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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SEOUL4309 2006-12-19 02:31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제 목: 이재정 신임 통일부 장관, 북한에 대해 유연한 태도 촉구

기 밀 SEOUL 004309 국방부망 배포1)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12/19/2016 태그: PREL2), PGOV3), PARM4), KS5), KN6) 제 목: 이재정 신임 통일부 장관, 북한에 대해 유연한 태도 촉구 참조: STATE 197902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7). 근거 1.4 (b/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7/31 12:28

1. (기밀) 12월 18일 버시바우 대사와 함께한 회동에서, 통일부 장관 이재정은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와 북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불가결하다.”라고 재확인하였다.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서 유엔안보리 1718호를 완전히 이행하고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것이다. 이재정은 미국정부와 북한이 예전 6자 회담보다 한층 유연하고 생산적인 접근 방식으로 나설 것을 희망한다고 표명하였다. 그는 6자 회담과 남북 회담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역시 주장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두 가지 포럼이 연결되어 있다며, 양국의 단합된 대북 지렛대를 6자 회담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신중한 세부 조정 작업을 담보하자고 제안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참조 가) 잠작하여 비무장지대 동, 서해지구 수송로를 통한 화물 검사를 강화하도록 한국정부를 장려하였다. 두 사람은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에 한미 협의가 필요하다고 역시 언급하였다. 요점 끝.

2. (기밀) 12월 11일에 취임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12월 18일 예방한 대사를 환영하면서 성공회 목사인 자신의 배경을 언급하며 한미 관계가 100년이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고 상기하였다. 한미관계는 개신교 선교 활동을 벌이고 한국 주재 미국 외교관 임무를(1897~1905) 수행한 미국 호러스 알렌 초기 노력에 수혜를 입어왔다. 성경의 사순절을 언급하던 이재정은 11월 1일 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보수 야당 한나라당 때문에 40일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고 언급하였다8). 기대와 희망의 시기라고 그가 암시하는 현재의 사순절에는 그의 새로운 임무를 준비하고 있으며, 대북 문제 관련 통일부 장관으로 일하게 되어 흥분이 된다. 그는 통일부 장관의 지위로 맞는 첫 외국 사절로서 버시바우 대사를 접견하게 된 점에 만족감을 표명하였다.

3. (기밀) 이재정은 준비된 쪽지를 읽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와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이루기 위해 “불가결한” 한미 동맹의 성격을 강조하였다.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서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완전히 이행하고 핵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국제 사회와 협력할 것이다. 그는 6자 회담에서 미국이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북한이 이전보다 더 생산적인 태도를 견지하길 희망하는 모습이었다. 6자 회담과 남북 회담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마차의 두 바퀴이다; 한쪽 회담이 진전되면 다른 쪽 회담도 수혜를 입는다. 그는 북한이 자체 비핵화 약속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한국전쟁 종전 서명 가능성에 관한 부시의 하노이 발언에 대해 감사를 표명하면서, 북한이 핵 폐기를 실천에 옮기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정부와 한국정부가 한반도 평화 체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게 여전히 중요하다. 평화 체제는 남한과 북한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도 이롭다. 그런 점에서 평화 체제가 궁극적인 목표이다.

4. (기밀) 한국정부는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지를 감사할 거라고 이재정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들 사업은 단지 경제적 성격뿐만 아니라 평화에 대한 한국인의 꿈을 대변하며, 한반도 화해와 협력을 이끌 매개체이다. 그는 한국정부가 북한으로 가는 국경횡단 화물 운반 감시를 돕기 위해 한국정부가 요청한 무선 주파수 식별 장치 수출 승인서에 대한 미국정부의 협력에 감사하였다. 미국정부의 지원은 단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미관계도 이득이 될 거라고 이재정은 말하였다.

5. (기밀) 대사는 한미 양국 정부가 때때로 전략을 두고 견해차가 있긴 하지만, 같은 목표와 전략 목적을 양국이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6자 회담과 남북 대화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을 참작할 때, 한미 협력과 조율이 6자 회담 전망을 밝게 하려면 더더욱 중요하다. 미국정부는 외교적 해결이란 목표, 그리고 2005년 9.19 공동성명의 모든 사항을 이행할 것임을 다짐한다. 만일 북한이 비핵화해서 영구적인 평화 체제로 가는 토대를 닦는다면 득을 보게 될 것이다. 평화 체제는 북미 관계를 개선할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북한의 역할과 위상도 나아질 것이다. 요약하자면, 북한은 7월과 10월 북한의 도발적 행동으로 신의를 증명해 보여야 하는 가장 큰 부담을 지고 있어, 단순히 6자 회담 복귀만으로 혜택을 입을 수는 없다. 만일 북한이 그 의중의 진정성을 증명해 보인다면 미합중국과 국제 사회는 북한이 외부 세계와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확신을 북한에 줄 만한 조처를 밟을 준비가 되어 있다.

6. (기밀) 남북관계에 대해 버시바우 대사는 노 대통령이 6자 회담에서 명확한 진전이 이루어진 이후에나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재개될 거라는 뜻을 표한 데 대해 감사 표명을 하였다. 이는 북한에 대한 좋은 메시지였다. 미국정부는 남한 처지에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요함을 이해한다. 개성공단은 북한사람들에게 시장 경제 활동 경험, 그리고 바깥세상에 대해 그간 교육받은 것을 극복해낼 수 있는 한국 기업체와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에서의 변화를 지원할 잠재성을 제공한다. 미국정부는 무선 주파수 식별 장치 수출 승인서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의 조치가 미국정부가 개성공단에 반대하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러나 북한의 행보를 참작할 때, 한국정부가 자체 대북정책에 대해 여하한 조정을 가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식량과 비료 중단이 한국정부로선 쉬운 결정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북한이 더욱 유연성을 보여주도록 장려함으로써 더욱 생산적인 6자 회담에 힘을 보태도록 남북 간 거래를 세부 조정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또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의 완전한 이행을 담보하도록 한국정부가 비무장지대 동, 서해 지구 수송로를 통과하는 화물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장려하였다.

7. (기밀) 북한의 비타협적인 태도에 대한 한국민 사이 불만이 켜진 걸로 나타난 최근 여론 조사에 대해, 그리고 그 여론이 통일부의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묻자, 이재정은 남한 사람들은 한반도 평화 보장을 압도적으로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제거하길 원하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로 남한 사람들은 화해와 협력을 더욱 추구하였다. 이재정은 남북 간의 신뢰를 증대하는 방안으로 북한과의 관계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포용정책에 대한 다짐에 기초해서, 한국정부는 유엔안보리 1718호와 6자 회담에 따른 조치를 이행할 것이다. 그는 남북협력이 모든 대화에서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재차 말하였다.

8. (기밀) 이재정은 만일 6자 회담에서 남북 양자 회담이 하게 되면, 한국정부는 북한정부가 무엇을 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의 도발 행위 이후에 왜 남한은 식량과 비료 원조를 중단하도록 결정했는지 분명한 의사를 전달할 거라고 말하였다. 이재정은 한국정부의 원조 중단은 북한이 당면한 가장 고통스러운 처벌이라고 단언하였다. 북한은 간접적으로 한국정부가 원조를 재계하도록 요청했지만, 현재 한국정부는 재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재정의 견해로는 제재는 그 이행 기간이 짮고 해당 제재 자체로 끝이 아님을 보여주는 게 더욱 효과적일 거라고 한다. 통일부 본연의 의무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과 접근 방식, 그리고 수단을 모색함에 있다. 남북 관계는 수십 년 난관에 부닥쳐 있었고, 과거 5년 동안에만 남북대화가 진정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북한은 가난한 나라이며, 한국은 북한의 상황을 개선되도록 도와야 할 도덕적 책임을 느끼고 있다. 만일 남북한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않는다면, 북미 관계나 역내 문제도 성과를 낼 수 없으며 동북아시아의 지속적인 평화 가능성은 현실화 되지 않을 것이다.

9. (기밀) 버시바우 대사들은 제재는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였다. 한국정부의 원조 중단은 북한엔 고통이다. 북한의 비핵화 방향으로 이끌도록 중국과 여타 당사국이 유사한 조처를 하도록 하는 게 남은 도전 과제이다. 북한은 6자 회담에 대해 심각히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으며, 남한을 비롯해 국제 사회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기 시작해야 한다. 북한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남한 답방 약속을 저버렸고, 북한은 남북 철도 연결을 수락하지 않았다. 북한은 남한과의 접촉 확대로 말미암아 남한에 실제 모습에 대한 북한의 거짓 신화를 무너뜨릴 거라고 아마도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10. (기밀) 버시바우 대사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이재정은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위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은 북한의 동의, 그리고 정상회담의 가치에 대한 남한 내부의 국민적 합의라고 말하였다. 이재정은 자신이 보기에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두 번째 정상회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핵 문제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매우 위험스런 상황이며, 남북한 지도자가 해결의 길로 나아가도록 함께 하는 게 당연하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두 번째 정상회담을 열도록 요청하였지만, 북한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이재정은 두 번째 정상회담은 한국의 2007년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노력이라며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한 남한 내에 국가적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대사는 한반도 현재 상황과 6자 회담의 취약한 상태를 고려할 때 한국정부가 여하한 남북 정상회담에 관해 미국정부와 협의하길 희망한다고 말하였다. 이재정은 미국정부가 여하한 남북 정상회담에도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며, 통일부가 솔직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 영어로 응답하였다. 버시바우 프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6SEOUL4309.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4309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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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2/19/2016 
TAG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ARM [Arms Controls and Disarmament], KS [Korea (South)], KN [Korea (North)] 
SUBJECT: INCOMING UNIFICATION MINISTER URGES FLEXIBILITY ON 
DPRK 
 
REF: STATE 197902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SUMMARY 
------- 
 
¶1.  (C) In a meeting with the Ambassador on December 18, 
Unification Minister Lee Jae-joung reaffirmed that the 
U.S.-ROK alliance was "essential" to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  The ROKG would work closely 
with the USG, fully implement UNSCR 1718, and cooperate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resolve the DPRK nuclear 
issues peacefully.  Lee expressed his hope that the USG and 
DPRK would present a more flexible and productive approach 
than previously at the Six Party Talks.  He also asserted 
that Six Party Talks and inter-Korean talks were 
complementary.  The Ambassador agreed that two forums were 
connected and suggested ensuring that our combined leverage 
with the DPRK was carefully calibrated to facilitate progress 
in the Six Party Talks.  He also encouraged the ROKG to 
strengthen inspections on cargo going through two DMZ 
transportation corridors in light of UNSCR 1718 (ref A).  The 
two also spoke to the need for USG-ROKG consultations before 
any potential ROK-DPRK summit.  END SUMMARY. 
. 
ALLIANCE, 6PT, AND INTER-KOREAN RELATIONS 
----------------------------------------- 
 
¶2.  (C) In welcoming the Ambassador during a December 18 
courtesy call, Unification Minister Lee Jae-joung, who took 
office on December 11, referred to his background as an 
Anglican Pastor and recalled that U.S.-Korean relations 
reached back over 100 years.  The relationship had benefited 
from early efforts of American Horace Allen's Protestant 
missionary work in the 19th century and his role as 
Ambassador to Korea (1897-1905).  Making a biblical reference 
to the Season of Lent, Lee remarked that after being 
nominated as Minister on November 1, he had to endure for 
forty days due to political opposition from the conservative 
Grand National Party (GNP).  In the current Season of Advent, 
which he implied was a time for anticipation and hope, he was 
preparing for his new role and was excited to be working as 
Unification Minister on the North Korea issue.  He expressed 
his satisfaction at hosting the Ambassador as the first 
foreign envoy received in his capacity as Unification 
Minister. 
 
¶3.  (C) Reading from prepared notes, Lee emphasized the 
"essential" nature of the U.S.-ROK alliance to peace on the 
Peninsula and in Northeast Asia and to the effort to achieve 
a peaceful resolution of the DPRK nuclear issue.  The ROKG 
would work closely with the USG, fully implement UNSCR 1718, 
and cooperate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resolve the 
nuclear issue peacefully.  He was hopeful that at the Six 
Party Talks (6PT), the USG would demonstrate a flexible 
approach and that the DPRK would bring a more productive 
attitude than before.  The Six Party Talks and North-South 
talks were two wheels of a wagon that moved in the same 
direction; progress in one benefited the other.  He expressed 
appreciation for President Bush's remarks in Hanoi on a 
possible ceremony to end the Korean War should North Korea 
fulfill its denuclearization commitments, adding that he 
wished the DPRK would make such an outcome possible.  It 
remained important for the USG and ROKG to cooperate to 
achieve a peace regime for the Peninsula that would benefit 
not only Koreans but also Northeast Asia.  In that regard, a 
peace regime was the ultimate objective. 
 
¶4.  (C) He continued that the ROKG would appreciate USG 
support for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and the Mt. 
Kumgang tourism project.  These projects were not just 
economic in nature but represented Korean dreams for peace 
and a vehicle to promote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on 
the Peninsula.  He appreciated USG cooperation with the ROK's 
pending export license request for a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Device (RFID) system that Seoul has argued 
would assist its monitoring of cross-border cargo shipments 
to North Korea.  USG support would not only help North-South 
relations but also benefit the U.S.-ROK relationship, he said. 
 
¶5.  (C) The Ambassador said that Washington and Seoul shared 
the same goals and strategic objectives even if there were 
sometimes disagreements over tactics.  He argued that the Six 
Party Talks and North-South talks were complementary. 
However, in light of the North's missile launches and nuclear 
test, U.S.-ROK cooperation and coordination were more 
important to improve prospects for the 6PT.  The USG was 
committed to achieving a diplomatic resolution and to 
implement all aspects of the September 19, 2005 Joint 
Statement.  North Korea would stand to gain if it 
denuclearized and cleared the path toward a permanent peace 
regime, which would not only improve U.S.-DPRK relations but 
also the North's role and status in the world.  In the short 
term, the North had the heaviest burden to show good faith 
because of its actions in July and October and should not be 
given benefits simply for returning to the 6PT.  If the North 
demonstrated a seriousness of purpose, the United State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ere prepared to take steps that 
should give the DPRK confidence that it could have a 
different relationship with the outside world. 
 
¶6.  (C) On inter-Korean relations, the Ambassador expressed 
appreciation that President Roh had signaled that food and 
fertilizer assistance would only resume after tangible 
progress had been made in the 6PT.  This was a good message 
to North Korea.  The USG understood the significance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and the Mt. Kumgang tourism 
project for South Korea.  The KIC offered the potential for 
supporting change in the DPRK by giving North Koreans 
experience with market economic practices and with ROK 
companies that might overcome what they had been taught about 
the outside world.  The USG was actively reviewing the RFID 
application, and Seoul should be aware that USG actions had 
demonstrated that Washington was not opposed to KIC.  In 
light of DPRK actions, however, it was natural that the ROKG 
would make certain adjustments in its policy toward the DPRK, 
such as delaying the expansion of the KIC and cutting 
subsidies at Kumgang.  We knew that the food and fertilizer 
suspension was not an easy decision for the ROKG, but it was 
a good example of efforts to calibrate exchanges to support a 
more productive Six Party Talks by encouraging North Korea to 
show more flexibility.  The Ambassador also encouraged Seoul 
to find ways to tighten inspections for cargo going through 
two DMZ transportation corridors to ensure that UNSCR 1718 
was implemented fully. 
. 
ENDURING IMPORTANCE OF ENGAGEMENT 
--------------------------------- 
 
¶7.  (C) Asked about recent opinion polls indicating growing 
frustration among the ROK public with DPRK intransigence and 
how it might affect MOU policy, Lee replied that South 
Koreans overwhelmingly wanted to ensure peace on the 
Peninsula.  South Koreans wanted North Korea to eliminate its 
nuclear weapons, but since the former Kim Dae-jung 
administration, South Koreans also sought greate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Lee opined that consistency 
was important in relations with North Korea as a way to 
increase inter-Korean confidence.  Based on a commitment to 
engagement, the ROKG would implement steps in line with UNSCR 
1718 and the Six Party Talks.  Again, he said, he was 
confident North-South cooperation would help achieve results 
at the Talks. 
 
¶8.  (C) Lee said that if ROK-DPRK bilateral meetings occurred 
at the Six Party Talks, Seoul would clearly communicate what 
Pyongyang needed to do and why the South had decided to 
suspend food and fertilizer assistance following the DPRK 
provocations.  Lee asserted that the ROKG aid suspensions 
were probably the most painful penalty faced by the DPRK. 
North Korea had indirectly requested that Seoul resume its 
aid, but the ROKG, currently, was not considering a 
resumption.  In his view, sanctions would be more effective 
if their period of implementation was shorter and not seen as 
an end in and of themselves.  The Unification Ministry's 
mandate was to explore new alternatives, approaches, and 
avenues to improve North-South relations.  Inter-Korean 
relations had been troublesome for decades, and only in the 
past five years had North-South talks shown real results. 
The DPRK was a poor country, and the ROK felt a moral 
responsibility to help improve the situation in the North. 
If North-South issues remained unresolved, U.S.-DPRK and 
regional issues could not be achieved and the potential for 
 
lasting peace in Northeast Asia would be unrealized. 
 
¶9.  (C) The Ambassador agreed that sanctions were a means to 
an end rather than a long-term solution.  The ROKG aid 
suspension probably was painful for the DPRK.  The challenge 
remained to get others, such as China, to take similar 
actions to steer the DPRK in the direction of 
denuclearization.  The DPRK needed to make the choice to get 
serious at the Talks and start fulfilling its promises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cluding South Korea.  The North 
had reneged on a return visit by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to South Korea after the North-South summit in 2000, 
and the DPRK had refused to allow the connection of 
inter-Korean railways.  The North was probably afraid that 
increased contacts with the South would undermine its myths 
about the reality in South Korea. 
. 
NORTH-SOUTH SUMMIT? 
------------------- 
 
¶10.  (C) Responding to a question from the Ambassador, Lee 
said that the two prerequisites for an inter-Korean summit 
were an agreement from North Korea and a national consensus 
in South Korea on the value of a summit.  Lee emphasized 
that, in his view, a second summit should be held.  However, 
the North had not delivered on its promises.  The nuclear 
issue was a dangerous situation that would determine the fate 
of the Korean Peninsula, so it would be natural for North and 
South Korean leaders to get together to make progress toward 
a resolution.  President Roh had called on North Korea to 
hold a second summit, but the DPRK never responded.  Lee also 
said that a second summit should not be interpreted 
politically as an effort to influence the 2007 presidential 
election in the ROK.  Therefore, it was important for there 
to be a national consensus in South Korea on the need for a 
summit.  The Ambassador said he hoped that the ROKG would 
consult with the USG on any inter-Korean summit, given the 
current situation on the Peninsula and the fragile state of 
the Six Party Talks.  Lee responded, in English, that he 
totally agreed that the USG had an important stake in any 
summit and that the MOU would be forthcoming.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Arms Controls and Disarmament]
5)
[Korea (South)]
6)
[Korea (North)]
7)
Amb. Alexander Vershbow
8)
번역 주: 사순절 기간이 대략 6주 정도니 대략 40일이 된다.—장관직에 '인사청문회법'을 도입해서 첫 타자로 유시민,이재정,송민순이 고생한 일을 두고 하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