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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SEOUL862 2006-03-16 08:42 기밀 주한 미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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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3월 7일 도쿄 한일 전략대화: 장시간 회의 성과없이 끝나

기 밀 SEOUL 000862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국가안전보장회의 차 귀하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남북 통일 이후 태그: PREL2) , PARM3) , MNUC4) , JA5) , KN6) , KS7) 제 목: 3월 7일 도쿄 한일 전략대화: 장시간 회의 성과없이 끝나 분류자: 정치 참사관 조셉 윤. 근거 1.4 (B, 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03/01 06:51

1. (기밀) 4월 13~14일 대사관 정무 직원과 함께한 회동에서 일본 대사관 접선책은 4월 7일 도쿄 한일 전략대화 중에 남한 유명환 차관과 일본의 야치 외무차관의 진을 빼는 회의에서 다수의 한일 양국 및 역내 이슈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치 차관은 한국이 북한의 인권 상황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문하고, 북한과의 경제 협력에 대해 주의도 당부하였다. 그는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60년 동안의 평화적 의사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해 유감이라며, 이러한 평화로운 전후 일본의 역사에도 중국과 한국 정부가 그간 역사 문제를 정치 논쟁거리로 키워왔다고 우려했다. 유명환은 남북 교류협력은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부분이며 한국의 경제 원조는 북한의 기근 해소를 지향하는 인도적 제스처라고 응답했다. 일본이 한일 양국 관계를 개선할 각오라면, 스스로 역사 인식을 더 심각히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후임이 야스쿠니 신사를 계속 방문한다면, 양국 관계 발전을 심각히 저해할 수 있다고 유 차관은 경고했다.

2. (기밀) 양측은 6자 회담의 조기 재개, 이란과 이라크 상황 처리, 향후 동아시아 정상회담을 타진하는 방향으로 힘쓰면서, 양국 문화 교류 협력도 확대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양측은 5월 카타르 아시아 협력 대화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입후보에 대해서, 야치는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열망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일본의 (반 후보) 지지를 직접 연계하면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양국의 추가 협의를 요청하였다. 3월 15일 버시바우 대사와 함께한 개별 회동에서 유명환은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9월 퇴임을 앞두고 야스쿠니 신사에 한 차례 더 방문할 것으로 야치 차관이 믿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환은 비록 일본 대화 상대역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양국 관계 훼손을 우려해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후보자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요약 끝.

3. (미분류) 3월 13일 김용길 외교통상부 동북아1과장은 3월 6~8일 유명환 차관의 도쿄 방문에 대한 전언을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제공하였다. 3월 15일 일본 대사관 정치 참사관인 다나카 슈고는 美 대사관 정무 직원과 함께 한일 전략회의에 대해 개별적으로 논의했다. 김 과장에 의하면 유명환 차관이 3월 6일 저녁에 도착해 3월 7일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회의를 했다. 아침에 자민당 소속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국방부망 배포] 아베 야스오 관방장관, 모리 요시히로 전 총리와 잠시 회동하였다. 아소 타로 외상을 예방한 후에, 유명환과 야치 사토로는 7시간에 걸친 한일 전략 대화를 개최하였다.(2005년 10월 이래로 2번째).

4. (기밀) 김용길은 양측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남북 관계, 북한 인권, 역사 문제들을 논의했지만, 북한 문제에 처리와 해묵은 양국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힐 수 없었다고 했다. 김용길은 결과적으로 역내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며, 그 문제는 차기 한일 전략적 대화까지 늦춰졌다고 한탄하였다.

5. (기밀) 야치 차관은 북한 관련해 한국이 북한과의 경제 협력 수준에 비해 돌아 오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해 일본의 우려를 전달했다고 김용길은 말했다. 가시적이고 효과적인 북한의 개혁이 결여된 상황에서 개성공업지구와 다른 형태의 경제 교류는 단순히 김정일 정권을 지탱시킬 뿐이다. 이는 중국의 대북 지원과 더불어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가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일본의 견지에서는 북한이 더는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지 못한다면, 6자 회담에 대해 더 심각하게 접근할 것이다. 경제 원조는 6자 회담 틀에서 논의되도록 남겨 두는 게 최선이다.

6. (기밀) 유 차관은 한국은 남북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이 북핵 문제의 성공적인 해결을 위해 핵심적인 요소라고 믿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남북 유대관계와 개선된다면 궁극적으로 양측의 군사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이 6자 회담에서 더 협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6자 회담이 중요하긴 하지만, 한반도 긴장 완화가 한국 정부에게는 더욱 시급한 문제이다. 북한 내에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개혁이 바람직하지만, 한국은 지속적인 교류협력으로 북한을 책임 있는 국가가 되도록 결국 이끌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또한, 한국의 대북 경제 원조 정책은 북한의 식량 부족을 덜어 주는 일이 북한 주민의 삶과 복지 향상의 실질적인 조치로 인도주의에 기초해서 나온 정책이다. 게다가 남한은 대북 압박이 북한의 행동 변화에 효과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7. (기밀) 주한 일본 대사관의 다나카에 따르면, 유 장관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대북 식량 원조뿐만 아니라 북한보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풍요롭다는 점을 갈수록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간이 갈수록 방북 중인 남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늘어나고,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에 노출되면서, 북한 사회는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관계로 예로 남한의 식별 표식을 달고 있는 공장이나 사회기반시설 사업과 같은 시선을 사로잡는 남한 경제의 우월한 모습이 북한의 종국적인 변혁을 위한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유명환은 전체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한국이 60%를 차지하며, 20%는 북한의 대외 무역임을 지적하면서 한국 정부가 6자 회담의 진전과 경제 협력 증대 문제를 분명하게 연계해 왔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의 대외 무역의 40%를 차지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국과의 교역량의 두 배 정도이다.

8. (기밀) 야치 차관이 한국이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뒤처지지 말 것에 주의를 당부했다고 다나까는 전했다. 일본은 일본의 경우처럼 해묵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한국이 북한 인권에 관해 더 적극적이길 희망한다. 유명환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가 인권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한국은 인권 문제를 북한의 내부 문제로 보지 외교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외교적인 노력을 지지하지만, 한국은 북한 사람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생필품을 제공하는 일을 한국 고유의 역할로 보고 있다. 식량 원조를 제공하고 탈북자를 받아들이는 등 남북 화해 발전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스스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9. (기밀) 외교통상부 김용길은 양국의 차관이 9.19 공동성명 원칙을 실행하고, 멈춰선 6자 회담 재개를 추진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야치 차관은 가까운 장래에 한미일 삼자 조율 회의를 일본이 주재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이하 PSI) 참여를 위한 미국의 8개 항 제안 중에서 5개 항을 수용한 한국의 결정을 환영하였고, 한국 정부가 역내 (선박) 차단 연습에 참여해 달라고 촉구했다. 유명환은 한국의 정책 당국은 9.19 공동성명을 실천하기 위한 일본의 3방향 대안 전략 접근이 좋은 아이디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4월 말 후진타오의 워싱턴 방문에 앞서 6자 회담이 재개되길 희망하였다. 그러나 6자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중국의 노력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기회가 날 때마다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10. (기밀) 야치 차관은 일제 강점에 항거 3.1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3.1 절 담화문에서 노 대통령이 일본의 소위 침략과 패권 야욕에 대한 비판은 유감스럽다고 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60년간 세계 평화를 지향해온 일본의 노력에 대해 그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점은 유감이다. 또한, 야치 차관은 중국과 한국 정부가 역사 문제에 대한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과 한국이 역사 문제를 갈수록 정쟁화하는 일은 도움이 안 된다. 일본은 한국민에 대한 “무거운 마음으로” 한국민의 정서를 받아들이지만, 일본과 한국이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11. (기밀) 유명환은 일본 정치 지도부가 한일 관계를 개선할 각오라면 역사 인식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일본이 새 총리를 선출하기에 앞서 역사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고이즈미 총리의 후임자가 야스쿠니 신사에 계속 방문한다면 양국 관계의 발전을 심각히 저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2. (기밀) 야치 차관은 양국의 유대관계 강화의 정신으로 2006년에 1,800회에서 3,600회로 한일 공동 문화 행사의 횟수를 배가하자고 제안하였다. 양측은 4월 중순에 있을 외무와 국방 장관 당국자들이 함께하는 한일 안보 대화의 다음 일정을 재개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세기말 사할린 섬으로 강제 이주시킨 한국인에 대한 원조 제공에 대한 협력과 2단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사업을 출범하기로 합의하였다. 추가적으로 양국 정부는 5월 카타르 아시아 협력 대화의 한쪽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잡을 예정이다.

13. (기밀) 주한 일본 대사관의 다나카는 이라크 주둔 일본 부대의 조기 철수를 일본 정부가 숙고하고 있다고 야치 차관이 설명했다고 했다. 비록 일본이 최종 결정을 못 내렸지만, 호주와 영국의 철군 시점이 열쇠이다. 유명환은 일본의 조기 철군 구상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면서, 한국은 일부 병력을 이라크의 더 안전한 곳으로 복귀 조치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화 2억 2천만 달러를 이라크 원조 조로 제공하기로 계획했다.

14. (기밀) 이란 문제에 관하여 양측은 이란 정부의 자체 핵 사업 관련해 갈수록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이란에 국제사회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국제 원자력 기구의 준칙을 따라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명환은 이란 정부가 국제 원자력 기구에서 한국의 협력을 요청했는데, 심지어 대남 수입품 무역 금지령을 내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란 정부의 요구에 굴종하지 않았다.

15. (기밀) 외교통상부 김용길 과장에 의하면 야치 차관이 유명환에게 최근 북일 관계 정상화 회담에 대해 브리핑했다. 유명환은 최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대한 전언을 제공하였다. 동북아시아 정상회담에 관하여 양측은 이 기구가 어떤 기능을 담당할 것인지 불분명하고, 동아시아 정상회담은 정체성을 한층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같이하였다. 양측은 새 회원국은 민주주의 국가여야 하며, 인도나 호주 등의 참여가 특히 고무적이며 중요하다. 야치 차관은 러시아의 참여를 반대하면서, 미합중국도 동북아시아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유명환은 한국은 새 회원국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겠지만, 동북아시아 정상회담의 조기 재개 필요성은 못 느낀다고 말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입후보에 관해서, 야치 차관은 반 장관은 자격을 갖춘 후보로 [국방부망 배포] 높게 평가하며,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아시아 국가에서 나와야 할 걸로 믿는다고 말했다. 일본의 관심사인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관심을 고려할 때, 그는 일본과 한국 정부가 논의를 계속하길 희망했다.

16. (기밀) 3월 15일 버시바우 대사와 함께한 별도의 회동에서, 유명환은(반 장관 대행) 야치 차관과 솔직하고 열린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야치 차관은 고이즈미 총리가 9월 그가 퇴임하기에 앞서 십중팔구 야스쿠니 신사를 한 차례 더 방문할 거라고 유명환에게 통보했다. 야치 차관은 한국 정부가 “너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야치 차관은 만일 후쿠다 전 내각총리대신 또는 재무장관 다니가키가 고이즈미를 승계할 것으로 판단하며, 승계할 해당 총리가 야스쿠니에 방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베 관방장관과 아소 외무 장관이 총리가 될 수 있는데, [국방부망 배포] 그럼 야스쿠니 방문이 발생할 수 있다. 야치 차관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성의를 다하고 있다. 그는 아소 외무 장관의 서울 방문을 제의했는데, 이에 유명환은 풀이 죽은 듯 노 대통령과의 회동은 없을 것이며, 그 점이 모욕처럼 받아들여 질까 우려하였다. 유명환은 아마도 반기문 장관이 도쿄를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명환은 중진 자민당 의원을 비롯한 그의 일본 대화 상대역들은 반 장관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들은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반 장관을 지지할지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유 차관은 일본이 반 장관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는데, 그 이유는 그런 행보는 양국 관계에 심한 손상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6SEOUL862.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862
 
SIPDIS
 
SIPDIS
 
NSC FOR CHA
 
E.O. 12958: DECL: AFTER KOREAN REUNIFICATION
TAG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ARM [Arms Controls and Disarmament],
MNUC [Military Nuclear Applications], JA [Japan; Okinawa; Ryukyu Islands],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SUBJECT: ROK-JAPAN MAR 7 STRATEGIC DIALOGUE IN TOKYO: LONG
MEETINGS WITH NO PROGRESS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 YUN.  REASONS 1.4 (B, D).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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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 In March 13-14 meetings with poloff, MOFAT and
Japanese Embassy contacts said South Korean VFM Yu
Myung-hwan's exhaustive meetings with Japanese VFM Yachi
during the March 7 ROK-Japan strategic dialogue in Tokyo
failed to result in progress on a number of bilateral and
regional issues.  Yachi called on the ROK to pay greater heed
to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the DPRK and to exercise
caution in its economic cooperation with North Korea.  He
expressed concern that Beijing and Seoul had increasingly
politicized history issues despite Japan's peaceful post-war
history, regretting that Japan had not received a fair
assessment of its peaceful intentions 60 years since World
War II.  Yu responded that inter-Korean engagement was a
critical component to resolving the nuclear issue and that
the ROK's economic assistance was a humanitarian gesture
aimed at addressing famine in North Korea.  Japan needed to
re-examine its understanding of history more seriously if it
were committed to improving bilateral relations with the ROK.
 Continued visits to the Yasukuni shrine by PM Koizumi's
successor could seriously hinder progress in bilateral
relations, Yu cautioned.
 
¶2.  (C) Both sides agreed to cooperate on expanding bilateral
cultural exchanges, working toward early resumption of the
Six Party Talks, addressing the situation in Iraq and Iran,
and examining the future of the East Asia Summit.  They also
agreed to work toward a foreign ministers meeting at the May
Asia Cooperative Dialogue in Qatar.  On FM Ban Ki-moon's
candidacy as UN Secretary General, Yachi directly linked
Japan's support to the ROK's support for Japan's desire for a
seat at the UN Security Council, calling for further
bilateral consultation on the issue.  In a separate March 15
meeting with the Ambassador, Yu said Yachi believed Japanese
PM Koizumi would make one more visit to the Yasukuni shrine
before stepping down in September.  Yu opined that Japan
would not oppose FM Ban's UNSYG candidacy for fear of
damaging bilateral relations, although his Japanese
interlocutors were non-cmmittal.  END SUMMARY.
.
GRUELING ONE-DAY SCHEDULE, LENGTHY ENG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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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U) On March 13, Deputy Director Kim Yong-kil of
Northeast Asia Division I,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MOFAT), gave poloff a read-out of VFM Yu Myung-hwan's
March 6-8 visit to Tokyo.  Japanese Embassy political officer
Shugo Tanaka discussed the meeting separately with poloff on
March 15.  According to Kim, VFM Yu arrived the evening of
March 6 and had meetings "from sunrise to sunset" on March 7.
 In the morning, he met briefly with Former Chief Cabinet
Secretary Yasuo Fukuda of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SIPDIS
Chief Cabinet Secretary Yasuo Abe, and former Prime Minister
Yoshiro Mori.  After a brief courtesy call on Foreign
Minister Taro Aso, he and Japanese VFM Shotaro Yachi held
seven hours of ROK-Japan strategic dialogue (the second since
October 2005).
.
...BUT NO SUBSTANTIVE PROGRESS ON STICKY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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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 Kim stated the two sides discussed the DPRK nuclear
program, inter-Korea relations, North Korea human rights, and
history issues, but were unable to narrow differences on
long-standing bilateral issues or on dealing with the DPRK.
Kim lamented that, consequently, they did not have sufficient
time to discuss China's growing economic and political
influence in the region, a subject that would have to await
the next round of strategic dialogue.
.
YACHI: ROK SHOULD BE PRUDENT IN APPROACH TO N-S ENG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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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 On North Korea, said Kim, Yachi conveyed Japan's
concern that the ROK received little in return for its level
of economic cooperation with Pyongyang.  Absent visible and
effective reforms in North Korea,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and other forms of economic engagement only
served to prop up the Kim Jong-il regime.  This, together
with China's assistance to the DPRK, rendered any measure to
apply pressure on Pyongyang ineffective.  From Japan's point
of view, the DPRK would approach the Six Party Talks more
seriously if it no longer received assistance from the PRC
and the ROK.  Economic assistance was best reserved for
discussion in the framework of the Six Party Talks.
.
N-S COOPERATION IMPORTANT FOR RESOLVING NUCLEAR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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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 Yu responded that the ROK believed consistent
progress in inter-Korea relations was a crucial factor in
successfully resolving the DPRK nuclear issue.  Improved
Seoul-Pyongyang ties ultimately reduced military tension on
both sides and would allow the DPRK to be more cooperative at
the Six Party Talks.  The importance of the Six Party Talks
notwithstanding, easing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was
a more pressing issue for Seoul.  While visible and immediate
reforms in the DPRK were desirable, the ROK believed
continued engagement with the North would eventually steer
the DPRK toward becoming a responsible state.  The ROK also
based its policy of providing economic assistance to North
Korea partly out of humanitarian concerns, as alleviating
food shortages was a practical step in improving the lives
and welfare of the North Korean people.  Moreover, South
Korea did not believe pressure against North Korea would be
effective in changing Pyongyang's behavior.
 
¶7.  (C) According to Tanaka from the Japanese Embassy, Yu
added that North Korean citizens were increasingly aware of
the ROK's relative affluence over the DPRK, as well as South
Korean food assistance.  Over time, continued contact with
visiting South Koreans and exposure to inter-Korean economic
projects like the KIC would inevitably lead to changes in
North Korean society.  As such, visible reminders of South
Korea's economic superiority, such as infrastructure projects
and factories bearing South Korean identification, could act
as a catalyst for the DPRK's eventual transformation.  Noting
that the ROK accounted for 60 percent of all humanitarian
assistance to North Korea and 20 percent of the DPRK's
foreign trade, Yu asserted that Seoul had clearly linked any
increase in economic cooperation to progress in the Six Party
Talks.  It was, however, noteworthy that China accounted for
40 percent of North Korea's foreign trade -- twice as much as
the ROK.
.
ROK NOT IGNORING DPRK HUMAN RIGHTS, HAS A UNIQUE 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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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 Tanaka reported that VFM Yachi cautioned the ROK not
to fall behi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 efforts to
improve human rights conditions in the DPRK.  Japan hoped
that the ROK -- which, like Japan, had difficulties
persuading the DPRK to resolve long-standing abductee issues
-- would be more proactive on North Korea human rights.  VFM
Yu stated that Seoul fully understood Tokyo's position on the
issue, stressing tha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greatly
misunderstood the ROK's position on North Korea human rights.
 The ROK did not view the human rights issue as a diplomatic
issue, but as an internal matter.  Seoul therefore supported
the international community's diplomatic efforts to urge the
DPRK to improve its human rights conditions, but viewed its
own role as a provider of necessities to relieve the
suffering of the people of North Korea.  By providing food
assistance and accepting North Korean refugees, the ROK
played its own part in the greater effort to address the
human rights situation without endangering progress in
inter-Korean reconciliation.
.
SIX PARTY 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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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 MOFAT's Kim said both vice ministers agreed to
cooperate closely to work toward resumption of the stalled
Six Party Talks and implementation of the September 19 joint
statement of principles.  Yachi expressed Japan's desire to
host a U.S.-ROK-Japan trilateral coordination meeting in the
near future.  He welcomed the ROK's decision to accept five
elements out of the U.S. eight-point proposal for South
 
Korea's participation in the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 and urged Seoul to consider participating in
interdiction exercises in the region.  Yu said ROK
policymakers thought Japan's three-track approach to
implementing the September 19 joint statement was a good
idea.  The ROK hoped the Six Party Talks would resume before
Hu Jintao's visit to Washington in late April.  It was
unrealistic, however, to rely exclusively on China's efforts
to restart the talks.  The ROK therefore had urged the DPRK
at every opportunity to return to the Six Party Talks.
.
HISTORY ISSUES SHOULD BE RESOLVED BEFORE NEXT PM, SAYS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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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 Yachi regretted that President Roh Moo-hyun's speech
commemorating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against
Japanese occupation had criticized Japan's supposed desires
for conquest and hegemony.  It was unfortunate that Japan had
not received a fair assessment of its efforts toward global
peace 60 years since the end of World War II.  Yachi also
expressed concern that Beijing and Seoul appeared to be
taking a united front on the history issues.  Increasing
politicization by China and the ROK on history issues was
unhelpful.  While Japan took in the sentiments of the Korean
people "with heavy heart," it was important for Japan and
Korea to develop a future-oriented relationship.
 
¶11.  (C) Yu responded that Japan's political leadership
needed to re-examine its understanding of history if it was
committed to improving bilateral relations with the ROK.  He
added that continued visits to the Yasukuni shrine by PM
Koizumi's successor could seriously hinder progress in
bilateral relations, stressing that history issues ought to
be resolved before Japan had a new Prime Minister.
.
POSSIBLE MEETING BETWEEN FOREIGN MINISTERS IN QA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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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 Yachi proposed, in the spirit of enhancing bilateral
ties, to double the number of ROK-Japan joint cultural events
from 1,800 to 3,600 in 2006.  Both sides agreed to resume
another round of the ROK-Japan security dialogue with foreign
and defense ministry officials in mid-April.  They also
agreed to cooperate on providing assistance to Koreans
forcibly relocated to the Sakhalin Islands at the turn of the
century and launching the second phase of the joint history
committee in April.  In addition, both governments would try
to arrange a foreign ministers meeting on the sidelines of
the May Asia Cooperative Dialogue in Qa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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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Q/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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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 Tanaka, from the Japanese Embassy, said VFM Yachi
explained that Tokyo was contemplating an early withdrawal of
its troops from Iraq.  Although Japan had not yet made a
final decision, the timing of withdrawal by Australia and the
U.K. was key.  Yu, expressing surprise at Japan's idea for
early withdrawal, said the ROK was considering recalling some
troops from the more secure parts of Iraq.  It planned to
provide USD 220 million in assistance to the Iraqis.
 
¶14.  (C) On Iran, both sides expressed concern at Tehran's
increasingly problematic behavior with its nuclear program.
Japan urged Iran through various channels to heed the
international community's warnings and to follow established
IAEA norms.  Yu said Tehran had asked for the ROK's
cooperation at the IAEA, even threatening to place a trade
embargo on South Korean imports.  Seoul would not, however,
cave into Tehran's dem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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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 FM BAN'S UN SECGEN CANDIDACY, UNSC LINK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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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 According to MOFAT's Kim, Yachi briefed Yu on the
recent normalization talks between Japan and North Korea.  Yu
gave a read-out of the recent inter-Korean general
officer-level military talks and former President Kim
Dae-jung's planned visit to North Korea.  On the East Asia
Summit, both sides agreed it remained unclear what purpose
the body would serve and that it was important for the EAS to
 
develop its identity further. They also agreed new member
states should be democracies and that encouraging
participation by countries like India and Australia was
particularly important.  Yachi stated that Japan opposed
participation by Russia and opined that the United States
appeared disinterested in the EAS.  Yu said the ROK was open
to new participants, but saw no need for an early resumption
of EAS.  On Foreign Minister Ban Ki-moon's candidacy as UN
Secretary General, Yachi said Japan viewed Ban as a
 
SIPDIS
highly-qualified candidate and believed the next SecGen
should be someone from an Asian country.  Given Japan's
interest in gaining a seat at the UN Security Council, he
hoped Tokyo and Seoul would continue discus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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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J UNLIKELY TO OPPOSE BAN'S CANDIDACY, YU TELLS A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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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 In a separate March 15 meeting with the Ambassador,
VFM Yu (acting for FM Ban) said he had a frank, open exchange
with Yachi.  Yachi informed Yu that in all likelihood PM
Koizumi would make one more visit to Yasukuni shrine before
he steps down in September.  Yachi asked that the ROKG "not
to react too emotionally."  Yachi assessed that if former
cabinet chief Fukuda or Finance Minister Tanegaki succeeded
Koizumi, chances were good that there would not be prime
ministerial visits to Yasukuni.  However, if Chief Cabinet
Secretary Abe or FM Aso were to become prime minister, such
 
SIPDIS
visits could occur.  Yachi was trying his best to improve
relations with South Korea.  He suggested a visit by FM Aso
to Seoul, which Yu discouraged fearing that there would not
be a meeting with President Roh and that this would be
portrayed as a snub.  Perhaps, Yu said, FM Ban could visit
Tokyo.  Yu also noted that his Japanese interlocutors,
including senior LDP legislators, seemed very positive about
FM Ban, but were non-committal on whether they would support
Ban in the UNSYG race.  Still, Yu assessed that Japan would
not openly opposed Ban because such a move would be very
damaging for relations.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Arms Controls and Disarmament]
4)
[Military Nuclear Applications]
5)
[Japan; Okinawa; Ryukyu Islands]
6)
[Korea (North)]
7)
[Korea (So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