하였다; 6월 30일에는 한미 FTA 협정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10월 2~4일 노무현은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갔다. 덧붙여서 노무현은 매번 몇 주에 걸쳐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논란을 사는 제안을 주기적으로 내놓는다. 예를 들면, 3월에는 대통령 임기를 중임제로 변경하도록 하는 개헌을 제안하였다. 대부분은 새 헌법이 필요하다고 동의하지만, (현행 헌법은 1987년에 작성됨) 어떻게 변경되어야만 하는지 공감대가 전혀 없다. 봄에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대한 지지가 있지만, 노무현이 그 과정을 감독해서는 안 된다고 나타났다. 노무현의 제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많은 식자는 노무현이 개헌이 통과될 거라고 기대하고 그런 제안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 의제 형성을 하고, 임기 마지막 날까지 나라 발전을 위해 싸운 대통령이라는 유산 만들기라고 추정한다.

3. (기밀) 노무현은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였고, 그래서 그의 임기 마지막 해에도 정치 의제를 계속해서 추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측근 2명이 현재 권력 남용으로 조사를 받고 있지만, 노무현은 그 측근들을 방어하지도 않았고, 스캔들에 연루되지도 않았다. 민 컨설팅 박성민은 노무현이 비록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자기 후보를 심는 데 실패했지만, 그게 그의 변함없는 전략일 공산이 크다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설명하였다. 노무현은 능수능란한 선거 캠페인으로 크게 호평받고 있다며, 노무현은 대선이 물 건너갔다고 보고 그 대신 2008년 4월 총선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추정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노무현을 추어올리는 분석이지만, 청와대 소식통과 여타 식자들은 노무현이 이미 2008년에 관심사를 변경했다는 게 중론이다.

4. (기밀) 노 대통령은 진보 대권 주자 중 단일 후보로 친노 후보를 심지 못한 점에서 많은 사람이 실패로 본다. 그는 한명숙 총리나 이해찬 전 총리를 지지하였고, 둘 다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 대신에 노무현의 예전 지지자였던 정동영이 진보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부상하였는데, 대체로 노무현과 거리 두기로 성공한 선거 운동 때문이다.

5. (기밀)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한미 FTA 체결 등 노무현의 정치 의제에 대한 지배력에도 효과적인 국정운영에 실패했다며 끊임없는 언론의 공격을 당했다. 그는 말하는 방식을 단속하지 못해 한미 FTA나 남북 정상회담에서 기인하는 지지를 탕진하게 한 일련의 실책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그의 측근 지지자들도 노무현이 효과적인 대국민 정책 홍보에 실패했다고 사적으로 정치 담당관에게 말한다.

6. (기밀) 김영삼 정부는(1993~98) 임기 몇 달을 남기고 마무리 이외에는 특별한 국정 목표가 없는 듯 보였다고 대사관 직원은 말한다. 1997년 1월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 한보의 파산이 대게 한국을 거의 파산지경으로 몰았다는 데 대체로 수긍한다. 김영삼은 임기 막판에 그의 아들이 한보 파산에 연루되면서 신임을 잃었다. 분명한 점은 1997년 한국의 경제 위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의 비난을 여전히 김영삼이 받고 있다. 유권자들은 경기 하락에 대해 김영삼을 비난하였고, 진보계 김대중을 선출하였다.

7. (기밀) 김대중 정부는(1998~2003) 임기 막판에 세 아들이 연루된 뇌물 추문으로 홍역을 앓았다. 추문이 전부 김대중의 임기 동안에 일었던 벤처 붐과 연결된 범죄에 연루된 건이다. 비록 김대중은 임기 말 몇 달 동안에 상대적으로 달성한 게 적지만, 대선 후보들이 자유롭게 선거 운동을 하도록 하고, 차기 정부를 구성하도록 마지막 임기 몇 달 동안을 나서지 않는 게 자연스럽다고 정가 관측통들은 지적한다.

8. (기밀) 양 김의 임기 마지막 해는 음울했지만, 그들은 소속 정당의 후보를 선택할 정도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이유로 주류 정치계와 연줄이 제한 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양 김은 전반적인 인기가 상관없이 당내 그들의 입지를 만들어준 40년의 정치적인 관계가 있었지만, 노무현은 변호사로 이력을 쌓아왔고 각광을 받는 재주를 보유했다고 자임하는 정치가이지만, 정치적 기반 구축에는 요령이 없었다.

9. (기밀) 많은 식자는 노무현이 앞으로 수년 내 핵심 “노사모” 지지자들과 함께 신당을 구성할 거라고 예상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어떤 형태로든 정치 지도자 역할을 계속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현재 무엇을 달성하거나 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만 유의미하며, 그런 범주에서 선거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정동영의 핵심 참모는 이라크 자이툰 파병 연장 발표 시점도 우연이 아니며, 즉 정동영에게 이명박을 상대로 활용할 이슈를 던져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였다. 노무현과 그의 지지자들은 정동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명박의 승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10. (기밀) 청와대 접선책에 의하면, 노무현은 지미 카터나 알 고어를 모델로 삼아 앞으로 수년 간 자원봉사나 환경 문제에 초점을 맞추길 희망하고 있다. (참조 나) 그가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정치 현장을 지킬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노무현은 지역주의 벽을 허무는 정치를 조성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11. (기밀) 노무현은 새로운 모습의 대통령상이다. 매우 이념적인 노무현은 재벌과 경력직 관료, 엘리트 교육 기관, 그리고 전통적인 정치가 등 지배층을 성토해왔다. 과거 남한 대통령은 대부분 정상에 이른 점에 만족하고 5년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한다. 노무현은 그렇지 않다. 그는 가장 정열적이고 전투적인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관측통은 그가 전직 대통령으로 조용히 세월을 보낼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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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287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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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2/10/2014 
TAGS: KN KS PGOV PREL PINR
SUBJECT: ROH MOO-HYUN: NOT SO LAME DUCK? 
 
REF: A. SEOUL 2026 
 
     ¶B. SEOUL 3224 
 
Classified By: POL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President Roh is entering the last 100 days 
of his presidency determined to avoid the lame duck fate of 
his predecessors; so far, he has done a credible job.  Former 
Presidents Kim Young-sam and Kim Dae-jung limped through the 
last months of their presidencies with single-digit approval 
ratings, due largely to scandals involving their sons, and in 
the case of Kim Young-sam, also the Asian Financial crisis. 
There have been some recent high-profile scandals involving 
Roh aides, but nothing like either the Hanbo scandal that 
plagued Kim Young-sam or the bribery scandals that implicated 
all three of Kim Dae-jung's sons.  Although free from 
scandal, Roh has had desultory popularity ratings for much of 
2007, but is appears to be in position to advance some of his 
policy agenda during his remaining term in office.  End 
Summary 
 
¶2.  (C) Roh has been widely acknowledged as a lame duck 
president since late 2006 when his popularity ratings hovered 
in the teens, but his final year of achievements have 
nonetheless been impressive.  On February 23, the U.S. and 
ROK agreed to transfer wartime operational control in 2012; 
on June 30, the KORUS FTA agreement was signed; and from 
October 2-4, Roh went to Pyongyang for the second ever 
North-South summit.  Additionally, Roh has periodically 
tabled controversial proposals that dominated the headlines 
for a few weeks at a time.  For example, in March he proposed 
that the Constitution be amended to change the presidency to 
a two-term system.  Most agree that a new Constitution is 
necessary (the current Constitution was written in 1987), but 
there is no consensus on how much should be changed.  Polls 
in the spring overwhelmingly reported that, support for an 
amendment notwithstanding, Roh should not oversee the 
process.  The proposal fell flat, but many pundits speculated 
that Roh did not propose it with any expectation the 
amendment would pass, but rather to shape the political 
agenda and build his legacy as a president who fought to 
improve the country to his last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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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ROH IS NOT LAME 
------------------- 
 
¶3.  (C) Roh Moo-hyun has run a relatively clean presidency, 
which has allowed him to continue to drive the political 
agenda in his final year.  While two of his aides are 
currently under investigation for misuse of power, Roh has 
neither defended them nor been implicated in their scandals. 
MIN Consulting President Park Song-min explained to poloff 
that, while Roh had failed to install his candidate as the 
progressive United New Democratic Party (UNDP) candidate, 
this was likely his strategy all along.  He noted that Roh is 
widely acclaimed as a master campaigner and speculated that 
Roh decided early in 2007 that the presidential election was 
not winnable and chose to focus instead on the April 2008 
National Assembly election.  This analysis gives Roh a lot of 
credit, but Blue House sources as well as other pundits echo 
the sentiment that Roh has already shifted his focus to 2008. 
 
 
--------------- 
WHY ROH IS LAME 
--------------- 
 
¶4.  (C) President Roh's failure to install a pro-Roh 
candidate as the single liberal presidential standard-bearer 
is seen by many as a failure.  He supported former Prime 
Ministers Han Myung-sook and Lee Hae-chan, neither of whom 
had much public support.  Instead, erstwhile Roh supporter 
Chung Dong-young emerged as the liberal UNDP candidate, 
largely due to his successful campaign to distance himself 
from Roh. 
 
¶5.  (C) Despite his ability to dominate the political agenda, 
hold a historic summit and sign a KORUS FTA, Roh is 
constantly attacked in the press for his failure to manage 
the country effectively.  His inability to control his speech 
has led to a series of missteps that squandered any support 
gained from the FTA or the summit.  Even his close supporters 
tell poloff privately that Roh has failed to effectively 
communicate his policies to the Korean people. 
 
--------------- 
PAST LAME DU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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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 In the Kim Young-sam administration (1993-98), 
emboffs observed that Kim, in his last months, appeared to 
have no particular aim except to finish (Reftel A.)  It is 
largely accepted that the bankruptcy of the Hanbo "chaebol" 
conglomerate in January 1997 led to Korea's near-insolvency 
in the Asian Financial crisis.  Kim Young-sam was discredited 
in his final days as his son was implicated in the Hanbo 
bankruptcy.  Obviously, there were other reasons for Korea's 
economic crisis in 1997, but Kim Young-sam still receives 
most of the blame.  Voters blamed Kim for the economic 
downturn and elected liberal candidate Kim Dae-jung. 
 
¶7.  (C) Kim Dae-jung (1998-2003) was weighed down at the end 
of his term by the bribery scandals involving his three sons. 
 All were implicated in crimes connected to the boom in 
venture companies during Kim's term.  Although Kim Dae-jung 
accomplished relatively little during his last months in 
office, political observers note that it is natural to step 
back in the last months of the term to let the candidates 
campaign freely and set up their next administration. 
 
---------- 
KINGMAKERS 
---------- 
 
¶8.  (C) Despite the two Kims' dismal final years in office, 
they were both able to control the election to a certain 
extent by selecting their party's candidate.  Some speculate 
that Roh has not been able to play this role because of his 
limited connection to the political mainstream.  While the 
two Kims built forty years of political relationships which 
made them relevant within their party no matter their overall 
popularity, Roh spent his career as a lawyer and a 
self-styled politician with a knack for the spotlight, but 
not necessarily for building a political base. 
 
¶9.  (C) Many pundits expect Roh to form a new political party 
with his core "Roh-sa-mo" supporters in the years to come 
because he wants to continue on as a political leader in some 
form.  Roh is currently relevant only in terms of what he can 
do or accomplish, and to that extent, he has had limited 
success in directing the election.  A key Chung Dong-young 
advisor told poloff that the timing of the announcement to 
extend the Iraq Zaytun deployment was not coincidental -- it 
was aimed at giving Chung an issue to use against Lee 
Myung-bak.  While Roh and his supporters do not openly 
support Chung, they do not, in any event, desire a Lee 
Myung-bak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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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STEPS FOR ROH 
------------------ 
 
¶10.  (C) According to Blue House contacts, Roh hopes to model 
himself on Jimmy Carter and Al Gore and focus on volunteerism 
and environmental issues in the years to come (Reftel B.) 
Whether he keeps this promise or stays on the political scene 
as many expect, Roh will continue to work to foster politics 
that breaks down regional barriers. 
 
------- 
COMMENT 
------- 
 
¶11.  (C) Roh Moo-hyun is a new kind of president in Korea. 
Deeply ideological, Roh has rallied against the establishment 
-- the chaebols, the career bureaucrats, elite educational 
institutions, and traditional politicians.  Past South Korea 
presidents were mostly content to reach the pinnacle and then 
stay put for five years.  Not Roh.  He will go down in 
history as the most energetic and combative president.  This 
is why most observers do not expect him to spend his days as 
ex-president quietly.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Korea (North)]
3)
[Korea (South)]
4)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5)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6)
[Intelligence]
7)
POL Joseph Y.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