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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2539 2007-08-22 08:17 2011-08-30 01:4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이명박 12월 대선 정조준

기 밀 SEOUL 002539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0/2014 태그: KN2) , KS3) , PGOV4) , PREL5) , PINR6) 제 목: 이명박 12월 대선 정조준 참조: 가. 07SEOUL 331, 나. 07SEOUL1418, 다. 07SEOUL1670, 라. 07SEOUL1686, 마. 07SEOUL1711, 바. 07SEOUL4014 분류자: 정치 공사 참사관 조셉 윤7) .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11/01 19:44

1. (기밀) 요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간신히 승리하면서, 차기 한국 대통령이 되기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였다. 이명박의 공개석상 발언과 그의 참모진과의 대화에 바탕을 둔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 현 정부에 비해 북한과의 관계를 줄이고, 미합중국과의 한미동맹 공고화를 담고 있는 보수적인 대외 정책 목표
  • 야심 찬 대내 경제정책, 그 예로 “747” 정책구상, 국내총생산 7퍼센트 경제 성장, 일 인당 국민 소득 40,000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2. (기밀) 2002년에서 2006년 서울시장으로 이명박의 이력은 그에게 “불도저” 라는 별칭을 벌어 주었는데 어려운 사업을 해낸다는 능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명박의 지지자들은 이명박의 “할 수 있다” 정신이 국가에도 통할 수 있다고 아주 확신하고 있다. 이명박은 막강한 선거운동을 펼쳤지만, 가장 큰 의문점인 그가 재산을 부정하게 취득했다는 협의는 남아 있다. 집권당 후보들은 이명박을 쉽게 꺾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공염불처럼 들리는 이유는 이명박의 지지 기반이 커지고 있는 인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요점 끝.

3. (기밀) 8월 20일 이명박은 박근혜를 상대로 간신히 승리를 일구어내면서 한나라당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명박은 대권 도전에서 현재 확실한 선두 주자이다. 8월 21일 중앙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은 53퍼센트 지지를 받아, 2위인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예비후보를 44퍼센트라는 엄청난 차로 따돌렸다. 물론 여론 조사의 격차가 과장되긴 했는데, 그 이유는 집권당이 아직 후보자 선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명박은 경제성장을 회복시킬 후보자로 널리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인상적인 지지율을 계속해서 호령할 것이다. 더욱 희망적이게도 박근혜가 즉각 패배를 인정하고 12월 이명박의 승리를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하였다.

4. (민감하지만비분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격동의 한국 현대 역사의 주요한 발전 과정을 목격한 사람이다. 1941년 일본에서 출생한 그는 광복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전쟁 중에 친형제 자매 중 두 명은 당시 한가로운 어촌인 포항에서 미국의 포격에 의한 사고로 사망하였다. 현재 포항은 산업의 중심지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선동일관 공장 가운데 하나인 포스코의 고향이다. 이명박은 고려대학학생 시절에 친 민주주의 시위에 개입하면서 감옥에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초창기에 이명박은 현대 그룹의 구성원으로 엄한 기업체 임원으로 알려졌으며, 건설 계약을 수주 능력과 공사 마감일을 지키는 능력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명박은 고 정주영 현대 설립자가 자신에게 완전히 의존했다고 종종 자랑하곤 했다. 정주영은 1992년 대통령 자리를 노린 바 있고, 당시에 준비된 실업계 지도자가 청와대를 입성할만하다는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했었다. 이제는 정주영의 전직 직원이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

5. (비분류) 이명박의 가족은 전후 기준으로 봐도 찢어지게 가난했다. 이명박은 종종 “가난”,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긍정의 힘” 을 오늘날 자신을 만든 요인으로 꼽는다. 7명의 자녀 중 다섯째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명박은 어린 시절부터 일해야만 했고, 대학 내내 자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일하였다. 1965년 현대 건설회사에 입사한 이후, 이명박은 35살에 사장이 되고, 46살에 회장이 되었고, 1976~1992년까지 현대계열사 최고경영자를 역임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 가 탄생하였다. 1992년 민주 자유당 비례대표 자격으로 이명박은 정계에 입문하였다.

6. (비분류)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시장을 지낸 이명박은 여러 야심 찬 사업을 출범시키고 감독하였다. 그 중 가장 핵심은 청계천 환경 복구인데, 청계천은 심각히 오염되었으며, 2005년까지 고가도로로 덥혀 있었다; 시청 앞 잔디 광장; 버스 시스템 개편과 서울 숲 개장. 청계천 사업을 필두로 이러한 사업들은 서울 시민에게 인기가 있었고 이명박이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헌신적이라는 환경친화적인 지도자로 명성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골 깊은 관료주의와 정치적 장애물을 헤치고 나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한 모습은 사업가 수완이 공적 영역에도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장으로서 성과와 대규모 건설 사업에 대한 애착 덕택에 “불도저리”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에서의 그의 인기가 서울 선거인단에서9 5,000 표차를 벌려 주었다.

7. (민감하지만비분류) 이명박의 대외정책안인 “MB독트린” 은 다소 모호하지만, 분명하게 보수적 자격을 보여준다. “MB독트린” 은 아래와 같은 요소를 담고 있다:

  • 전반적인 외교 정책. 이명박은 자신의 외교 정책은 이념이 아니라, 국가적 이익에 바탕을 둘 거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보수는 북한에 대해선 부드럽고, 한미동맹에 대해선 충분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노무현 정부에 딱지를 붙여왔다.
  • 북한. 이명박은 완전한 핵 해체와 진정한 북한 개방을 촉진하는 전략적인 정책 추구를 약속하였다. 만일 북한이 자체 핵무기를 해체하고, 북한 사회를 개방한다면, 남한은 북한을 도와 10년 안에 일 인당 미화 3,000달러 국민 소득을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 8월 21일 이명박은 예고된 10월 2~4일 남북정상회담을 비판하길, 비핵화 이전에 정상회담은 사실상 북한의 핵 사업을 인정하는 거라고 말하였다. 이명박의 외교 정책 참모 선봉장인 현인택 고려대학교수는 이명박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회의적이긴 하지만, 애초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회담 날짜가 변경되고, 노무현 정부의 무책임한 대북 접근방식으로 말미암아, 이명박은 더 분명하게 우려표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명박은 남북정상회담은 차기 정부에서 다뤄져야만 한다고도 발언하였다.

8. (기밀) 이명박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정해진 직후에 갖은 인터뷰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는 즉시, 나는 전통적인 한미관계를 회복시키겠다.” 라고 이명박은 말하였다. 그는 한미동맹이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에 이바지할 거라고 설명하였다. “미국과 한국이 각국의 이해관계를 담보하는 가운데 상호 이득이 될 수 있는 많은 분야가 있을 거다. 통일 이전과 그 이후로도 공고한 한미 관계 유지는 바람직할 거로 믿고 있다.” 또 한 명의 핵심 안보 참모인 연세대 김우상 교수는 이러한 미국 중심 정책은 “대선 선거운동 첫날” 부터 핵심 정책기조였다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였다.

9. (기밀) 이명박의 손위 형 중 한 명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은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합의를 되돌리거나 연기하자고 빈번하게 직접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언론은 이 후보가 작전 통제권 이양을 재협상하길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명박은 작전통제권 이양을 지지하지만, 이양시기의 재협상을 추진할 거라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였다. 김우상은 그 말은 전면 재협상을 하자는 게 아니며, 오히려 한국의 군사력에 바탕을 둔 재평가라고 강조하였다.

10. (민감하지만비분류) 이명박의 국내 정책은 “747정책” 이 그 중심인데, 즉 매년 7%의 경제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내용이다. 다수 참모진은 그 내용이 단순히 경제 목표라고 남몰래 지적하면서, 이명박 자신도 그 내용이 비현실적임을 알고 있다고 인정하였다. 최근에, 밀고 있는 운하사업이 집중조명을 못 받고 있지만, 이명박과 참모진들은 운하 사업이 “747 계획” 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명박은 (대운하 효과로) 2020년까지 국내 화물 물동량이 두 배가 되고(2,000만 톤) 컨테이너 물동량이 3배가(4,700만 톤) 될 거라고 언론에 말한 바 있다. 2004년 부로 육로 수송량은 전체 수송량의 90퍼센트를 차지하며, 저비용, 친환경 운하사업의 혜택은 새 도로 등 기반시설 건설에서의 혜택보다 크다고 했다. 강만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운하가 현실화되면 한국의 물류의 15~20퍼센트를 차지할 수 있다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한 바 있다. 이명박은 높은 물류 및 유통비용은 국가 경제에 막대한 부담이 되어왔다며, 운하 사업으로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하고 경제 효율성을 개선할 거라고 이명박은 주장한다. 그러나 운하사업은 노 대통령의 공격을 비롯해 모든 대선 도전자들의 격렬한 공격을 받아왔다. 다수의 분석가는 운하사업을 실현 가능성이 낮은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믿고 있다.

11. (민감하지만비분류) 이명박의 또 다른 한국 경제 부흥 구상은 국제과학비지니스도시 사업이다10. 한국 학계의 위상과 첨단기술 산업에 상당한 부가가치를 더할 거라고 이명박은 말하였다. 이명박은 과학, 미술, 문화, 그리고 관련 산업계의 창조적 생각을 갖은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첨단기술과 미래 산업 분야에서 기본 및 응용과학 간에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그런 도시를 창조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명박은 미국 브룩헤븐 국립 연구소나 독일 막스 프랑크와 같은 연구소를 모방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내 차례 대통령 자유선거에서 충청북도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뉴햄프셔” 라고 칭하는 핵심선거구인 충청남도와 북도 경계지역을 국제과학비지니스도시 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다.

12. (기밀) 이명박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1999년 그는 선거자금법 위반 협의 처분을 받은 이후에 국회의원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마감된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은 몇 가지 협의로 시달림을 받았는데, 대부분이 의심스러운 금융 자금 혹은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다. 이명박 훼방꾼들은 그가 미화 8억 달러를 재산으로 축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 중에서, 박근혜는 이명박은 선출직으로 당선되는 게 부적합하여서 경선 후보 자리를 철회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현재 집권당 캠프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나타난 혐의 제기와 이명박 과거 폭로는 단지 “준비 운동”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집권당 후보 중 한 명인 이해찬 전 총리는 10분간의 일대일 토론으로 이명박을 끝낼 수 있다고 최근 기자들에게 말하였다. 확실히 한국 검찰이 이명박의 불법 부동산 소유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13. (기밀) 이명박은 이런 여러 협의 제기에도 인기도가 높은 이유는 그가 경제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한국 유권자 사이에서 경제가 제일가는 현안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이명박이 불법적으로 재산을 축적했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을 무시할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이며, 이명박이 현대와 서울시에서 보여준 마법이 국가에도 전이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최소한 현재로선 “불도저” 를 멈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버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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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2539.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2539
 
SIPDIS
 
SIPDIS
 
E.O. 12958: DECL: 12/10/2014
TAG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INR [Intelligence]
SUBJECT: GNP CANDIDATE LEE MYUNG-BAK TAKES AIM TOWARD
DECEMBER
 
REF: A. SEOUL 331
 
     B. 1418
     C. 1670
     D. 1686
     E. 1711
     F. 4014
 
Classified By: POL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Former Seoul Mayor Lee Myung-bak won a
narrow victory in the Grand National Party (GNP) primary and
is well positioned to become the next ROK President.  Based
on his public statements and on conversations with his key
advisors, important elements of Lee's campaign for the
December 19 presidential election include:
 
-- Conservative foreign policy goals, including less
engagement on North Korea and stronger alliance with the
United States, compared with the current government.
 
-- Ambitious domestic economic policies, such as the "747"
initiative, providing 7 percent GDP growth, USD 40,000 per
capita GDP, and Korea as the world's 7th largest economy.
 
¶2.  (C) Lee's experience as Seoul Mayor from 2002 to 2006
earned him the nickname "Bulldozer" for his ability to get
tough projects done, and his rags-to-riches life story makes
him popular among South Koreans.  His supporters are quite
convinced that Lee's "can-do" spirit can work for the nation
too.  Lee will wage a formidable campaign, but a big question
mark remains over the allegations that his wealth was
ill-gotten.  Ruling camp candidates are boasting that they
can easily bring down Lee.  Perhaps.  For now, however, that
looks like empty words, because Lee's support base is looking
increasingly impressive.  END SUMMARY.
 
¶3.  (C) Lee Myung-bak was declared the GNP presidential
candidate on August 20, eking out a narrow victory over Park
Geun-hye.  Lee is now the clear front runner in the
presidential sweepstakes.  In an August 21 Joongang Ilbo
poll, Lee received 53 percent support, an enormous 44 percent
ahead of second place UNDP hopeful Sohn Hak-kyu.  Of course,
the gap is exaggerated, because the ruling camp has yet to
choose its nominee.  Still, as Lee is widely perceived as the
candidate to restore economic growth, he will continue to
command impressive support.  Also helpful was Park Geun-hye's
immediate acceptance of defeat and her promise to work toward
Lee's victory in December.
 
--------------------------------------
MB - THE MAN, THE MYTH, THE PRESIDENT?
--------------------------------------
 
¶4.  (SBU) GNP Candidate Lee Myung-bak's has been a witness to
the major developments of Korea's turbulent modern history.
Born in Japan in 1941, he moved back to Korea after national
liberation.  During the Korean War, two of his siblings were
accidentally killed by U.S. shelling in Pohang, a sleepy
fishing town at the time, but now an industrial center, home
to POSCO, among the world's largest integrated steel mill.
Lee's involvement in pro-democracy protests as Korea
University student body president led to a six-month stint in
prison.  Part of Hyundai Group from its nascent stage, Lee
was know as a tough business executive, much admired for his
ability to win construction contracts and then finish them on
time.  Lee often boasted that the late Hyundai founder, Chung
Ju-yung, was completely dependent on him.  Chung Ju-yung
sought the presidency in 1992, quite convinced that the time
was ripe for a proven business leader to win the Blue House.
Now his former employee is doing the same.
 
¶5.  (U) Lee's family was extremely poor, even by the post-war
standard, and Lee often cites "poverty," "his mother," and
"positive forces" as factors that have made him what he is
today.  Fifth out of seven children born to a poor herdsman,
Lee had to work from his youngest years and through college
in order to pay for his studies.  After joining the Hyundai
Construction Company in 1965, he became President at 35 and
Chairman at 46, and served as CEO from 1976-1992, spawning
the "myth of the salaryman."  Lee entered politics in 1992 on
a proportional representation ticket for the then-ruling New
Korea Party.
 
¶6.  (U) As Seoul Mayor from 2002 to 2006, Lee initiated and
oversaw a number of ambitious projects, key among which was
the environmental recovery of Cheonggye Stream, which had
been severely polluted and covered by a highway until 2005;
the construction of a grassy plaza in front of Seoul City
Hall; the streamlining of the bus system and opening of the
Seoul Forest.  These projects -- especially Cheonggye Stream
- continue to be popular with Seoul's citizens and helped Lee
establish a reputation as an environmentally conscious leader
dedicated to improving the quality of life for Seoul
citizens.  He also received plaudits for slashing through
dense bureaucratic and political hurdles to accomplish his
goals, which showed business skills could be transferred to
the public sector.  As Mayor, he also earned the nickname
"Bulldozer Lee" for his accomplishments and fondness for
grand construction projects.  More importantly, his
popularity in Seoul led to over a 5,000 vote margin among
Seoul delegates.
 
--------------
Foreign Policy
--------------
 
¶7.  (SBU) The "MB Doctrine" is Lee's foreign policy package,
somewhat vague, but clearly indicates conservative
credentials.  The MB Doctrine comprises the following
elements:
 
-- Overall Foreign Policy.  Lee argues that his foreign
policy will be based on national interests, not ideologies.
This is an indirect criticism of the Roh administration,
which, conservatives have labeled as soft on North Korea and
not sufficiently supportive of the ROK-U.S. alliance.
 
-- North Korea.  Lee promises to pursue a strategic policy
that fosters the complete nuclear dismantlement and a genuine
opening of North Korea.  If North Korea dismantles its
nuclear weapons and opens its society, South Korea will help
the North attain a per capita income of USD 3,000 within ten
years. On August 21 Lee criticized the planned October 2-4
North South Summit saying that a summit before
denuclearization would in fact recognize the DPRK's nuclear
programs.  Korea University Professor Hyun In-taek, Lee's
lead foreign policy advisor, told poloff Lee had been
skeptical of the summit but had not opposed it originally.
With the change in dates and irresponsible approach by the
Roh government, Lee decided he should state his concerns more
clearly.  Lee also stated that the summit should be handled
by the next administration.
 
----------------------
Policy Toward the U.S.
----------------------
 
¶8.  (C) In an interview soon after he was named the GNP
candidate, Lee said, "Once I am president, I will work to
recover the traditional U.S.-ROK relationship."  He went on
to explain that the Alliance would contribute to stability
and prosperity in Northeast Asia.  He continued to say,
"there would be many areas where the U.S. and Korea can be
mutually beneficial, while securing their respective national
interest. I believe it would be desirable to maintain a solid
U.S.-ROK relationship until and beyond the Korean
unification."  One of his key security advisors, Yonsei
Professor Kim Woo-sang, told poloff this U.S. focused policy
has been a key tenet since "day one of the campaign."
 
¶9.  (C) One of Lee's elder brothers, Vice Speaker of the
National Assembly Lee Sang-deuk, has frequently made direct
pitches for a roll-back or delay of the wartime OPCON
transfer agreement.  Press reports indicate Candidate Lee
hopes to renegotiate the OPCON transfer.  Professor Kim told
poloff that Lee supported OPCON transfer but would push for a
renegotiation of the timeline.  Kim emphasized this would not
involve a full renegotiation, but rather a reassessment based
on Korea's capabilities.
 
-----------------
Domestic Policies
-----------------
 
¶10.  (SBU) Lee's domestic policy centers around his "747
policy," which would provide a 7 percent annual growth rate,
 
double Korea's per capita GDP to USD 40,000, and enable Korea
to become the 7th largest economy within ten years.  Multiple
advisors privately note that these are simply economic goals
and admit that Lee himself knows that they are not realistic.
 Lately, his oft-touted canal project has been out of the
spotlight, but he and his staff emphasize the canal project
is at the heart of the "747 plan."  Lee has told press that
the amount of materials to be transported in Korea will
double (20 million tons), and the number of containers triple
(47 million TEU), by 2020.  Currently, road transport
accounts for 90 percent of total transportation (as of 2004),
and the low-cost, eco-friendly benefits of the canal project
would far outweigh that of building a new road
infrastructure. Former Finance Vice-Minister Kang Man-soo
told poloff that the canal, when realized, could account for
15-20 percent of the logistics load in Korea.  Claiming that
high logistics and distribution costs have been a heavy
burden on the national economy, Lee argues the canal project
will cut costs significantly and improve economic efficiency.
 However, the canal project has been vigorously attacked by
all presidential contenders as well as by President Roh.
Many analysts believe the canal is one campaign promise that
has little chance of being carried out.
 
¶11.  (SBU) Another Lee idea to boost Korea's economy is the
International Science & Business City (ISBC) project, which
he says would add significant value to Korea's academic
standing and high-tech industries.  Lee proposes to create a
city where creative minds and experts in science, art,
culture and related industries would come together and
produce a synergy between basic and applied sciences in a
high-tech, futuristic setting.  Lee says he would like to
emulate a research lab such as the 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 of the U.S. or the Max Plank Institute of Germany,
to put at the center of the science/business city.  The city
project is planned on the border between North and South
Choongchung Provinces, a key electoral district that has been
termed the "New Hampshire of Korea" because in all four free
presidential elections, the candidate North Choongchung
Province chose has won the presidency.
 
--------------------
POTENTIAL ROADBLOCKS
--------------------
 
¶12.  (C) Lee has had a checkered career.  In 1999, he was
forced to resign from the National Assembly after being
convicted of campaign finance violations.  During the just
concluded primary, he was hounded by several allegations,
mostly having to do with shady financial and real estate
dealings.  Lee's detractors claim that he has amassed some
USD 800 million in wealth.  During the GNP primary, Park
Geun-hye said that Lee should withdraw from the race because
he was not fit to be elected.  Now the ruling camp is
insisting that the allegations and revelations of Lee's past
that took place during the GNP primary was just a "warming up
act."  Former Prime Minister Lee Hae-chan, one of the ruling
camp candidates, told journalists recently that he could
destroy Lee in ten minutes of one-on-one debate.  Certainly,
rumors are rife that the ROK prosecutors have solid evidence
of Lee's illegal land hol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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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3.  (C) Despite these allegations, Lee is very popular,
because he continues to emphasize the economy, clearly the
number one issue among Korean voters.  Most Koreans, in fact,
believe that Lee's wealth was amassed illicitly, but they
seem prepared to ignore it, hoping that Lee's magic at
Hyundai and in Seoul City is transferable to the nation.  For
now at least, the "Bulldozer" looks tough to stop.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Korea (North)]
3)
[Korea (South)]
4)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5)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6)
[Intelligence]
7)
POL Joseph Y.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