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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1480 2007-05-16 09:09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통일부 장관, 대북 쌀 지원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주장

기 밀 SEOUL 001480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5/16/2017 태그: PREL2), PGOV3), MNUC4), KS5), KN6) 제 목: 통일부 장관, 대북 쌀 지원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주장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7).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8/24 09:45

1. (기밀) 요점: 5월 16일 버시바우 대사와의 회동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예고된 5월 17일 남북 철도 시험운행은 한반도 평화 복원을 지향하는 첫걸음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재정은 6자 회담과 남북 대화는 상호 보완적이며,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접근방식에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정부는 미국정부가 6자 회담에서 유연성과 인내심을 보여준대 감사하며, 미국정부가 방코델타아시아(이하 BDA) 문제를 과거지사로 돌리는 마지막 조치를 해주길 희망한다. 한국정부는 남북 채널을 활용해서 2.13 “초기조치” 합의를 떼어 놓고는 의미 있는 남북화해가 가능하지 않음을 북한 사람들에게 말하겠다. 한국정부는 5월 말 40만 톤의 대북 쌀 원조를 수송하기 시작할 계획이지만, 쌀 배송은 3~4개월 걸리며, 전달 속도는 6자 회담의 진전에 따라 추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이재정은 말하였다.

2.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정부는 한 차례의 남북 철도 시험운행의 중요성을 평가한다고 말했고, 남북 교류가 확대될 수 있길 희망한다고 했다. 남북 채널 상의 한국정부의 목표는 6자 회담 상의 한미 공동 노력과 비슷하다: 비핵화, 관계 정상화, 그리고 경제 협력. 우리 공통의 목표와 관련 통일된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는 게 중요하다. 미국정부는 남북 상호 지원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한국의 능력을 환영한다; 북한이 자체 약정을 지키도록 우리의 제한된 지렛대를 아껴 쓸 필요가 있다. 미국정부는 BDA에 대해 인내심을 보여왔지만, 이제 6자 회담은 북한 비핵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요점 끝.

남북, 열차시험운행 합의서 채택경의선 시험운행구간은 남측 문산역에서 북측 개성역까지, 동해선의 경우 북측 금강산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다. 경의선 열차에는 남측의 객차 5량, 동해선 열차에는 북측 객차 5량이 연결된다. 자세한 내용은 남북, 열차시험운행 합의서 채택 통일뉴스 기사를 보라

3. (기밀) 5월 16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예고된 5월 17일 남북 철도 시험운행은 한반도 평화시대로 이끄는 첫걸음으로 본다며, 북한 비핵화라는 양국의 공동 목표에도 보탬이 될 거라고 버시바우 대사에게 말하였다. 이재정은 이번 행사는 긴밀한 한미 협력과 6자 회담에서의 노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고 이재정은 말하였다. 그는 남한 문산역과 북한 개성역으로 이어지는 서해지구를 따라 북측으로 올라가는 열차에 탑승할 계획이며8), 그와 함께하는 여타 한국의 귀빈들은 이종석 전임 통일부 장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그리고 이춘희 건설교통부 차관 등이다. (주석: 언론 보도로는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신언상 통일부 차관들이 여타 인사들과 함께 북측 금강산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 남측으로 내려가는 열차에 탑승할 예정이다9). 정동영 통일부 전 장관은 그가 “한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정치인”이라는 부분적인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다.)

4.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정부는 역사적인 남북 열차 시험운행의 중요성을 평가한다며 남북 사업이 어떻게 진화할지 지켜보는 데 관심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번 일은 첫걸음이지만, 남북한 사람들 간의 한층 정규적인 교류 움직임은 우리가 모두 목도하고 싶은 일이다.

이재정, “남북관계-6자회담 틀 병행추진 변함 없을 것”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4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남북관계-6자회담 연계론”에 대해서 남북관계와 6자회담을 병행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원칙론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재정, "남북관계-6자회담 틀 병행추진 변함 없을 것" 통일뉴스를 읽어보라.

5.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6자 회담에서 미국정부와 한국정부의 목표는 남북 채널에서 한국정부가 달성하려는 내용과 비슷하다: 비핵화, 관계 정상화, 대북 경제·인도적 협력. 남북 대화와 6자 회담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잠재적인 차이에 대한 만연한 언론의 추정보도, 그리고 한국정부가 사용하는 “연계”“반걸음 뒤”라는 용어를 사용하든 관계없이, 한미 양측은 공유하는 목적에 관해 통일된 대북 메시지를 보내야만 한다는 데 동의하였다.

6. (기밀) 이재정은 언론보도는 언론의 추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미국정부와 한국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은 차이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는 남북대화나 6자 회담은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음을 여전히 믿고 있다. 한국정부는 6자 회담에 충실하게 임할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목표를 유지할 뜻을 다짐한다; 두 가지 목표는 병행해 진행한다. 2.13 “초기조치” 합의 이후 과거 3개월 동안 한국정부는 남북관계를 정례화하려고 시도해왔다. 적십자 회담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의 중요함, 그리고 2.13합의 이행 없이는 의미 있는 남북 화해가 구체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었다.

7. (기밀) 이재정은 5월 15일 관계 부처 합동기관인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이하 교추협)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미화 1억 7천만 달러 상당의) 쌀 40만 톤, 그리고 미화 8천만 달러 상당의 대북 경공업 원자재를 위한 기금 조성을 승인하였다. 교추협은 전체 쌀 지원량이 제공되기 이전에, 북한은 2.13합의를 이행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이재정은 보고하였다. 국내산 쌀 15만 톤의 일부 배송은 3~4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쌀 수송이 5월 말에 시작된다고 할지라도, 8월 말이나 9월 전까지는 완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만일 북한이 6자 회담서 약속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쌀 운송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8. (기밀) 이재정은 남북한 쌍방은 차후 3개월간의 남북 협력을 계획하기 위한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5월 29일~6월 1일간 서울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장관급회담은 경협사업과 인도적 원조를 논의하고 한국정부는 장래의 남북대화를 위한 제도적인 토대를 선도해 나갈 예정이다. 모든 남북 대화와 마찬가지로, 6자 회담 지원을 모색할 거라고 이재정은 말하였다.

9.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남북 접촉의 정례화가 주는 의미를 이해한다고 말하였다. 한 차례의 철도 시험운행에 따른 최근 노력은 매번 바닥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시사해 준다. 열차 시험운행은 상징적 행사이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남북한 사이 실질적인 교류를 목도하길 희망하였다. 그는 쌀과 2.13 합의 이행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통일부 장관의 말에 감사하였고, 쌀 운송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한국정부의 능력을 평가하였다. 이 사안은 북한이 자체 의무를 다하도록 제한된 지렛대를 아껴 쓰는데 긴요하기에 중요하다. 작년 한국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중단한 결정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결의를 보여준 상징이 되었다. 쌀 원조를 그 타당성에 비해 더 중요시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적 현실과 상징성을 쌀 수송의 절차 속에서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10.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이 BDA 동결 사태 해결에서 BDA 자금 이체로, 자동화 자금 이체로 골대를 계속 옮겨왔지만, 미국정부가 BDA 문제에 대해 인내심을 보여왔다. 미국정부는 BDA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아직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는 2.13 합의의 1단계를 넘어서 다음 단계에 들어설 필요가 있다. 북한의 BDA 문제 집착 때문에 북한이 수령하기로 한 중유가 지연되었고, 6자 회담 장관급회담에서 그 절차적인 진척을 도울 수 있었지만, 북한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였다.

11. (기밀) 최근 북한의 행보가 6자 회담보다는 남북관계를 더욱 가치 있게 본다는 의미인지 묻자, 이재정은 북한의 우선 사항은 북미관계의 개선이란 점은 변함없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였다. 북한으로선 북미관계 개선이 심지어 6자 회담보다도 더 높은 우선 사항이다. 이재정은 미합중국과의 관계 정상화 없이는 진정한 미래가 없음을 북한은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베트남 관계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지난해 한국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이후에 대북 쌀 원조를 중단한 작년에 북한은 남북관계를 완전히 중단했었다. 그 점은 한국정부가 북한에 대해 얼마나 지렛대가 미약한지, 북한정부가 한국에 대해 얼마나 개의치 않는지 보여준다.

12. (기밀) 제재를 지렛대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식은 북한을 변화하도록 진정한 대화와 협력을 시작하는 거라고 이재정은 의견을 내었다. 그는 항상 더 많은 북미대화를 지지해왔고 북한 대화 상대역과의 의견 교환을 활용해서 북한은 시간이 다하기 전에 현 미국정부와의 기회의 물꼬를 잘 활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해왔다; 2.13 합의의 이행과 6자 회담의 진전은 BDA보다 더 중요시한다. 이재정은 BDA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 특히 힐 차관보와 버시바우 대사의 노력에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하다며, 미국정부가 BDA 문제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조치에 나서주길 희망하였다.

13.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결정은 남북 쌍방에 의해 정해질 문제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공동 목표를 고려할 때 한국정부는 미국정부가 놀라는 일이 없도록 최신 근황을 알려주길 희망한다.

14. (기밀) 이재정은 언론의 추정보도에도 한국정부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전망이 현시점에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재정의 견해로는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화해의 진척을 돕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이해관계에 대해 묻자, 이재정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생각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는 50년 동안 중요한 동맹을 유지해왔으며, 양국은 친구이며 동반자이다. 한국정부는 미국정부를 놀라게 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정부도 역시 한미관계의 측면에서 한국정부와 협의 없이 어떤 놀라운 일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15. (기밀)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BDA 문제가 늦지 않게 해결되어 큰 외교적인 파장이 없이 한국정부가 대북 쌀 원조를 보낼 수 있길 희망하는 게 분명하다. 2007년 3월 말 한국정부는 비료 30만 톤 대북 지원에 대해 “3개월간의” 운송을 시작하였고, 만일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충실히 실천하지 않는다면 대북 원조는 중단될 수 있다고 대사관에 주장한 바 있다. 6자 회담이 답보상태 임에도, 4월 18~22일 남북경제회담에서 쌀 수송을 개시하기로 합의했지만, “5월 말” 즈음에 북한이 2.13 합의의 약정 사항을 마무리 짓길 희망하면서 그때까지 쌀을 운송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두 달 후에 만일 필요하다면 운송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3~4개월에 걸쳐 40만 톤의 쌀 원조를 개시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만일 6자 회담이 BDA 문제로 중단된다면, 비료지원에서도 그랬듯이 한국정부는 쌀 수송을 천천히 개시하도록 하고, 정치 현실이 한국정부의 희망 사항에 부흥하길 기도할 공산이 크다. 논평 끝. 버시바우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7SEOUL1480.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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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R R E C T E D COPY CLASSIFIED BY STATEMENT
 
E.O. 12958: DECL: 05/14/2017
TAGS: PGOV PREL KS KN
SUBJECT: URI PARTY VISIT TO PYONGYANG: DPRK SAID IT IS
COMMITTED TO INITIAL ACTIONS AGREEMENT
 
REF: SEOUL 1387
 
CLASSIFIED BY: AMBASSADOR ALEXANDER R. VERSHBOW
FOR REASONS 1.4(B,D)
-------
SUMMARY
-------
 
¶1. (C) SUMMARY: Five Uri Party parliamentarians, led by
potential presidential candidate Rep. Kim Hyuk-kyu, met with
the Ambassador on May 9 to brief him on their May 2-5 trip to
Pyongyang.  Kim said that the North Korean side had stressed:
(a) its commitment to implementing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and (b) its eagerness to establish
diplomatic ties with the United States.  Kim said that his
delegation -- all members of Uri's Northeast Asian Peace
Committee -- visited Pyongyang in part to help build trust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which it feared would
diminish if the Banco Delta Asia (BDA) issue were not
resolved soon.
 
¶2. (C) Rep. Lee Hwa-young said that this July 4 would be the
35th anniversary of the 1972 North-South Joint Communique for
improving inter-Korean relations and that the North wanted to
host an international political forum -- its first -- for the
occasion.  The Ambassador remarked that if so, the forum
should be inclusive, reflecting diverse points of view.  Rep.
Lee Kwang-jae, who is considered to be President Roh
Moo-hyun's "right-hand," remarked that North Korea harbored
some distrust of China, especially in the way it handled BDA,
and that it did not like being so dependent on China for aid.
 This was why, Kim Hyuk-kyu maintained, the U.S. and ROK
should give aid to North Korea in tandem with (not a
half-step behind) Six-Party Talks (6PT) progress.  Lee
Kwang-jae described two competing factions in North Korea:
those who wanted to jo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ose who still subscribed to the old way of thinking.  EN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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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S MESSAGE: PLAN TO IMPLEMENT FEB. 13 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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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 Rep. Kim Hyuk-kyu, part of the pro-Roh faction in the
National Assembly and likely to make a bid for the
Presidency, told the Ambassador on May 9 that he and four
other members of Uri's Northeast Asia Peace Committee
(reftel) went to Pyongyang May 2-5 to see if North Korea
intended to implement the steps outlined in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once the BDA issue was resolved.
DPRK interlocutors repeatedly said yes, including Vice Chair
of the Asia Pacific Peace Committee, Chae Song-chol.
 
¶4. (C) Kim said they told the North Koreans that it was
important to establish mutual trust between the U.S. and DPRK
as a means to resolve other issues.  Kim said he shared his
views as someone who understood American politics and culture
well.  (NOTE: Kim lived in the U.S. from 1971 to 1991 and
became a successful businessman, serving as president of the
Korean Businessmen's Association of New York.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persuaded him to join Korean politics
by appointing him Senior Secretary for Civil Affairs at the
Blue House.  Kim left the GNP in 2003 and joined the Uri
Party.  END NOTE.)  The DPRK's response was that it truly
wanted diplomatic ties with the U.S.; the North Koreans asked
the Uri delegation to convey this message to the U.S.  Rep.
Kim Jong-yull added the delegation had said that the world
was watching to see if the DPRK abided by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If it did not, it would lose the trust of the
world, not just the U.S.  He had remarked to their
interlocutors that the U.S. kept its word -- even in American
movies, you never saw characters who stabbed people in the
back.  The Ambassador quipped that this was good, since Kim
Jong-il liked to watch U.S. 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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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ING THE PUEBLO TO TH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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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 Kim Hyuk-kyu had told his interlocutors that it was
important for the DPRK to take the initiative to build trust,
and said returning the USS Pueblo would be a good opportunity
for Kim Jong-il to do that -- not just with the U.S., but
also with the rest of the world.  He noted that neither the
DPRK nor the U.S. would be able actually to use the Pueblo,
so returning it would be a symbolic expression of building
friendship.  Kim recounted how the North Koreans had reacted
with surprise to this suggestion, asking if the delegation
had consulted with the U.S. before visiting Pyongyang, which
Kim denied.  Rep. Kim Jong-yull added that the North Koreans
were unhappy and became red-faced at the delegation's
suggestion.  They had said they used the Pueblo as
educational material because it was proof of U.S. attacks.
Kim Hyuk-kyu said he had told them, "Since you've done so
much education, why not return it?"  Kim Jong-yull said that
he had told their interlocutors that if the DPRK returned the
Pueblo, it would prove that that DPRK had changed and could
be trusted.  The Ambassador remarked that this was
complicated.  Legally, the Pueblo was not the property of the
DPRK, so the DPRK should return it to the U.S. on those
grounds.  At the same time, he said he doubted that returning
it would have a positive impact on the U.S. and might even
rekindle old animosity toward North Korea.  Lee Kwang-jae
said that the North Koreans had raised the same concerns.
 
¶6. (C) The Ambassador thanked the delegation for its
assurances to North Korea that the U.S. was a country that
kept its word, especially since he had doubts about what
North Korea intended to do.  He confirmed that there was
currently very little trust between the U.S. and DPRK.  From
the joint U.S.-ROK perspective, North Korea had broken its
promises to denuclearize made in 1992 and 1994.  But the
Six-Party Talks (6PT) were a better framework, the Ambassador
said, and now we wanted to move forward with the September
19, 2005 Joint Statement and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He said the USG thought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was very significant because it established clear
commitments and timetables.
 
¶7. (C) Regarding establishing diplomatic ties,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U.S. was ready to begin the process, as
evidenced by the first U.S.-DPRK working group meeting within
30 days of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being signed.  But
the USG believed the process must proceed in parallel to the
denuclearization process as well as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 peace regime.  If everything went well,
hopefully these could be achieved in 2008.  We would not be
able to establish diplomatic ties first, he said, as the Uri
members were suggesting; but we could take intermediate steps
to help build trust with North Korea, such as considering
removing the DPRK from the State Sponsors of Terrorism list,
reviewing the Trading with the Enemy Act, and engaging in
economic and humanitarian exchanges.  Opening an Embassy in
the DPRK would be the last stage.  The prerequisite for all
these steps, of course, would be North Korea moving down the
path of denuclearization by shutting down and then disabling
Yongbyon, declaring all nuclear programs, and finally,
verifiably dismantling all its weapons and progr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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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 WE WILL ABIDE BY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 -------
 
¶8. (C) Kim Hyuk-kyu responded by saying that the Uri
delegation had suggested that North Korea should invite the
IAEA inspectors back once BDA was resolved.  Their
interlocutors had repeatedly said that they would abide by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Kim said he appreciated that
the U.S. had been patient.  Since the U.S. was strong and the
DPRK was weak, perhaps it was time for the U.S. to "embrace"
North Korea.
 
¶9. (C) The Ambassador said that he was encouraged by the
North Koreans' assurances that the DPRK plans to implement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even if it was late doing so.
But, he remarked, the DPRK was losing out on benefits such as
heavy fuel oil (HFO) and the goodwill it had gained by
signing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President Bush was
committed to finding a diplomatic solution.  As he had told
President Roh during the APEC meeting in Hanoi last year, the
U.S. was prepared to officially end the Korean War and
establish peace, as much as he might find it difficult to
sign such an agreement with Kim Jong-il.  This would depend
on North Korea's readiness to denuclearize.  If we could p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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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CONFERENCE TO COMMEMORATE 35TH ANNIVERSARY OF
THE NORTH-SOUTH JOINT COMMUN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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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 Lee Hwa-young, who was instrumental in setting up
former PM Lee Hae-chan's March visit to Pyongyang through
unofficial channels (reftels), said his interlocutors were
energized about establishing diplomatic ties with the U.S.
and shutting down the Yongbyon nuclear facility; their
attitude was more forthcoming than during his previous three
visits to Pyongyang.
 
¶11. (C) Lee Hwa-young said that North Korean interlocutors
had told the Uri delegation that they wanted to host an
international meeting in Pyongyang on July 4th to commemorate
the 35th anniversary of the 1972 North-South Joint
Communique, for two reasons: 1) to let the world know that
the North and South were pursuing peace and dialogue, which
would also be advantageous to the Uri Party in advance of the
Dec. 2007 ROK presidential elections, he said, smiling; and
2) to convey a message of commitment to peace to the U.S.
Lee Kwang-jae added that the July 4 international forum would
be the first political event that the DPRK would be hosting.
Given that this was the DPRK's suggestion, he sensed that it
wanted to draw attention to making peace on the Peninsula.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notion of an international
conference was interesting, but he hoped that the DPRK would
invite people who represented diverse points of view, both
from South Korea and other countries.  After all, it was Park
Chung-hee who had signed the 1972 Commun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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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K DISTRUSTFUL OF CHINA, ESPECIALLY AFTER B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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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 Lee Hwa-young said that the North Koreans believed
that China was partially to blame for the BDA delays, and
were also resentful of their dependence on China for aid.
Hence, the U.S. should take advantage of this window of
opportunity to improve relations with the DPRK.  (Comment:
This view is consistent with ROK angst about China's growing
influence in the DPRK.  End Comment.)  The Ambassador said
that this was all the more reason for North Korea to get
beyond BDA and re-engage with the U.S. in the 6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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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ENGAGEMENT AND TRADITIONAL FACTIONS IN DP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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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 Lee Kwang-jae said that in the DPRK, there was
competition between two factions:  those who wanted to jo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ose who were still
entrenched in the "old way of thinking."  The former wanted
to expand economically, but now that "strategic materials"
were banned from entering North Korea (to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the group was vulnerable to attack
from more conservative forces.  Lee recounted how their
interlocutors had said, "Don't even mention KIC -- we're very
disappointed."  He said that once North Korea was back on
track implementing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the U.S.
should implement economic measures to strengthen the position
of the pro-engagement group.  In the end, it was about who
"could bring more bread to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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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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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 Many pundits speculate that the purpose of Kim
Hyuk-kyu's visit was to set up a summer summit.  That Lee
Kwang-jae, once considered the "right hand" of President Roh,
joined the group lends weight to speculation that the group
was on a presidential mission.  Kim, from South Gyeongsang
Province, fits Roh's vision of a moderate from the southeast
who might be able to carry on Roh's political vision as the
next president.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Military Nuclear Applications]
5)
[Korea (South)]
6)
[Korea (North)]
7)
Amb. Alexander Vershbow
8)
번역 주: '경의선'을 말한다.
9)
번역 주: '동해선'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