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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1964 2007-06-29 06:33 2011-08-30 01:4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김영삼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고대한다

  • 기 밀 SEOUL 001964
  • 국방부망 배포1)
  • 국방부망 배포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6/29/2017
  • 태그: PGOV2) , PREL3) , PINR4) , KS5) , KN6)
  • 제 목: 김영삼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고대한다
  •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11/14 06:13

1. (기밀) 요점: 6월 26일 대사와 함께한 오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차기 한국 대통령은 한나라당 출신 보수 정치가가 될 거라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됐건 그렇다고 말하였다. 김영삼은 자신이 선호하는 이명박이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를 계속 앞설 것이며,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믿었다. 김영삼은 집권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가 없어서 유망한 후보를 내세울 수 없다고 강하게 믿었다. 한국인들은 “재난을 또다시” 겪지 않길 원한다. 김영삼은 현 정부의 북한 정책을 “수정주의자” 로 성격을 규정하는 이유는 청와대의 “불명확한 사고” 때문에, 많은 젊은 한국인들이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북한 정책 평가에서 특히 김영삼은 가차 없었다. 김영삼은 새로운 보수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한미동맹의 중요함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김영삼은 6자 회담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있었고, 미국인 너무 빠르게 행보를 하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요점 끝.

2. (비분류) 현재 80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부분을 야당으로 지낸 그의 55년 정치역정에도 전혀 기력이 쇠한 모습이 없다. 몸맵시가 야무지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머리는 칠흑 같았던 김영삼은 대사가 주재한 6월 26일 오찬 2시간 동안에 북한과 정치, 그리고 본인이야기 등을 논의하였다. 항상 그렇듯이 김영삼은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는 데 솔직하고도 과감 없었다.

3. (기밀)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은 사업과 경영 분야에서 심도 있는 경험을 한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이명박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하고, 더 나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으로 전적으로 기대한다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여론 조사는 매우 정확하다고 그는 말하였다. 김영삼은 1992년 대선에서 경쟁자였던 김대중을 한결같이 앞섰으며, 7퍼센트 차 승리로 이어졌다. 실재, 이명박이 지난 몇 주 만에 다소 휘청대고, 정부와 한나라당 맞수의 중상모략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어왔고, 박근혜가 선두인 이명박과의 격차를 다소 좁히긴 했다; 그러나 김영삼은 전 서울 시장이 승자가 될 걸로 예상하였다. 김영삼은 이명박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잘못 설계되었고, 비경제적인 사업이라고 공격을 받으면서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하였고, 자신이 이명박에게 물타기 할 것을 권고했다고 했다.

4. (기밀) 김영삼은 박근혜 후보에 대해선 그녀의 부친이 박정희였다는 것을 제외하고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박정희는 김영삼의 정치 역정 대부분을 투쟁했던 대상이다. 박정희 암살은 김영삼의 지도력을 통한7) 부마민주항쟁 이후 2달 만에 발생했다.

5. (기밀) 김영삼은 집권당 후보가 대선에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하였다. 정동영을 비롯해 이해찬과 한명숙, 그리고 김혁규는 여론조사에서 몇 퍼센트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그들이 이길 수 있겠어? 김영삼은 전 경기도지사 손학규의 전망도 역시 일축하였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것은 그가 당내에서 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탈당은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 손학규는 집권당에서도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김영삼은 평가하였다.

6. (기밀) 근본적으로 집권당은 실패한 대통령인 노무현을 떠맡아야만 한다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한국인은 더는 노무현식의 진보 정책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시험해보았고 좋아하지 않았다. 집권당이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공작을 통해서 결사적으로 표를 얻기 위한 시도를 하겠지만, 한국 유권자들은 그들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어찌 됐건,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수용할 사유가 없는 이유는 김대중이 현대에서 나온 돈인 미화 5억 달러로 2000년 정상회담을 “산 것” 과는 다르게 노무현이 정상회담의 대가를 지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기밀) 1997년 김대중의 당선으로 시작된 10년간의 진보 집권으로 엄청난 피해의 결과를 낳았다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는 경계태세를 늦추게 되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부분의 젊은이는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지 알지 못하는 걸로 나타났다. 그래서 어느 쪽에서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국회에서의 질문에 우유부단한 응답을 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모습이 놀랠 일도 아니다.

8. (기밀) 다음 남한 대통령은 반드시 기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김영삼은 말하였다. 차기 정부는 무엇보다도 한미동맹의 중요함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한미동맹이 없이는 한국 전체가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 모두의 핵심 상대국인 일본과의 손상된 관계도 반드시 보수해야만 한다. 중국에 관해서 김영삼은 현재 중국의 영향력과 잠재력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중국은 단일 정당 집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무수한 문제를 갖고 있다. 중국은 역내나 그 밖에서 막강한 역할을 하려면은 자체 정치제도를 반드시 현대화해야만 한다. 반면에 대만은 번영하는 모습이며, 민주주의도 생동감이 있다. 천수예빈 총통의 초청으로 김영삼은 몇 달 후에 타이베이를 방문할 계획이다.

9. (기밀) 6자 회담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김영삼은 미국의 행보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였다. 대사는 6자 회담 협상은 신중히 심사숙고한 협상이며, 미국정부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의 비핵화가 되기 전까지는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을 거라고 김영삼을 안심시켰다.

10. (기밀) 해방 이후 1998년 김영삼의 임기 말까지 남한 정치에서 확고부동의 인물인 김영삼은 요즘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다. 김영삼은 고향인 부산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긴 하지만, 더는 딱히 역할이 없는데, 특히 그의 임기가 금융위기라는 암운이 드리우며 마감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줄어든 역할로 김영삼의 심기를 극명히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김영삼의 오래된 정적인 김대중은 정치 게임에 여전히 남아 있고, 전라도 지역에서 막대한 득표를 올려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삼은 이명박과 손학규와 같은 주요 정치가들이 자신의 충고와 축복을 받기 위해 방문하는 점을 대사에게 지적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버시바우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7SEOUL1964.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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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06/29/2017
TAG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INR [Intelligence], KS [Korea (South)], KN [Korea (North)]
SUBJECT: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LOOKING FORWARD TO
LEE MYUNG-BAK PRESIDENCY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In a June 26 luncheon meeting with the
Ambassador,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KYS) said that
the next ROK president would be a conservative from the Grand
National Party, either former Seoul Mayor Lee Myung-bak or
former GNP Chairperson Park Geun-hye.  Kim believed that Lee,
his own preference, would continue to lead Park in the polls
and become the GNP nominee.  KYS was also strongly of the
view that the ruling camp could not field a viable candidate
due to President Roh Moo-hyun's lack of public support.
Koreans did not want to see "another disaster."  KYS was
especially scathing in assessing the current government's
North Korea policy, which he characterized as "revisionist."
Because of such "confused thinking" from the Blue House, many
young Koreans did not know who started the Korean War.  KYS
believed that the most important task for the new
conservative president was to reaffirm the paramount
importance of the U.S.-ROK alliance.  KYS was also interested
in the status of the Six Party Talks and urged the U.S. not
to move too fast. End Summary.
 
¶2.  (U)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now an octogenarian,
showed none of the wear and tear from his 55 years in
politics, most of them spent in opposition.  Looking fit and
trim, hair died jet black, KYS discussed politics, North
Korea, and himself for over two hours during a June 26
luncheon hosted by the Ambassador.  As always, he was frank
and upfront in delivering his views.
 
Lee Myung-bak Will Win
----------------------
 
¶3.  (C) Characterizing former Seoul Mayor Lee Myung-bak as
someone with deep business and management experience, KYS
said that he fully expected Lee would win the GNP nomination
and go on to be the next president.  Opinion polls were very
accurate, Kim said.  KYS himself had consistently led his
rival, Kim Dae-jung, in the 1992 race and went on to win by a
7-percent margin, the largest ever in Korean history.  True,
Lee had stumbled somewhat in the last few weeks and had been
hurt by mud-slinging by the government and his GNP opponents,
causing some narrowing in his lead over Park Geun-hye; but,
KYS predicted, the former Seoul Mayor would prevail.  KYS
assessed that Lee had been hurt by his cross-country canal
proposal, which has been attacked as an ill-designed,
uneconomical project, and he had recommended that Lee
downplay it.
 
¶4.  (C) KYS had little to say on Park Geun-hye's candidacy
except to note that her father was Park Chung-hee, a dictator
whom he had fought for most of his political life.  Park
Chung-hee's assassination, KYS said, took place two months
after the Pusan-Masan demonstrations in 1979, which were
triggered through KYS's leadership.
 
Ruling Camp: No Hope
--------------------
 
¶5.  (C) Kim said that there was no chance that a ruling party
candidate could win the presidency.  None of the candidates,
including Chung Dong-young, Lee Hae-chan, Han Myung-sook and
Kim Hyuk-kyu, registered more than couple of percent in the
polls.  How could they possibly win?  Kim also dismissed
former Gyeonggi Governor Sohn Hak-kyu's prospects.  Sohn had
bolted from the GNP because he had no support within the
party.  Such desertions never paid off.  Sohn would not find
support in the ruling camp either, Kim assessed.
 
¶6.  (C) Fundamentally, KYS said, the ruling camp had to carry
Roh Moo-hyun, a failed president.  Koreans no longer wanted
Roh's brand of progressive politics; they had tried it and
didn't like it.  While the ruling camp would try desperately
to win votes through maneuvers such as a North-South summit,
Korean voters would see through them. In any case, KYS said,
there was no reason for Kim Jong-il to accept a summit,
because Roh could not pay for it, unlike Kim Dae-jung who
"bought" the 2000 summit for USD 500 million, which, in turn,
came from Hyundai Corp.
 
¶7.  (C) Ten years of progressive rule, starting with the
election of Kim Dae-jung in 1997, had resulted in enormous
damage, KYS said.  South Koreans were letting their guard
 
down against the communist threat from North Korea.  Recent
polls showed that most young people did not know who started
the Korean War.  This was not surprising in view of
Unification Minister Lee Jae-jung's wishy-washy response to
the question from the National Assembly on which side started
the war.
 
¶8.  (C) The next South Korean president must return to the
basics, KYS said.  The next government must recognize the
paramount importance of the U.S.-ROK alliance, without which
all of Korea would now be under communist rule.  The next
president must also repair the damaged relationship with
Japan, which remained a key partner for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ROK.  In regard to China, KYS thought that its
current influence and potential were exaggerated.  China
still had enormous problems ahead because of its one-party
rule.  China must modernize its political system if it was
play a greater role in the region and beyond.  Taiwan, on the
other hand, looked like a prosperous and vibrant democracy.
Invited by President Chen Shui-bian, KYS was planning on
visiting Taipei in the coming months.
 
Six Party Talks
---------------
 
¶9.  (C) Noting that there had been considerable developments
in the Six Party Talks, KYS questioned whether the U.S. was
moving too fast.  The Ambassador assured Kim that the
negotiations were being conducted cautiously and deliberately
and that Washington would not normalize relations with North
Korea until it had completely and verifiably denuclearized.
 
Comment
-------
 
¶10.  (C) These are retirement years for Kim Young-sam, a
fixture in South Korean politics since the liberation until
the end of his presidency in 1998.  While still popular in
his home town of Busan, KYS no longer has much of a role,
especially as his presidency ended under the dark cloud of
the financial crisis.  This diminished role quite clearly
irks KYS, because his long-time nemesis Kim Dae-jung remains
very much in the game, capable of delivering a large chunk of
votes from the southwest Jeolla region.  Still, KYS took
enormous pleasure in pointing out to the Ambassador that key
politicians, such as Lee Myung-bak and Sohn Hak-kyu, came to
see him to get his advice and blessing.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Intelligence]
5)
[Korea (South)]
6)
[Korea (North)]
7)
번역 주: 1978년 8월 YH무역주식회사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점거 농성으로 집권 공화당은 야당인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이는 곧 야당 국회의원 전원 의원직 사퇴로 이어졌다. 같은 해 9월 전국에서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확대됐다. 한편 김영삼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처분을 하고 감금한 것에 대한 반발이 부마민주항쟁을 작용케 했다는 견해도 있다.―위키백과, 제명사태와 후속 사건을 지도력이라고 대사관은 이해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