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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122 2007-10-17 07:33 2011-08-30 01:4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대통합민주신당 새 후보 정동영, 북한 관련 역량에 의존

기 밀 SEOUL 003122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0/2014 태그: KN2), KS3), PGOV4) PREL5), PINR6) 제 목: 대통합민주신당 새 후보 정동영, 북한 관련 역량에 의존 참조: 가. 2005 SEOUL 4593 나. 2004 SEOUL 4288 분류자: 정치 참사관 조셉 윤7).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11/13 01:18

1. (기밀) 요점: 10월 15일 대통합민주신당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12월 19일 당의 대선 후보임을 발표하였다. 정동영은 현장 투표와 모바일 투표, 그리고 여론조사 투표를 다 합쳐 여유있는 43.8퍼센트 득표율로 경선에서 승리하였다. 경쟁자인 손학규와 이해찬은 각각 34퍼센트와 22.2퍼센트로 뒤쳐졌다. 10월 14일 마지막 투표소 일정에서의 투표율은 평균 단지 14.4퍼센트에 그쳤는데,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한 일반 국민의 애정과 증오의 이중적인 감정을 말해주고 있다.

2. (기밀) 정동영은 10월 17일에 개성을 방문하였고 대북정책을 대선 도전의 주춧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중산층 확대”를 위한 여러 경제 구상 역시 지지한다. 정동영은 보수 이명박 후보에 맞설 유망한 대안으로 나서기에 앞서 우선 진보 가치의 수호자로써 한국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려면 매우 험난한 투쟁을 앞두고 있다. 정동영의 대북 기조는 경제 걱정에 여념이 없는 다수의 남한사람보다도 훨씬 진보적 성향인 듯 보인다. 경제 개혁과 교육 관련 노무현 정부 정책의 상당수를 지속하려고 정동영은 계획하고 있다. 대사관 직원에게 한 과거 정동영의 발언을 보면, 노무현의 대북 정책을 지속할 공산이 크다. 요점 끝.

3. (민감하지만비분류) 정동영은 이미 대한민국 평범한 서민을 이해하는 후보로 자신을 내세우려고 모색해왔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서명되던 날 정동영은 전라도 순창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9명의 형제 중 다섯째이지만, 그의 손위 형제들은 전쟁 중에 친북 동조자들에 의해 사망하였다. 정동영의 인생사는 이명박의 “거렁뱅이에서 부자”가 된 인생 이야기와 판박이로, 정동영은 서울 동대문 시장의 소규모 양복점에서 그의 어머니를 도우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정동영은 서울대학교 사학과 전공과정을 밟았고, 나중에 1987년에는 웨일즈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정동영은 민청학련에 연루되어 3개월 간 복역하였다. 그는 현재 정책 참모인 경희대학교 권만학 교수를 경찰서에서 만났고, 그 이후로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4. (민감하지만비분류) 정동영은 1978년 MBC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고, 격동의 1980년대에 언론인으로써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을 정면에서 다루면서, 그 시절의 경험은 진보적인 정치 목표에 대한 헌신이 공고해지도록 기여하였다. 1996년 정동영은 언론계를 떠나,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0년 그는 진보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이 되었고, 2002년에는 당내 대통령 경선에서 노무현에게 패한 바 있다. 정동영은 2004년 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였지만, 2005년 12월 또 한 번의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6년 2월 열린우리당을 지휘하게 되었지만 지방선거에서 당이 대패하면서 책임을 지고 지도부에서 사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5. (민감하지만비분류) 통일부 장관으로서 정동영은 개성공업지구 건설의 선봉장이었던 관계로 그는 자칭 “개성동영”이라는 애칭도 부여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임기 중에 김정일과 회동하였다. 정동영은 “통일 대통령 후보”를 자처하면서, 핵 프로그램의 해결과 평화 조약의 완성을 뒤이어 정동영 정부 목표로 궁극적인 통일을 명문화하였다. 만일 당선된다면 국비축소 과정을 시작하고, 개성과 북쪽 해주, 그리고 남쪽 인천을 연결하는 삼각 경제지역을 개발하고, 남북한 관통 철도를 개통할 것임을 약정하였다. 정동영은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 역시 원하고 있다.

6. (민감하지만비분류) 정동영은 사람과 상품과 자본이 남북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을 말하였다. 그는 보도에 따르면, 평화 협정이 서명된 즉시, 더 많은 남한 및 다국적 기업이 개성과 북한 전역에 투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7. (민감하지만비분류) 정동영의 경제 계획은 연간 6퍼센트 경제 성장을 돕고, 중산층 4,000만 명을 만드는 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정동영은 향후 5년에 걸쳐 250만 일자리를 창출을 약속하였다. 그는 소규모 사업체가 비용을 절감하도록 돕기 위해 유류비 감소와 신용카드 수수료 감소를 역시 주장하였다. 반면에 이명박은 세금을 줄이길 원하는데, 정동영 캠프는 세금을 줄이든 늘이든 그보다는 어떻게 정부가 세금을 사용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상, 정동영은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를 도입함으로써 증세할 계획인데, 주식 부자들이 더 많이 내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 (기밀) 정동영은 노무현과는 막역한 관계이며, 정동영이 2003년 열린우리당이 창당을 도왔고, 이후 정동영이 의장을 맡았다. 열린우리당을 온전히 지키려는 노무현의 노력에도, 정동영은 2007년 초 새로운 진보연합을 위해 열린우리당을 떠나면서 노무현을 분노케 했다. 이러한 배반은 노무현과 거리 두기 요량으로 한 정동영의 날선 발언과 결합되면서 노무현으로 하여금 이해찬을 성공하지 못한 이해찬 후보를 대통령이 지원하도록 하는 결과를 촉발하였다. 비록 보도를 보면 노무현이 정동영에게 전화를 걸어 경선기간 중에 정동영이 상처를 준 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정동영의 승리에 대한 청와대의 공개적인 반응은 잠잠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명박 지지자들은 정동영을 노무현의 꼬봉이고 배신자라며 조롱하고 있다.

9. (기밀) 일부 여론 관찰자들은 정동영이 북한에 대해 순진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그가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남한의 대북 포용전략을 지지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하였다. 과거 대사관과의 대화 내용을 보면, 정동영은 김정일이 비핵화라는 전략적인 결정을 할 것으로 낙관하는 듯 했다. 정동영은 2005년 김정일과의 회동에서 비핵화라는 과업은 아들인 김정일이 완성하라는 게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김정일이 말했다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통일부 장관 시절 정동영은 한미동맹을 한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초적 토대라고 칭한 바 있고(참조 전문 가), 한국의 경제 발전이 한미동맹에 달려있다고 대사관에게 말한 바 있다. 2004년에 정동영은 한국은 통일 이후에도 미국과의 동맹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대사관에 말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경제 성장과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에 있어 한미동맹의 지속이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참조 전문 나)

10. (기밀) 정동영은 기력을 잃은 대통합민주신당의 독자 후보가 된 통합이다. 민주신당은 완전국민경선제란 자체 목표에는 성공하였지만 국민적 관심을 과대 평가하였다. 정동영의 경선 승리 발표도 경선 결과가 알려진 이후에 나왔다. 언론 보도는 세 명의 진보 후보인 정동영과 무소속 문국현, 그리고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의 연대가 11월 중순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평균 지지율이 2~3퍼센트인 이인제 후보는 진보 단일 후보로 등장할 공산이 적지만, 문국현과의 경쟁은 매우 접전이 될 것이다. 10월 16일 문화 일보가 발표한 한 여론 조사에서 정동영의 지지율은 아직 단 15.7퍼센트이다. 한 선거 관리의원은 정동영이 한 번 기회를 노려보려면 다음 여론조사에서 20퍼센트 이상이 필요하다며, 선거 관리의원인 접선책이 생각하기에 그런 개가는 달성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였다. 20퍼센트 밑으로 나오면 문국현이 진보후보로 낙점받을 여지가 있을 수 있다.

10. (기밀) 정동영은 12월 대선을 승리하기 위해선 중대한 도전에 믹면해 있다. 단 대선 날까지 단 8주만이 남은 상황에서, 그는 먼저 진보 단일 후보가 되기 위한 충분한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만 하고, 그 뒤에는 아직 모든 여론조사에서 50퍼센트에 육박하는 이명박의 상당한 지지율을 잡아먹을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과거에 정동영은 열린우리당 해체와 선거 패배, 그리고 노무현과의 균열에도 살아남은 능숙한 정치가로 판명 났는데, 남한 국민의 견해와 자신의 정책을 더욱 일치시킬 수 있다는 소질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대한 무관심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만일 정동영이 진보 캠프를 단결시킨다 하더라도, 그가 골수 진보주의자들이 투표장에 나서게 하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바시바우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7SEOUL3122.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122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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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2/10/2014 
TAG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INR [Intelligence] 
SUBJECT: NEW UNDP CANDIDATE CHUNG BANKS ON NORTH KOREA 
CREDENTIALS 
 
REF: A. 2005 SEOUL 4593 
     B. 2004 SEOUL 4288 
 
Classified By: POL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On October 15, the progressive United New 
Democratic Party (UNDP) announced that former Unification 
Minister Chung Dong-young is the party's candidate for the 
December 19 presidential election.  Chung won with a 
comfortable 43.8 percent of all physical, mobile phone, and 
opinion poll votes.  Rivals Sohn Hak-kyu and Lee Hae-chan 
trailed with 34 percent and 22.2 percent, respectively. 
Voter turnout in the final set of booth elections on October 
14 averaged a mere 14.4 percent, underscoring the public's 
ambivalence about the UNDP. 
 
¶2.  (C) Chung, who made a trip to Kaesong on October 17, has 
made North Korea policy the cornerstone of his bid for the 
presidency, but he also supports economic initiatives to 
"grow the middle class." Chung still faces an uphill battle 
to sell himself to the Korean public first as the progressive 
standard bearer and then as a viable alternative to 
conservative candidate Lee Myung-bak.  Chung's stance on 
North Korea policy seems to be more liberal than the majority 
of South Koreans who are overwhelmingly concerned about the 
economy.  Chung plans to continue many of the Roh 
administration's policies on economic reform and education. 
His past comments to Embassy officials suggest that he also 
would be likely to continue Roh's policy on North Korea.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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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People 
----------------- 
 
¶3.  (SBU) Already Chung has sought to cast himself as the 
candidate who understands the average Korean.  Chung 
Dong-young was born in Sunchang County, North Jeolla on July 
27, 1953, the day the Armistice was signed.  He was the fifth 
of nine brothers, but his four older brothers were killed by 
North Korean sympathizers during the war.  In a story that 
echoes Lee Myung-bak's "rags-to-riches" story, Chung spent 
his younger years helping his mother in her small tailor shop 
in Dongdaemun Market in Seoul.  Chung went on to major in 
Korean histor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later earning a 
master's degree at University of Wales in 1987.  In 1973 
Chung was jailed for his involvement with the Alliance of 
Democratic Youth and Students.  He met his current chief 
policy advisor, Kyung Hee University professor Kwon Manhak in 
the police station, and the two have been close friends ever 
since. 
 
¶4.  (SBU) Chung started his career as a reporter for MBC in 
1978 and attributes his time as a journalist during the 
turbulent 1980's -- and his front row seat covering the May 
18, 1980 Gwangju massacre -- for reinforcing his commitment 
to progressive political goals.  In 1996, Chung left 
journalism and won a seat in the National Assembly.  In 2000, 
he became spokesman for the progressive Millennium Democratic 
Party, and in 2002 lost in the party's presidential primary 
to Roh Moo-hyun.  Chung went on to become Roh's Unification 
Minister in 2004, but left in December 2005 to prepare for 
another run at the presidency.  In February 2006, he again 
took leadership on the Uri Party only to resign that post in 
May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 party's resounding defeat 
in regional elections. 
 
--------------------------------- 
North Korea: Campaign Cornerstone 
--------------------------------- 
 
¶5.  (SBU) As Unification Minister, Chung spearheaded 
constructio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hence his 
self-awarded nickname "Kaesong Dong-young."  During his 
tenure in the Unification Ministry Chung met with Kim 
Jong-il.  Chung is branding himself the "reunification 
presidential candidate," explicitly naming eventual 
reunification as a goal of his administration, following 
resolution of nuclear programs and finalization of a peace 
treaty.  If elected, he has pledged to begin the disarmament 
process, develop a triangular economic region connecting 
Kaesong with Haeju in the North and Incheon in the South, and 
open a series of cross-border railways.  Chung also wants to 
 
make inter-Korean summit talks a regular occurrence. 
 
-------------- 
Peace is Money 
-------------- 
 
¶6.  (SBU) Chung has said he envisions a common economic 
community on the peninsula by 2020 in which people, goods and 
capital can move freely between the two Koreas.  He 
reportedly believes that once a peace agreement is signed, 
more South Korean and multinational firms will invest in 
Kaesong and in areas throughout North Korea. 
 
¶7.  (SBU) Chung's economic plan is to help the economy expand 
6 percent each year and create a 40-million-strong middle 
class.  To do this, Chung promised to create 2.5 million jobs 
over the next five years.  He also calls for lower oil rates 
and lower credit card commission fees to help small 
businesses cut costs.  While Lee wants to cut taxes, Chung's 
camp says how the government uses taxes is more important 
than cutting or increasing taxes.  In fact, he plans to 
increase taxes by introducing a transaction tax for financial 
derivatives, arguing that stock-rich people should pay more. 
 
---------------------------- 
Rancorous Relations with Roh 
---------------------------- 
 
¶8.  (C) Chung was a close confidante to Roh and helped create 
the Uri Party which Chung headed after its founding in 2003. 
 Chung angered Roh by leaving the Uri Party for the new 
progressive coalition in early 2007 despite Roh's efforts to 
hold the Uri Party together.  This betrayal combined with 
Chung's harsh statements designed to distance himself from 
Roh prompted the president's decision to back Lee Hae-chan's 
failed candidacy.  The Blue House's public reaction to 
Chung's win was muted, although Roh reportedly told Chung in 
a phone call that he should mend ties with those he hut 
during the campaign.  Meanwhile, Lee Myung-bak supporters 
have derided Chung both for being Roh's patsy and for 
betrayi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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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 of Liberal or More of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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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 Chung, who some opinion-watchers have called naive on 
North Korea, has called on the U.S. publicly and privately to 
support South Korea's engagement strategy with the North.  In 
past conversations with the Embassy, Chung seemed optimistic 
that Kim Jong-il had made a strategic decision to 
denuclearize.  Chung said Kim told him during their meeting 
in 2005 that denuclearization was a legacy Kim Il Sung tasked 
his son to complete.  Nevertheless, while Unification 
Minister, Chung told the Embassy that Korea's economic 
development depended on the U.S.-Korea alliance, which he 
called the very foundation of Korea's democracy and market 
economy (reftel a).  In 2004 Chung also told the Embassy that 
Korea would continue to need the alliance with the United 
States after reunification.  In particular, the growth of 
economic and political relations with China underscored the 
importance of continuing the alliance (reftel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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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on the Horizon 
------------------- 
 
¶10.  (C) Chung now finds himself the sole candidate of a 
dysfunctional UNDP.  The party succeeded in its goal to have 
open primaries but overestimated public interest.  Even the 
announcement of Chung's win came after the election results 
were known, diminishing any excitement the announcement 
itself might have generated.  Press reports anticipate an 
alliance of the three liberal candidates - Chung, independent 
Moon Kyk-hyun, and Democratic Party candidate Rhee In-je -- 
by mid-November.  Rhee, whose support rates have averaged 
between 2 and 3 percent, is unlikely to emerge as the single 
liberal candidate, but the race with Moon will be closer.  In 
a poll released by Munwha Ilbo on October 16, Chung's support 
was still only at 15.7 percent.  One election watcher told 
Poloff that Chung needs to get above 20 percent in upcoming 
opinion polls to have a chance, a feat this contact thought 
would be difficult to achieve.  Anything less than 20 percent 
 
could leave the door open for Moon to win the liberal 
candidacy. 
 
 
------- 
Comment 
------- 
 
¶10.  (C) Chung Dong-young faces significant challenges in 
winning the December election.  With only 8 weeks until 
election day, he first has to win enough public support to 
become the sole liberal contender and then find a way to 
erode Lee Myung-bak's sizeable support rating -- still 
hovering around 50 percent in all polls.  In the past, Chung 
has proven to be an adept political operator, surviving the 
Uri Party break up, past election failures, and his rift with 
Roh, an aptitude that suggests he will work to bring his 
policies more in line with South Korean public opinion. 
However, the disinterest in the UNDP primary does not bode 
well -- even if Chung can unify the liberal camp, he may fail 
to motivate die-hard liberals to get out and vote.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Korea (North)]
3)
[Korea (South)]
4)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5)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6)
[Intelligence]
7)
POL Joseph Y.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