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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024 2007-10-05 08:4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외교통상부 전언: 노무현 대통령, 미국 옹호

기 밀 SEOUL 003024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0/05/2017 태그: PROG, PREL2), PGOV3), KS4), KN5) 제 목: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외교통상부 전언: 노무현 대통령, 미국 옹호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6).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9/12 18:31

1. (기밀) 10월 5일 버시바우 대사와 함께한 회동에서, 조중표 외교부 차관은 한국이 남북 정상회담 중에 남북 관계의 향후 방향에 대한 종합적인 합의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평화와 화해, 그리고 남북 경제협력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 체제의 필요에 합의, 그리고 6자 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김정일의 공언도 역시 대표적인 업적이다. 북방한계선은 비록 노무현이 서해(황해)와 그 주변 분쟁 지역을 공동어로로 변모시키자는 노무현의 제안을 김정일이 수용했지만, 북방한계선(이하 NLL)은 논의하지 않았다. 공동어로 문제는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과의 조율 이후에 국방장관이 세부 사항을 마련하도록 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 경제 협력의 확대는 6자 회담에서 핵 문제에 관한 진전 여부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조중표는 강조하였다. 6자 회담의 진전과 경제 협력은 상호 보완적인 구조가 될 것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6자 회담을 이행한다는 김정일의 다짐을 환영하지만, 한국전쟁을 종식하는 평화 체제는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만 가능하다는 미국의 입장을 재차 언급하였다. 요점 끝.

2. (기밀) 남북 경제 협력은 6자 회담의 진전 여하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등 미국을 대신해 비핵화 문제에 대해 “상대해 주었다.”라고 조중표는 말하였다. 이에 대응으로 김정일은 6자 회담의 근황에 관한 보고를 듣기 위해 6자 회담 북한 수석 협상가인 김계관을 호출했다고 한다. 김계관은 테러지원국 명단이나 적성국교역법 명단에 대해 미국이 행동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일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장 등이 6자 회담 합의 이행의 대표적인 걸림돌이라고 언급하였다. 김정일은 2단계 합의로 나가기 위해서 열과 성의를 다했으며, 모든 당사국은 이른 시일 내에 10월 3일 6자 회담 합의에 명시된 각자의 약정을 수행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노무현은 2005년 9.19 합의와 2007년 2.13 합의에 근거해 6자 회담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김정일의 다짐을 확보하였다고 조중표는 지적하였다.

3.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김정일의 서명과 비핵화를 다짐하는 공개적인 발언을 지적하며 김정일로부터 공개적인 비핵화 약속을 이끌어 낸 한국정부의 노력에 대해 감사하였다. 조중표는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와 6자 회담 10.3 합의에 나온 비핵화 약속을 이번 정상회담의 공동선언에 포함하려 했지만, 그런 문구를 포함하도록 북한을 설득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2007년 10.3 합의는 2007년 2.13 합의의 일부라고 말하였다.

4. (기밀) 남북 쌍방이 평화 체제 논의를 주도할 필요성을 노무현이 제기하였지만, 평화 체제는 북한의 비핵화 노력의 진전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다고 조중표 차관은 말하였다. 노무현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의 평화 조약 추진 가능성에 대해 “이미 결정을 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하였고, 김정일이 이번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김정일은 부시의 발언에 수긍하면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열망을 표명하였다. 김정일은 평화 체제를 지향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하였고, 한국 전쟁을 종식하는 선언 가능성에 관한 한미 논의에 대해 물었다.

5. (기밀) 조병제 북미 국장은 평화체제와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란 문구는 노무현이 제안했다고 했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평화 조약의 군사 조치 부분은 미국 북한 한국이 유일하게 협상해야만 한다. 남북 쌍방이 평화 체제 논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데 합의했고, 한국이 3자 또는 4자 당사국에 포함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데 북한이 합의하였다. 조병제 국장은 김정일과 노무현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을 포함하는 향후 정상회담 필요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하였다. 이는 평화 조약과는 다르다고 조병제는 말하였다. 조 국장은 나중에 미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3자 또는 4자”란 문구가 노무현의 구상이라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였다. 조병제는 한국이 2005년 9.19 합의에 나온 “직접 관련된 당사국”이란 문구를 원했지만, 북한이 “3자 혹은 4자”란 문구를 고수했다고 말하였다. 여타 외교통상부 국장은 “3자 혹은 4자”란 문구는 노무현의 제안이라고 정무 공사 참사관에게 말하였다. 논평: 대사관은 이 부분에서 실제 노무현이 “3자 혹은 4자”란 문구를 애초에 제기했다고 믿고 있다. 조병제 국장은 버시바우 대사와의 회동에서 그 점을 드러내자 아마도 신중을 기했을 것이고, 그래서 거의 즉각적으로 자신의 발언을 철회한 이유라고 본다. 논평 끝.

미 대사관의 착각—김정일의 발언으로 드러나 김정일: “조선전쟁에 관련 있는 3자나 4자들이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데서 분계선 가까운 곳에서 모여 전쟁이 끝나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관심이 있다면 부시 대통령하고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번역자 해설: 정상회담 대화록에서 3자니 4자니 하는 발언은 김정일의 이 발언이 유일하다. 미 대사관은 왜 노무현의 발언이라고 생각했을까? 또, 3자니 4자니 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해서 주섬주섬 논평까지 달았을까?

6.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 종식 선언과 평화 조약은 본질상 같은 구상이며, 미국은 한국전쟁 종식 선언을 위한 과도기적 정상회담을 지지할 공산은 크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평화 조약을 포함한 평화 체제에 관한 최종 합의는 부시 대통령이 시드니에서 말했듯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만 가능할 거라고 말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노 대통령이 이 점을 김정일에게 분명히 한 점에 감사를 표명하면서도, 한국 한미 간의 인식 차이가 없도록 그 점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공식화하라고 촉구하였다.

7. (기밀) 조중표 차관은 엔엘엘은 지금과 같은 현상 유지에서 변화가 없다고 확인하였다. 노 대통령은 “서해평화지대” 제안을 군사 문제에서 경제 문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제안하였다. 김정일은 국방 관련 참모의 생각을 구한 이후에, 서해 분쟁 지역을 특별경제구역으로 탈바꿈하자는 원칙에 합의하였다고 조중표는 말하였다. 민간 선박의 엔엘엘 횡단의 실행계획을 비롯한 서해평화지대의 자세한 내용은 11월 국방장관 회담 중에 더 구체화할 것이다. 한국은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과 적극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다.

8. (기밀) 남과 북은 적대 행위를 끝내고, 대화를 활용해 분쟁을 정리하고 상호 불가침, 그리고 한반도 상의 전쟁에 반대하는 등에 합의하였다. 경계초소를 포함한 국경 지역의 비무장 조치는 논의하지 않았다. 북한은 주한미군과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9. (기밀) 노 대통령은 남북경제 협력을 장기적으로 상호주의적인 관계로 변모시키고자 한다는 그의 목표를 김정일에게 전달하였다. 노무현은 북한이 남한 기업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줄이고, 남북 경제사업에 대한 군사적 협조를 담보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남북 경제사업의 확대함에 비핵화 문제에 관한 진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노무현은 북한의 경제적 토양을 걱정하는 투자자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북일 관계, 북미 관계의 개선이 필요함을 역시 강조하였다.

10. (기밀) 조중표 차관은 한국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도 진전을 이루었지만, 한국인 납북자와 국군 포로 문제에는 그렇지 못했다. 두 정상은 2000년 남북 공동성명을 통일 문제에 관한 권위적인 성명으로 유지한다고 통일 문제에 관해 그 점을 단순히 재확인하였다. 노무현은 남한 국민은 갑작스러운 독일식 통일이 아니라, 오히려 남과 북의 점진적인 통일을 원한다고 김정일에게 말하였다.

11. (기밀) 조 차관은 남북 정상회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조용하고 사무적이였다고 믿고 있다. 노무현과 김영남 간의 첫날 일정은 “경직되어” 있었는데, 김영남은 논의 중에 노동당의 기조를 엄격히 고수하였다. 둘째 날 아침 일정에서, 노무현과 김정일 간의 주목할 만한 논쟁이 있었지만, 오후 일정에는 현안 대부분이 순조롭게 풀렸다. 특히 김정일은 개성공업지구를 북한사회의 “개방과 개혁” 노력으로 규정하는 것에 불쾌해 하였다. 김정일은 둘째 날 남북 정상의 일정에서 현안 대부분이 해결된 이후에 정상회담을 하루 늘리자는 제안을 취소하였다고 말했다.

12. (기밀) 노무현은 남북 정상회담을 일 년에 한 차례 개최하길 원한다고 김정일에게 말했다. 김정일은 “일이 있으면 수시로” 열길 원하였다. 김정일은 남북 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양상이 아니라며 정상회담 “정례화” 요구를 공동성명에 담는 것에는 반대하였다. 노무현이 김정일을 서울로 초대하자, 김정일은 명목상의 국가 원수인 김영남의 방문을 제안하였고, 김정일은 “적절한 여건”이 조성된 이후에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13. (기밀) 외교통상부가 정상회담 기획 업무에 관여하지 못했고, 버시바우 대사의 질의에 대한 응답은―정형화된 논지의 반복―한층 실제적인 논의에 접근성이 결여된 모습이었다. 여타 외교부 접선책은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3자 또는 4자 정상”이란 문구에 반대했지만, 해당 문구가 결국 공식 남북 공동성명에 삽입되게 되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비핵화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 그에 따른 김정일의 다짐이 공동성명에 담긴 점은 외교통상부 입장에선 확실한 업적이다. 논평 끝. 버시바우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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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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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0/05/2017 
TAGS: PROG PREL PGOV KS KN
SUBJECT: MOFAT READOUT OF NORTH-SOUTH SUMMIT: ROH "WENT TO 
BAT" FOR U.S.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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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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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 In an October 5 meeting with the Ambassador, Vice 
Foreign Minister Cho Jung-pyo said that the ROK had reached a 
comprehensive agreement on the future direction of 
inter-Korean relations during the North-South Summit.  Peace,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and reconciliation were 
the major takeaways for the ROK.  An agreement on the need 
for a peace regime to replace the Armistice and Kim Jong-il's 
public commitment to pursue denuclearization through the 
Six-Party Talks were also major achievements.  The Northern 
Limit Line (NLL) was not discussed, though a proposal by Roh 
to turn disputed areas in and around the West Sea (Yellow 
Sea) into a joint fishing area was accepted by Kim Jong-il, 
with details to be worked out by Defense Ministers following 
ROK coordination with the United Nations Command/U.S. Forces 
Korea (UNC/USFK).  Cho emphasized that President Roh made 
clear that further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would be 
dependent on progress on the nuclear issue in the Six Party 
Talks.  The two, Roh told Kim, would have to be mutually 
reinforcing structures.  The Ambassador welcomed Kim 
Jong-il's commitment to implement the Six-Party Talks 
agreements, but reiterated the U.S. position that a peace 
regime to end the Korean War could only follow complete 
denuclearization.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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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uclear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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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 Cho said that Roh "went to bat" on the nuclear issue 
on behalf of the U.S., stressing that progress in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efforts would be contingent 
on progress in the Six Party Talks.  In response, Kim Jong-il 
reportedly called in Kim Gye-gwan, Vice Foreign Minister and 
lead DPRK negotiator for the 6PT, to report on the status of 
the 6PT.  VFM Kim cited a lack of U.S. action on the State 
Sponsors of Terrorism list and Trading with the Enemies Act, 
as well as its insistence that the DPRK address the Japan 
abductees issue, as the major roadblocks to the 
implementation of 6PT agreements.  Kim Jong-il said that the 
DPRK had given its best effort in order to reach an agreement 
for the second phase, and that all parties should carry out 
their commitments specified in the October 3 Six Party 
agreement as soon as possible.  Cho pointed out that Roh 
ultimately obtained a commitment by Kim Jong-il to resolve 
the nuclear issue through the Six Party Talks in accordance 
with the September 19, 2005 and February 13, 2007 agreements. 
 
 
¶3. (C) The Ambassador thanked the ROKG for its efforts in 
extracting a public promise from Kim Jong-il to denuclearize, 
noting Kim Jong-il's signature and public statement 
committing to denuclearization.  Cho stated that the ROK had 
tried to include the denuclearization pledges of the 1992 
North-South Basic Agreement and the October 3 6PT agreement 
in the summit's Joint Declaration, but had been unable to 
persuade the DPRK to include this language.  The DPRK, 
however, said the October 3, 2007 agreement was part of the 
February 13, 2007 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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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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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 VFM Cho said that Roh raised the need for the two 
Koreas to take the lead on peace regime discussions, but also 
emphasized that peace regime efforts would be contingent on 
progress in the DPRK's denuclearization efforts.  Roh 
conveyed President Bush's remarks that he had "already made 
his decision" on pursuing a potential peace treaty with the 
DPRK, and emphasized that Kim Jong-il should make the most of 
this opportunity.  Kim was receptive to Bush's statement, and 
expressed a desire to hold a U.S.-DPRK summit.  Kim agreed in 
principle to work toward a peace regime, and asked about 
U.S.-ROK discussions on a potential declaration to end the 
Korean War. 
 
¶5. (C) Cho Byung-jae, Director General of North American 
Affairs, said that the "three or four directly related 
parties" language on peace regime was suggested by Roh, but 
did not explain why.  Only the U.S., DPRK, and ROK should 
negotiate the strictly military portions of a peace 
agreement.  The DPRK agreed that the two Koreas should play 
"leading roles" for the peace regime discussions, so there 
was no question that the ROK would be included in both the 
three and four party discussions.  DG Cho stated that Kim and 
Roh agreed in principle on the need for a future summit 
meeting, including the U.S. President, to officially end the 
Korean War.  This would be different from a peace treaty, DG 
Cho said.  DG Cho later called the Embassy to retract his 
statement that the "three or four" language had been 
President Roh's idea.  Cho said that the ROK had wanted the 
"directly related parties" language from the September 19, 
2005 6PT agreement, but the DPRK had held firm on the "three 
or four parties" language.  Another MOFAT DG told Pol M/C 
that the "three or four parties" language was proposed by 
Roh.  COMMENT: Post believes that this indicates that Roh 
was, in fact, the first to raise the "three or four parties" 
language.  DG Cho was probably cautioned after the meeting 
with the Ambassador for revealing this point, which was 
probably why he retracted his statement almost immediately. 
END COMMENT. 
 
¶6. (C) The Ambassador replied that an end-of-war declaration 
and a peace treaty were essentially the same idea, in the 
U.S. view, and that the U.S. would be unlikely to support an 
interim summit meeting to declare an end to the Korean War. 
The Ambassador stated that a final agreement on a peace 
regime, including a peace treaty, would be possible only 
after complete denuclearization by the DPRK, as President 
Bush had stated in Sydney.  The Ambassador expressed his 
appreciation that this was made clear to Kim Jong-il by 
President Roh, but urged the ROK to make this clear publicly 
as well, lest there be any perception of U.S.-ROK differences 
on the subject. 
 
--------------- 
Security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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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 VFM Cho confirmed that the Northern Limit Line (NLL) 
would remain unchanged from the current status quo. 
President Roh had proposed the "West Sea Peace Area" as a way 
of shifting the dialogue on the issue from a military one to 
an economic one.  After Kim Jong-il sought input from his 
defense-related advisors, he agreed to the principle of 
transforming the disputed West Sea area into a special 
economic zone, Cho said.  The details of the idea, including 
the logistics of NLL crossings by civilian ships, would be 
further fleshed out during the meeting of the Defense 
Ministers in November.  The ROK would actively consult with 
the UNC/USFK before the meeting. 
 
¶8. (C) Cho noted that the two sides agreed to the termination 
of hostilities, the use of dialogue in settling disputes, 
mutual nonaggression, and opposition to war on the peninsula. 
 Further demilitarization of the border areas, including 
 
guard post pullbacks, were not discussed.  The DPRK also made 
no mention of the U.S. Forces Korea or the Ulchi Focus Lens 
exerc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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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c Co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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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 President Roh conveyed his goal of transforming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into a long-term and 
reciprocal relationship to Kim Jong-il.  Roh emphasized that 
the DPRK had to work to reduce barriers to the business 
community, and ensure military cooperation on joint economic 
projects.  Progress on the nuclear issue had been taken into 
consideration and was reflected in the expansion of joint 
economic projects with the DPRK.  Roh also stressed that 
DPRK-Japan and DPRK-U.S. relations needed to improve in order 
to allay investor concerns about the economic climate of the 
DP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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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Korean 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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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 VFM Cho stated that the ROK had made progress on the 
issue of North-South family reunions, but not on ROK 
abductees or POWs.  The 2000 North-South Joint Declaration 
remained the authoritative statement on unification, so the 
two summit heads simply reaffirmed those points on 
unification.  Roh told Kim that the South Korean public did 
not want a sudden Germany-style unification, but rather a 
gradual 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 
Atmosphere of Dialogue 
---------------------- 
 
¶11. (C) VFM Cho believed that the overall atmosphere of the 
summit discussions was very quiet and businesslike.  The 
atmosphere of the Day 1 sessions between Roh and Kim Yong-nam 
was "rigid," as Kim Yong-nam adhered strictly to the party 
line during discussions.  During the morning session of the 
second day, there were noticeable disputes between Roh and 
Kim Jong-il, though by the afternoon most of the issues had 
been smoothed out.  In particular, Kim was displeased by 
characterization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as 
an effort to "open" and "reform" DPRK society.  Cho said that 
Kim Jong-il cancelled the offer to extend the summit by one 
day after most of the issues had been resolved during the 
second day's afternoon session. 
 
-------------- 
Future Summits 
-------------- 
 
¶12. (C) Roh told Kim Jong-il he wanted North-South summits to 
be held once a year.  Kim Jong-il wanted them "as frequently 
as necessary."  Kim Jong-il opposed calling for "regular" 
meetings in the declaration, emphasizing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Koreas was not of the 
state-to-state variety.  When Roh invited Kim Jong-il to 
visit Seoul, Kim Jong-il proposed that Kim Yong-nam, the 
titular head of state, visit instead, and that Kim Jong-il 
might visit after the "relevant conditions" were met. 
 
------- 
Comment 
------- 
 
¶13. (C) It was clear that MOFAT was left out of the loop on 
the summit planning, and the debriefing to the Ambassador -- 
a recitation of canned talking points -- showed their lack of 
access to the more substantive meetings.  Other MOFAT 
contacts told Post that Foreign Minister Song had objected to 
the language of "three or four" related parties to a 
potential peace regime, but that phrase ultimately made its 
way into the official Joint Declaration.  Still, the repeated 
emphasis on denuclearization by President Roh, and the 
subsequent commitment in the Joint Declaration by Kim 
Jong-il, are solid achievements for MOFAT.  END COMMENT.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Korea (South)]
5)
[Korea (North)]
6)
Amb. Alexander Versh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