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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043 2007-10-09 06:49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남북 정상회담의 긴장 분위기를 반박하고 평화 체제와 경제 사업 강조

기 밀 SEOUL 003043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7/16/2017 태그: PREL2), PROG3), KS4), KN5) 제 목: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남북 정상회담의 긴장 분위기를 반박하고 평화 체제와 경제 사업 강조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9/14 16:52

1. (기밀) 버시바우 대사와의 10월 8일 회동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10월 2~4일 노무현과 김정일 상호 간의 변화무쌍한 사적인 모습에 대해 자세히 논하며, 양 정상 간의 어색한 순간들에 대해 의무를 축소하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재정이 받은 인상은 “체계적인” 회담이었으나, 양 지도자 사이 개인적 유대 관계나 정겨움은 안 보인다는 흔적이 있다. 이런 점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중에 김대중과 김정일 간의 두드러진 정서적인 교감과는 사뭇 다르다. 이재정은 종선 선언 가능성에 관한 미국의 발언에 대해 김정일이 관심을 보인 점, 그리고 다양한 공동 경협 사업의 실현에 관한 논의 등을 부각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종전 선언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압박하고 확인받았다. 요점 끝.

2. (기밀) 김정일은 한국 전쟁 종전 선언 가능성에 관한 부시 대통령의 시드니 발언에 대한 노무현의 자세한 설명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이재정은 말한다. 김정일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할 필요가 있다는 노무현의 견해에 동의하였다. 김정일은 평화체제에 관한 미국의 제안은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평화 협상 과정을 논해야 하고 “3자 또는 4자 관련 당사국”에 대한 문제에 관해 한미 양국이 상호 협의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재정은 “3자 또는 4자 정상”이란 문구가 중국 배제를 염두에 둔 것인지 구체적인 언급을 마다하였다. 이재정은 남북 쌍방은 누굴 3자 또는 4자는 정상으로 삼아야 하는지 논의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직접 관련된 당사국의 하나로 한국을 수용했다고 지적하며, 북한의 예전 입장과는 다른 유의미한 변화라고 하였다.

3.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이 비핵화를 완성하기에 앞서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정상회담이 열릴 거라는 영양가 없는 억측이 돌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전쟁 종식 선언과 평화 체제는 하나로 동일하며 비핵화 노력의 성공적인 완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재정은 6자 회담과 평화체제 논의는 상호 병행해서 가동해야 하며, 한국정부는 해당 문제에 관해 미국과 꾸준히 협의할 거라고 버시바우 대사에게 확언하였다. 김정일은 6자 회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노무현이 6자 회담 주제를 꺼내자 6자 회담의 현재 상태의 설명을 위해 김계관 부상을 호출하였다. 비핵화나 평화체제 논의는 모두 이행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에 따라, 이재정은 미국이 이러한 문제와 관련 속도를 내도록 요청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의 모든 내용의 조속한 이행을 바라지만, 평화 선언은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김정일이 포기하고 검증받은 이후에나 평화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재차 언급하였다.

4. (기밀) 이재정은 노 대통령은 서해평화지대와 여타 경협 사업의 수용 및 북한군의 관심을 촉구하는 일을 우선시하였다. 그 이유는 북한 군부가 평화와 경제조치 사이 연관성을 예전에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정상 간의 오전 정상회담 일정에서 노무현이 서해평화지대를 먼저 제기하자 김정일이 거절하였다. 김정일은 해주에 해군기지가 있고, 해주항도 연루되어 해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주석: 전 현대 경영주가 과거 해주를 공동경제 특구로 제안했지만, 현대가 그 대신 결국 개성을 수용했다고 김정일이 상기시켰다. 주석 끝.) 그러나 김정일은 군 참모와의 논의 이후 오후 일정에서 해주 경제특구를 포함하는 서해평화지대 전체를 수용하였다.

해주특구가 정몽헌의 제안?김정일: “나는 아직도…. 개성 할 수 있다면야 신의주, 신의주도 내가 몽헌 선생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신의주 해보라. 원래 신의주야. 근데 뭐 몽헌 선생이 신의주 까다롭고 힘들다 그러고 그러면 당신 말 들어주겠는데 어디야, 짚으라, 그래서 두 번째 안 내가 꼽은 게 해주였습니다.

그 전기랑 뭐 곤란하고, 원자력발전소, 핵발전소 아니면 큰 중유발전소, 배가 와서 발전 일으키는 해상 발전소나 하나 가져와야지 그거 아보다 배꼽이 큰데 그거 힘들다. 몽헌 선생이 반대했습니다. 어디야. 당신네 어디가 좋은가. 개성…. 그래서 내가 세 번째로 승인한 게 개성이야. 근데 이제 와서 해주 소리가 나왔는데. 우리는 생각도 못해봤고, 내가 아는 건 신의주만 생각해봤는데.” — 출처: 국정원 녹음이 아닌 녹취록

번역자 해설: '정상회담 대화록'의 김정일 발언을 들어보면, 김정일이 꼽은 건지 정몽헌이 꼽은 건지 애매모호하지만, 노 대통령은 정몽헌이 제안한 걸로 이해하고 있다. 처음엔 신의주→해주→개성 순으로 얘기가 나왔고 개성을 정몽헌이 받아들였다.

5.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10.4 정상선언은 여러 잠재성 있는 경제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노무현 정부가 임기를 마치는 2008년 2월께도 진행될 수 있는 건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다. 이재정은 개성공업지구 확대와 개성공단에서 한국으로 연결되는 화물열차 연결, 그리고 백두산 관광 등이 내년 초 모두 이행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10만이 넘는 남한 사람들이 이미 중국을 거쳐 백두산 여행을 함에 따라 저렴한 백두산 직항로 개설은 훨씬 많은 여행객을 모을 거라고 이재정은 믿고 있다. 김정일이 개성공단과 한국 사이 화물노선을 직접 승인한 점은 중요한 성과로 조속한 열차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은 서해공동어로와 평화지대는 장기적인 사업으로 본다고 말하였다. 그는 모든 경협사업은 미국의 협력과 지원이 요구된다고 했고, 그런 이유로 한국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윤병세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미국에 보냈다고 말하였다.

6. (기밀) 제안된 남북 경협 사업의 예상 비용에 대해 묻자, 통일부가 국회에 제안한 내년 회계연도 예산은 1조 3천억 원이 남북사업에 포함되었다고 대답하였다. 해주와 서해평화지대 제안은 포함하지 않았으며, 사업의 범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재정은 많은 사업을 위한 비용 대부분은 민간 부문에서 투자의 형태로 양산될 것임을 인정하였다.

7. (기밀) 이재정에 의하면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더 연장하자는 김정일의 제안은 공식적인 초대가 아니라 접대 차원의 예우라고 한다. 이재정에 의하면 한국문화에서 손님이 방문할 때 하는 의례적인 제안이며, 실행에 옮길 거로 기대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그 점을 지나치게 부풀렸고, 노무현은 예상 밖의 초대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8. (기밀) 남한 언론에서 보도한 식의 “개방”“개혁”이란 용어에 대한 오해는 없었다고 한다. 노무현은 중국을 모델로 언급하면서 개성공단에서 추진하는 등의 사업은 북한 정권을 유지하면서 개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김정일에게 설명하였다. 노무현은 개성공단은 북한을 개방 개혁으로 이끄는 정치적인 수단이 아니라고 김정일에게 강조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우리가 외교적인 언어 사용을 선호할 수 있지만, 한국의 정책은 여전히 북한으로 하여금 북한 사회를 개혁 개방하도록 장려하길 희망하였다.

9. (기밀) 이재정은 김정일의 아리랑 공연과 노무현의 만찬에 김정일이 나타나지 않은 건 놀랄 일도 아니라고 묘사하였다: 북한은 단순히 합의한 대로 일정과 의전을 따랐을 뿐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전체적으로 일정에 따라 매우 “체계적인” 방식으로 수행해서 실제적인 정상선언 내용의 결과를 낳았다.

10. (기밀) 김정일, 그리고 북한의 공식적인 국가수반인 김영남은 노무현과의 회동에서 상반된 태도와 상이한 주제에 관해 얘기하였다. 김영남은 한 시간가량 훨씬 논란이 있는 남북현안을 “매우 전통적인 방식으로” 얘기를 나누었고, 김영남의 처신은 사늘할 정도로 형식적이었다. 반면에 김정일은 훨씬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한 게 분명하였다. 특히 김정일은 서해 북방한계선(이하 NLL)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21세기다. 20세기 현안을 논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라고 김정일이 말했다고 한다. 버시바우 대사는 “회유와 협박”의 양면 전략으로 보이며, 김정일이 회유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이재정은 그런 평가에 견해를 같이하였다.

김정일의 실제 발언은?김정일 : 한두번 총리급 회담 하는 척 하다가 흐지부지 해지는 게 북남 관계의 표준이 아닌가. 제 세계에 맞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만들어 내야지 과거에 하던 제도가 미국 사람들한테도 그랬습니다. 올브라이트한테.. 과거 50년 전쟁이 과거 조상들이 만들어낸 허물을 왜 현실의 인간들이 와서 변명하고 책임져야 하고 구실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올브라이트도 공감했습니다…

북남관계도 그렇습니다. 과거 조상들 거를… 모든 게 시작과 맺음이 있어야 되는데… 계속 그렇게… 그게 내 그랬어. 봉건이 심한 조선에서만 이게 있을 수 있다.

유산은 그저 계속 끌고나가는데 지금. 나쁠 땐 나쁜 것 어떻게 그 청산하면 되겠는데… 그래서 내가 앞으로 이런 면에선 모든 망념에서 우리가 새롭게 갱신시킬 것은 갱신시키면서 내 도덕관에서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조상들이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라고 이렇게 하겠나? 이 시대는 이미 지났단 말입니다. 20세기는 20세기의 모든 일이 다 20세기에서 시작됐고 20세기에서 끝났고 20세기 중도에서 끝난 것도 있고… 새 세기 아닙니까? 새 세긴데… 세계 누구도 지금 20세기 것… 왜 19세기 것 소리를 하냔 말이야… 그 못된 일 한 것들만 자꾸 상기시켜 가지고 이렇게 하는가?

내가 저 미국사람들 보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올브라이트한테도. 그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왜 그 조상들… 지금의 정치인들이 50년 전쟁에 관여한 사람이 있나? 그 사람들이 다…— 출처: 국정원 녹음이 아닌 녹취록

11. (기밀) 이재정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특히 의전적인 문제에서 2000년 정상회담보다 “훨씬 체계적”인 회담이었다고 특징지었다. 북한이 한국의 모든 의전과 준비 제안을 거의 모두 수용한 점은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매우 유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북한은 백화원 초대소에 있는 한국 대통령의 임시 사무소에 한국 국기를 내걸고, 국화를 허용했으며, 북한에 머무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차량에 한국 국기를 통일기와 나란히 내걸 수 있도록 해주었다.

12. (기밀) 남북 정상 간의 어색한 장면에 대해 의미를 축소하려는 이재정의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특히 정상회담을 하루 늘리자는 김정일의 제안을 “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오해”로 돌리려는 이재정의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김정일과 노무현의 입장에서 그런 제안은 본래 공식적이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체계적”이었다는 이재정의 규정은 양 정상이 함께한 일정 중에 사적 유대감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재정의 호의적인 성격 규정은 남북 정상회담을 최대로 포장하려는 시도로 보이며, 그 결과물인 4.10 정상선언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도 마찬가지다. 버시바우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1.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 국정원 (녹음이 아닌 녹취록),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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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043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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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07/16/2017 
TAGS: PREL PROG KS KN
SUBJECT: MOU MINISTER DOWNPLAYS SUMMIT TENSIONS, HIGHLIGHTS 
PEACE REGIME AND ECONOMIC PROJECTS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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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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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 In an October 8 meeting with the Ambassador, 
Unification Minister Lee Jae-jung went into detail about the 
personal dynamics between President Roh Moo-hyun and Kim 
Jong-il at the October 2-4 Summit, and downplayed the awkward 
moments between the two.  Lee's overall impression of the 
summit as "systematic," however, tracked with incidents 
suggesting a lack of warmth and personal connection between 
the two leaders.  This stood in contrast to the obvious 
rapport between Kim Dae-jung and Kim Jong-il during the 2000 
summit.  Lee also highlighted Kim Jong-il's interest in U.S. 
statements on a potential end-of-war declaration, and 
discussed the implementation of the various joint economic 
projects.  The Ambassador pressed for and received assurances 
that the ROK was not seeking an end-of-war declaration before 
full DPRK denuclearization.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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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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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 Kim Jong-il evinced great interest during Roh's 
detailed explanation of President Bush's Sydney statement 
concerning the possibility of a declaration to end the Korean 
War, according to Lee.  Kim agreed with Roh's view that the 
Korean War needed to come to an official end.  Kim reportedly 
emphasized that U.S. suggestions on a peace regime would be 
very important.  Kim agreed that peace process discussions 
should be held, and requested that the U.S. and ROK consult 
with each other on the matter of the "three or four directly 
related parties" issue.  Lee declined to specify whether the 
"three or four directly related parties" language was aimed 
at excluding China.  Lee claimed that the two sides had not 
discussed who the three or four parties should be, though he 
noted that the DPRK had accepted the ROK as one of the 
directly related parties, calling this a significant change 
from its prior position. 
 
¶3. (C)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media had been 
circulating unhelpful speculation that a summit including the 
U.S. President could take place before complete DPRK 
denuclearization.  He emphasized that an end-of-war 
declaration and a peace regime were one and the same and 
depended on a successful conclusion to denuclearization 
efforts.  Lee assured the Ambassador that the Six-Party Talks 
(6PT) and peace regime discussions had to run in parallel to 
each other, and that the ROKG would continue consultations 
with the U.S. on these issues.  Kim Jong-il had spoken at 
length about the importance of the 6PT, and had summoned Vice 
Foreign Minister Kim Gye-gwan to explain the status of the 
talks when Roh raised the subject.  As both denuclearization 
and peace regime discussions would require significant time 
to implement, Lee requested that the U.S. increase its pace 
with respect to these issues.  The Ambassador conveyed that 
the U.S. also desired a more rapid implementation of all 
aspects of the September 2005 Joint Statement, but also 
reiterated President Bush's statement in Sydney that a peace 
declaration could come only after Kim Jong-il had verifiably 
given up his nuclear weapons and progr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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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c Pro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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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 Lee said that President Roh had made it a priority to 
press for the DPRK military's attention to and acceptance of 
the West Sea Peace Zone and other economic projects, since 
the military had not previously acknowledged the link between 
peace and economic measures.  The West Sea Peace Zone 
proposal was rejected by Kim Jong-il when first raised by Roh 
during the morning session between the two summit leaders. 
Kim had said that there were naval bases at Haeju, the port 
city involved, making it inappropriate to designate that area 
as a special economic zone (SEZ).  (NOTE: Kim recalled that a 
former Hyundai CEO had suggested Haeju as a joint economic 
site in the past, but that Hyundai had ultimately accepted 
Kaesong instead. END NOTE.)  However, in the afternoon 
session, and following discussions with his military 
advisors, Kim accepted all parts of the West Sea Peace Zone 
 
proposal, including the Haeju SEZ. 
 
¶5. (C) The Ambassador noted that the October 4 Summit 
Declaration included many potential economic projects, and 
asked which ones could plausibly get under way by February 
2008, when the Roh Administration would leave office.  Lee 
replied that the expansio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the freight railway link from the KIC to the ROK, and 
the Mt. Baekdu tour operations could all be implemented by as 
early as next year.  As over 100,000 South Koreans had 
already traveled to Mt. Baekdu via China, Lee believed that a 
direct route to Mt. Baekdu, which would be less expensive, 
would be an even bigger draw.  Kim Jong-il's official 
endorsement of the freight link between the KIC and the ROK 
was a significant achievement, which could lead to rail 
traffic soon.  On the other hand, Lee said that the ROK 
viewed the West Sea joint fishing area and Peace Zone as a 
long-term project.  He stated that all of the economic 
projects would require cooperation and support from the U.S., 
and that this was why the ROK had sent Deputy NSA Yun 
Byung-se to the U.S. to brief on the results of the summit. 
 
¶6. (C) Asked about the estimated price tag for the proposed 
joint economic projects, Lee replied that MOU's budget 
proposal to the National Assembly for the next fiscal year 
would include 1.3 trillion won (approx 1.5 billion USD) for 
North-South projects.  Haeju and the West Sea proposal would 
not be included, as the scope of the project had yet to be 
determined.  Lee acknowledged that a large share of the cost 
for many of the projects would be borne by the private 
sector, in the form of invest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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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t B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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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 According to Lee, Kim's offer to Roh to extend the 
summit by another day was not an official invitation, but 
rather a polite gesture of hospitality.  In Korean culture, 
according to Lee, such offers were made whenever guests 
visited but were not expected to be acted upon.  The media 
had blown the incident out of proportion, and Roh had not 
taken any offense at this unexpected invitation. 
 
¶8. (C) There was no misunderstanding of the terms "opening" 
and "reform," as reported in the South Korean press.  Roh 
explained to Kim Jong-il that projects such as those being 
pursued at the KIC could help promote reform while 
maintaining the DPRK regime, citing the PRC as a model.  Roh 
emphasized to Kim that the KIC was not a political vehicle to 
open and reform the DPRK.  The Ambassador stressed that, even 
though we might want to use diplomatic language, he hoped the 
ROK's policy was still aimed at encouraging the DPRK to 
reform and open its society. 
 
¶9. (C) Lee portrayed the absence of Kim Jong-il at both the 
Arirang performance and the Roh dinners as no surprise: the 
DPRK had merely followed the agreed-upon schedule and 
protocol.  The summit as a whole had been carried out 
according to schedule, and in a very "systematic" manner that 
resulted in a substantive summit declaration, said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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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t Dyna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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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 Kim Jong-il and Kim Yong-nam, the official DPRK head 
of state, spoke on different topics and with different 
attitudes during their meetings with Roh.  Kim Yong-nam spoke 
with Roh for an hour about the more controversial North-South 
issues in a "very conventional way," and Lee noted that Kim 
Yong-nam's demeanor was formal to the point of being cold. 
On the other hand, Kim Jong-il presented a more flexible 
attitude and had clearly prepared for the summit.  In 
particular, Kim Jong-il did not mention the NLL.  "It's the 
21st century now, so it would not be appropriate to discuss 
20th-century issues," Kim reportedly said.  The Ambassador 
remarked that this seemed to be a "good cop/bad cop" 
situation, with Kim Jong-il playing the role of the good cop. 
 Lee agreed with this assessment. 
 
¶11. (C) Lee characterized the summit as "more systematic" 
than the 2000 summit, particularly in protocol matters.  The 
DPRK accepted almost all of the ROK's protocol and 
 
preparation suggestions, indicating a "very flexible 
attitude" going into the summit.  The DPRK allowed the ROK to 
hang the ROK flag and national flower at a temporary ROK 
Presidential Office at the Paekhwawon Guesthouse, and allowed 
President Roh's car to fly the ROK flag alongside the 
unification flag while in the DP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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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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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 Minister Lee's attempt to downplay awkward moments 
between the summit heads was not convincing.  In particular, 
his attempt to spin the awkward invitation to extend the 
summit by a day as a "cultural misunderstanding" did not make 
sense, as Kim's and Roh's positions made the invitation 
inherently official.  Lee's characterization of the summit as 
"systematic" suggested that the two leaders did not make a 
personal connection during their time together.  Overall, 
Lee's favorable characterization of the summit seemed to be 
aimed at putting the best possible face on the meeting, with 
particular pride in the Declaration that resulted.  END 
COMMENT.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Propaganda]
4)
[Korea (South)]
5)
[Korea (No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