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대통령 후보, 북한 문제와 한미 동맹, 국내 정치 언급

작성일 : 2006년 11월 13일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885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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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AFTER KOREAN REUNIFICATION TAGS: PGOV PINR PREL KS KN SUBJECT: PRESIDENTIAL CANDIDATE KOH GUN ON NORTH KOREA, ALLIANCE AND DOMESTIC POLITICS

Classified By: CDA Bill Stanton. Reasons 1.4 (b/d)

요약: 11월 9일 고건 전 총리는 우리들과 점심을 하면서 2004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일한 경험이 국가안보가 한 국가의 수장들로서는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 점을 깨닫게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은 미국과 강력한 동맹을 유지해야 하며, 북한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국가 안보 다음으로 교육 개혁, 직업 창출, 부동산 가격이 선거의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고 전총리는 말했다. 국내 정치에 관해서, 고 전총리는 그 자신을 한나라당 출신의 강력한 후보들에 맞서 광범위한 정치연합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1. (C) Summary: Over lunch with the DCM and PolMinCouns on November 9, former Prime Minister Goh Kun, among the leading candidates in the 2007 presidential election, emphasized that his experience as acting President in 2004 made him realize that national security was the most important consideration for heads of state. Toward this end, the ROK had to sustain a strong alliance with the United States and watch North Korea closely. Beyond national security, Koh said, education reform, job creation and real estate prices would be top election issues. On domestic politics, the former Prime Minister counted himself as among those capable of forming a broad coalition to face off against the strong candidates from the opposition Grand National Party (GNP). End Summary.


Already Possessing Presidential Experience


이미 사실상 대통령 경험을 갖고 있다

고건 전총리는 조심스럽게 그가 이미 청와대에서 어느 정도 살아본 경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는 2004년 3월 전혀 예기치 않게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고 말했다. 국회가 노대통령을 탄핵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해외 금융 시장에서는 한국 채권들은 높은 이자율 때문에 하락하고 있었다. 고는 즉각 국가안보보좌관인 이종석에게 군대에 지시를 보내라고 명령했다. 그 무엇보다 국가 안보는 타협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반 외교부 장관에게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외교부 장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는 정상적인 임무 수행과 관계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확신시키도록 했다. 반 외교장관이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건 직후에야 금융 시장은 안정됐다. 반 장관의 전화는 미국 국무부로부터 강력한 지지 성명 발표로 이어졌다. ¶2. (C) Former PM Koh Gun was careful to point out that he already had some experience living in the Blue House. Koh said that in March 2004, quite unexpectedly, he became acting President because the National Assembly had impeached President Roh. Suddenly, in overseas financial markets, Korean bonds were sinking due to higher interest rates. Koh immediately ordered his national security chief, Lee Jong-seok, to send instructions to the ROK military that, above all else, national security could not be compromised. Thereafter, he instructed Foreign Minister Ban to call foreign ministers of the United States, Japan, China and Russia to assure them that the ROKG would continue normal operations and relations. It was only after FM Ban spoke to Secretary Powell, which resulted in the issuance of a

SIPDIS strongly supportive statement from the Department, that financial markets calmed down.

고는 또 2004년 잠 못 이루었던 밤을 회상했다. 북한의 용천에서 철도가 폭발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때였다. 정보 부족으로, 상당수 사람들은 김정일에 대한 암살 시도였다고 생각했다. 김정일은 당시 이 지역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고는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김정일의 죽음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에 어떻게 대처할까를 생각하며 고심했다. ¶3. (C) Koh also recalled the sleepless night in April 2004, when the North Korean train in Ryongchon blew up, killing several hundred people. Because of the lack of information, some people thought that was an assassination attempt on Kim Jong-il, who was traveling in the region. Koh stayed up all night agonizing over how to deal with various scenarios involving KJI's death.


U.S.-ROK Alliance


미국 한국 동맹 이런 경험들은 그에게 미국 한국 동맹의 가치를 깨우치게 했다고 고는 말했다. 양국 우방은 북한을 다룰 수 있어야만 한다. 양국에 의한 철저한 준비는 김정일의 사망이나 북한 정권의 갑작스런 붕괴 같은 시나리오에 대처하는데 필수적이다. 고는 전시작전권 이양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 계획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전쟁 발발 시 발효되는 OPLAN 5027에 따라 대략 67만 명의 미군이 한국에 배치되게 된다. 그러나 전시작전권 이양 후에는 새로운 전시 계획이 나와야 할 것이며, 연합사령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한국이 그전처럼 많은 미군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할 수도 있다. 고는 차기 한국정부가 전시작전권 이양을 재협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4. (C) Those experiences, Koh said, taught him the value of the U.S.-ROK alliance. The two allies had to be able to deal with North Korea. Thorough planning by the allies was essential to deal with scenarios such as KJI's death or the sudden collapse of the DPRK regime. Koh said that he had concerns over the transfer of wartime operational control (OPCON) because of its implications for war plans. Currently, OPLAN 5027 which would come into effect in the event of a war, called for some 670,000 U.S. troops to be deployed in Korea. After the OPCON transfer, however, there would be a new war plan and no Combined Forces Command, which would mean that Korea could not count on as many U.S. troops. Koh asked whether the next ROK government could renegotiate OPCON transfer.

우리는 전시작전권이 그처럼 여론을 양분하는 국내 정치 이슈가 된 점에 대해 안됐다고 말했다. 왜냐면 이는 그 무엇보다도 한국군의 능력을 포함한, 기술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은 그런 기술적 능력에 바탕을 두고 전시작전권 이양을 논의했고, 합의했다. 우리는 고 전총리에게 작전권 이양은 한국을 안보적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줬다. 게다가 작전권 이양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안보 약속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우리는 안보 약속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5. (C) The DCM said that it was unfortunate that OPCON had become such a divisive domestic political issue, because it was a technical issue, involving ROK military capabilities, above all else. Washington and Seoul had discussed and agreed on OPCON transfer based on such technical capabilities. The DCM assured the former prime minister that the transfer would take place based on the premise of not exposing the ROK to security risks. Moreover, the transfer had no relation to the U.S. security commitments on the Peninsula. Those remained as strong as ever, the DCM underlined.


North Korea and 6PT


북한과 6자 회담 고는 6자 회담을 재개하기로 이전 주에 베이징에서 3자가 합의한 것을 환영했다. 고는 결실이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너무, 특히 단기간 내에 낙관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북남 합의를 협의한 그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며, 고는 이 것은 오래된 문제라고 말했다—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고려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미국이 북한 정권을 적대하지 않겠다는 신뢰할만한 보장을 할 때이다. 이는 맞춰주기 어려운 조건이다. 왜냐면 북한의 지도부는 본질적으로 편집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6. (C) Koh welcomed the tripartite agreement in Beijing the previous week to resume the Six Party Talks (6PT). Koh hoped that there would be results, but warned not to be too optimistic, especially in the short run. Recalling his own experience in negotiating the 1992 North-South agreement on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Koh said that this was an old problem – Pyongyang would not easily give up its nuclear weapons and programs. The only condition under which Pyongyang would contemplate denuclearization was if the U.S. provided credible assurance of non-aggression toward the regime. That was a very difficult condition to meet because DPRK leaders were essentially paranoid. Still, he believed it was worth a try.

방코 델타 아시아 문제에 관한 고의 질문에 답하면서, 우리는 미국정부는 이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돼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그리고 이를 위해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그러나 진짜 해결책은 북한 그 자신들에 달려있다. 왜냐면 그들의 불법적인 활동, 즉 미국 화폐의 위조를 포함하는 활동들이 중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7. (C) Responding to Koh's query on Banco Delta Asia, the DCM clarified that the USG was prepared to discuss the issue – and had agreed to form a working group to do so – but a genuine resolution depended on the North Koreans themselves, because their illicit activities, including counterfeiting of U.S. currency, must stop.


Domestic Politics


국내 정치 노대통령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남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고는 말했다. 노는 분열적 정치인이다. 노의 사고로는, 사람들은 친미적이거나 반미적이다; 친북이거나 반북이다;국제화도 마찬가지로 둘로 나뉜다. 이는 통치하는 방식이 아니다. 반대로, 대통령은 국민들을 통합해야 한다. 한 예로,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입장은 한국은 미국의 정치와 경제적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계속해 말했다. 미국은 한반도에 있어 영토적 욕심이 없다. 한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미국과 관계를 이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그가 미국과 FTA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유였다.

¶8. (C) The basic failing of President Roh was his inability to bring the South Korean people together, Koh said. Roh was a divisive politician. In Roh's thinking either one was pro-American or anti-American; pro-or-anti North Korea; the same with globalization. That was not the way to govern. Rather, a president had to bring people together. For example, Koh continued, when people asked him how he viewed the United States, his position was that the ROK should leverage American political and economic might. The U.S. had no territorial ambitions on the Peninsula. There was no reason why South Korea should not use its relations with the U.S. to promote its self-interest. This was why he strongly supported an FTA with the U.S.

고는 곧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정당을 결성해 2007년 대선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른바 조용한 다수였다.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는 중도적 바탕을 고려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는 교육 개혁, 부동산 가격, 실업, 국가 안보가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9. (C) Koh said that he would soon form a political party with like-minded people to put up a viable candidate in the 2007 presidential race. These were the so-called silent majority, the middle ground thinkers without strong ideology. He expected education reform, real estate prices, unemployment and national security to be the most important election issues.


Comment


코멘트 “양호하고, 경쟁력 있고, 균형 잡힌” 사람이고 고건은 가장 흔히 묘사된다. 그는 또 “무미건조”하고, “회색”인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가진 직업 외교관인 고건은 최고의 자리까지를 포함해 한국 정부에서 모든 요직들을 거친 바 있다. 실제로 고건은 2004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우호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고 있다. 그는 이 때 노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로 정치가 양분돼 대립하는 상황에서 조용히 수 개월 동안 일을 부딪히지 않고 매끄럽게 해나갔다. ¶10. (C) “Decent, competent, and balanced” are the most common descriptions of Koh Gun. Also widely used are “dull” and “grey.” A career diplomat with an uncanny ability to build consensus, Koh Gun has held all the key positions i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even the top one. In fact, Koh is fondly remembered for his tenure as acting President in 2004, when his non-confrontational manner smoothed the way for a quiet few months in the wake of the divisive political confrontation on Roh's impeachment.

이제 거의 70세 이른 고건은 한나라당을 제외하고는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 돼 있다. 이는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그로 하여금 추구하게 하고 있다. 이번에는 권한대행으로서가 아니라 정식 대통령으로서 말이다. 이것이 현실화할지 그렇지 못할지는 여당인 우리당과 전라도에 바탕을 둔 민주당, 그리고 힘의 균형추 역할을 할 충청도 정치인들 포함한 여러 정당이나 정파가 그를 밀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11. (C) Now almost seventy, Koh finds himself the most popular political figure outside the opposition GNP, inspiring his ambition to pursue another opportunity to enter the Blue House, but through the front door this time. Whether this materializes or not depends on the various parties and factions, including the ruling Uri Party, the Jeolla-based Democratic Party, and the power-brokers of the central Choongchung region, coming together behind him. A tough task by any measure. STAN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