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참조번호 생성일 비밀등급 출처 태그
06SEOUL1478 2006-05-03 00:43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 , , , ,

제 목: 주한 미군사령관 노무현 대통령과 상견례―작전통제권과 대일 분쟁

기 밀 서울 001478

국방부망 배포

국방부망 배포

행정명령12958: 비밀해제: 한국 통일 이후 태그: PREL PARM MARR JA KN KS 제 목: 주한 미군사령관 노무현 대통령과 상견례―작전통제권과 대일 분쟁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 d).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4/09/14 15:20

1. (기밀) 5월 1일 주한미군 사령관 BB 벨 장군은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으로 예방한 자리에서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의 다짐을 강조하였고 한미 연합사령관 자격으로 두 나라의 대통령을 동등하게 모시겠다고 강조했다. 벨은 독자적인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한 한국의 열망은 자연스럽다며, 미국은 “대한민국의 뜻에 맞는다면 조속히”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벨은 동맹을 공고히 하는 방안을 모색함에 더해 한국이 (오염된 미군 기지) 환경 치유 문제를 정리할 필요성을 시사하듯 “사소한 문제”로 한미동맹의 기초에 금이 안 가도록 할 필요성을 부각하였다. 노 대통령은 벨의 전체 메시지에 긍정적으로 반응했지만, (오염된 미국 기지) 환경 치유 문제나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를 오랫동안 거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본 지도자와 정치인의 지속적인 야스쿠니 신사 방문에 더해 일본이 독도/다케시마 관련 한국과의 해양 분쟁의 역사적인 의미를 더 깊게 헤아려 주길 촉구하며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 익숙한 남한의 우려 사항을 풀어 놓는데 이번 회동을 활용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이 이 문제와 관련 한쪽 편을 들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등 대화를 통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주문하였다. 요약 끝.

2. (미분류) 5월 1일에 주한 미군 사령관 BB 벨 장군은 버시바우 대사와 더불어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윤광웅 국방장관, 송민순 통일안보외교실장, 이상희 한미 합참의장, 서주석 통일외교안보수석실 안보수석이 자리를 함께하였다.

3. (기밀) 벨 장군은 그가 일찍이 젊은 장교로 한국에서 복무한 이래로 성숙한 민주주의로 탈바꿈한 한국의 모습과 경제 발전으로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한미연합사령관의 자격으로 미국과 한국 대통령 모두를 동등하게 모실 것임을 강조하였다. 주한미군 사령관으로서의 단독 책임을 보유했지만, 한미 연합사령관이란 다른 역할에도 신중을 기해 균형을 잡을 것이다. 벨은 미국의 군사적 사안뿐만 아니라 한국의 군사적 우려 해소에도 열과 성의를 다할 거라고 강조하였다.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함에 더해 한국 정부로 반환되는 오염된 미군 기지의 환경 치유 문제를 한국이 해결할 필요성을 은연중에 내포한 듯 “사소한 문제”로 한미 동맹의 기초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할 방안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4. (기밀) 노 대통령은 환경 치유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벨의 긍정적인 평가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미국은 그간 한국의 발전상에서 불가분의 역할을 해왔으며, 그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민주화에 따른 퇴보한 영역의 하나는 정부와 대통령의 권위 축소라고 노 대통령은 언급하였다. 그는 양국 사이의 작은 차이로 동맹을 손상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벨의 지적에 대해 견해를 같이하였다. 완벽한 목표의 합치는 불가능하며, 미국과 한국은 그 차이점들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두 나라 사이의 큰 갈등의 조짐인양 양국의 차이를 과장하는 한국 언론의 경향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적했다.

5. (기밀) 한국이 미군이 복무하기에 여전히 어려운 곳인지 노 대통령이 묻자 벨은 그의 목표는 한국 군 복무를 “한층 정상화”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려면 (1) 미국 병사들의 현지 문화 경험을 더 확대하고 (2) 병사들이 가족을 동반하도록 하고 (3) 장기간 군 복무를 하도록 프로그램과 시설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미군 기지를 두 곳의 중심지로 재배치하는 일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고 벨은 말했다. 벨은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에 대한 현지 저항을 지적하는 등 한국 정부가 평택 시민들이 수용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길 희망하였다.

6. (기밀) 노 대통령은 미군 병사가 가족을 동반하지 못한 채 단기 한국 복무를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벨은 북한으로부터 더 큰 위협을 인식할 당시에 확립된 관행이 있다고 응답했다. 벨은 냉전 시대조차도 미군 병력이 유럽에서 가족과 더불어 장기간 군 복무를 했다고 지적하는 등 최근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그러한 관행에 변화를 줄 적기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이 미군 병력의 복무 여건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7. (기밀) 벨은 한국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이양하는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독립적인 전작권 열망은 자연스러우며 미국 정부의 관점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그 목표를 향한 여정을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다. 벨은 그 문제에 관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발언을 상기하는 등 미국은 “한국의 뜻에 맞게 조속히” 움직일 거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양국 정부가 그 문제에 대한 견해가 모아지게 되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 내 일부 반미 단체는 미국과의 어떠한 협력에도 반대함에 더해 지속해서 기지 재배치를 반대하며 평택시에서 반미 감정을 부추기려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일인 전작권과 같은 쟁점과 한미 연합사령부 안에서 한국의 책임 확대 문제에 대해서 한미 동맹에 반대하는 쪽 사람들이 반미 감정을 실제로 조장할 거라는 점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벨이 쌍방의 동맹국이 그러한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했다.

8. (기밀) 노 대통령은 화제를 일본으로 확실히 돌려 “다수가”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 반대하지만, 그는 정상 국가가 되기에 충분한 군사력 구축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익숙한 주제에 초점을 맞춰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최근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 역사적 의미를 더 염두에 둘 것을 촉구하였다. 노 대통령은 앞서 AD 5세기에서 16세기 후반까지 다시 19세기 후반 한국 점령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에 걸친 일본의 영토 확장 시도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일본의 팽창주의적 야망은 결국에 한국의 분단과 내전으로 이어진 관계로 역내 일본의 의도에 대한 한국민의 불안감의 원천이다. 한국의 해방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고 있고, 계속해서 다른 도발적 행동을 하며 독도를 두고(리앙크루 암도) 영토권을 주장함으로써 “네 번째 팽창주의”에 대한 우려를 끊임없이 낳고 있다고 노무현은 말했다. 한국은 대미 관계를 고려하여 역사적으로 일본과 강한 유대 관계를 지속해왔지만, 일본이 경솔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한국은 앞서 언급한 입장에 대해 재검토를 추진할 것이다. 벨은 미국을 비롯한 모든 당사국이 한일 간의 이러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9. (기밀) 노 대통령은 배석한 버시바우 대사를 거론하며 한국은 일본의 도발에도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 내의 해저 지형의 지명을 변경하지 않는 등 엄청나게 타협해 왔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은 자국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한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지명에 관한 국제수로기구 소위원회 대표를 보유했으면서도 해양 조사 선박을 파견해서 문제를 야기하였다. 일본 정부의 무모한 행동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양국의 숙련된 외교가 위기를 해소해서 다행이라고 말하였고, 대화를 통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주문하였다. 대사는 한국과 일본 양국은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임을 강조하는 등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겠다고 강조하였다. 미국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언급하던 노무현은 이 문제는 사소한 영토 분쟁이 아닌 훨씬 큰 문제임을 시사하며 폭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의 행동을 점검해주길 미국 정부에 재차 촉구하였다. 버시바우

포와로 탐정의 번역 © 무단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06SEOUL1478.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478 
 
SIPDIS 
 
SIPDIS 
 
E.O. 12958: DECL: AFTER KOREAN REUNIFICATION 
TAGS: PREL PARM MARR JA KN KS
SUBJECT: USFK COMMANDER'S INTRODUCTORY CALL ON PRESIDENT 
ROH MOO-HYUN - OPCON AND JAPAN DISPUTE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 d). 
 
SUMMARY 
------- 
 
¶1.  (C) In his May 1 introductory call on President Roh 
Moo-hyun, USFK Commander Gen. B.B. Bell underscored the U.S. 
commitment to the bilateral alliance and stressed that, in 
his capacity as CFC Commander, he served the Presidents of 
both countries equally.  Bell stated that the ROK's desire 
for independent operational control (OPCON) was natural, and 
the United States was ready to move "as fast as the ROK saw 
fit."  Bell underscored the need to find ways to cement the 
alliance and not let "small issues" crack the foundation, 
hinting that the ROK needed to move on the issue of 
environmental remediation.  Roh responded positively to 
Bell's overall message but did not address environmental 
remediation or dwell long on the OPCON issue.  Rather, he 
used the meeting to lay out South Korea's familiar concerns 
about Japan's provocative behavior toward Korea, urging the 
United States to better appreciate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Japan's recent maritime dispute with the ROK 
on the Dokdo/Takeshima islets and continued visits to the 
Yasukuni shrine by Japanese leaders and politicians.  The 
Ambassador called for a long-term solution through dialogue, 
stressing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not take sides on the 
issue.  END SUMMARY. 
 
¶2.  (U) On May 1, accompanied by the Ambassador, USFK 
Commander Gen. B.B. Bell called on President Roh Moo-hyun. 
President Roh was accompanied by Defense Minister Yoon 
Kwang-woong, National Security Secretary Song Min-soon, ROK 
JCS Chairman Lee Sang Hee, and Deputy NSA Suh Choo-seok. 
 
U.S., ROK NOT TO LET SMALL ISSUES DETRACT FROM ALLIANCE 
--------------------------------------------- ---------- 
 
¶3.  (C) Gen. Bell stated how impressed he was by South 
Korea's transformation into a full democracy and its economic 
progress since his earlier tour in the ROK as a young 
officer.  He stressed that, in his capacity as CFC Commander, 
he served the Presidents of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ROK equally.  Although he had unilateral responsibility as 
USFK Commander, he would carefully balance this with his 
other role as CFC Commander.  Bell underscored that he would 
work hard to address the ROK's military concerns as well as 
those of the United States.  It was important to find ways to 
cement the alliance and not let "small issues" crack the 
foundation, Bell said, alluding implicitly to the need for 
the ROK to resolve the issue of environmental remediation for 
the USFK bases returning to the ROKG. 
 
¶4.  (C) Roh, without addressing environmental remediation, 
thanked Bell for his positive assessment.  The United States 
had played an integral part in Korea's development and its 
role was ongoing.  One area of retrogression, Roh noted, was 
the decline in the authority of the President and the 
government that accompanied democratization.  He agreed with 
Bell's point that minor differences between the two sides 
should not be allowed to damage the alliance.  Achieving 
perfect convergence of objectives was impossible, so the 
United States and the ROK should acknowledge the differences 
and work together to resolve them.  The hardest element, Roh 
pointed out, was the South Korean media's tendency to 
exaggerate the differences as symptoms of larger strife 
between the two allies. 
 
SETTLING DIFFERENCES WITH PYONGTAEK RESIDENTS ON RELOCATION 
--------------------------------------------- -------------- 
 
¶5.  (C) In response to Roh's query whether Korea remained a 
difficult place for U.S. military to serve, Bell said his 
objective was to make tours in Korea "more normal."  To do 
this, USFK would expand facilities and programs to: (1) help 
U.S. soldiers get more in touch with the local culture; (2) 
have family members accompany them; and (3) serve longer 
tours.  Relocating the bases to two hubs would be key to 
achieving this, Bell said.  Noting the local resistance to 
base relocation in Pyongtaek, Bell hoped the ROKG could find 
a solution that was acceptable to the citizens of Pyongtaek. 
 
¶6.  (C) Roh asked what was the reason for having U.S. 
 
soldiers serve short tours in Korea unaccompanied by family 
members.  Bell responded that the practice was had been 
established at a time when there was a greater threat 
perception from the North.  With recent changes on the Korean 
Peninsula, the time was ripe for changing this practice, Bell 
said, pointing out that U.S. soldiers had served longer tours 
with their family members in Europe even during the Cold War. 
 Roh promised the ROK would do all it could to help improve 
conditions for USFK personnel. 
 
OPCON: U.S. TO PROCEED AS FAST AS ROK SAW FIT 
--------------------------------------------- 
 
¶7.  (C) On the issue of transferring wartime operational 
control (OPCON) to the ROK, Bell stated that Seoul's desire 
for independent OPCON was natural and sensible from 
Washington's perspective.  The United States was ready to 
discuss the path toward that goal.  Recalling Secretary 
Rumsfeld's earlier comments on the issue, Bell said the 
United States would move "as fast as the ROK saw fit."  Roh 
said he was relieved by the convergence of view on the issue 
by the two governments.  Some anti-American groups in the ROK 
opposed any cooperation with the United States and 
continually tried to stir up anti-American sentiments in 
Pyongtaek to oppose base relocation.  Roh thought it was 
noteworthy that issues like OPCON and increased ROK 
responsibility in CFC, by strengthening the alliance, would 
actually stir up anti-American sentiments on the part of 
those opposed to the alliance.  Bell expressed confidence 
that the two allies could manage such issues. 
 
REVISITING FAMILIAR THEMES IN ROK-JAPAN FEUD 
-------------------------------------------- 
 
¶8.  (C) Roh, conspicuously steering the discussion to Japan, 
noted that "a number of people" opposed Japan's rearmament, 
although he himself was not opposed to Japan building up its 
military enough to be a normal state.  Focusing on familiar 
themes, Roh urged the United States to be more mindful of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Japan's recent provocative actions 
toward Korea.  Roh explained, in great detail, three previous 
attempts by Japan to expand its territory from the 5th 
century A.D. to the late 16th century, and again in the late 
19th century, leading to the occupation of Korea.  Japan's 
expansionist ambitions consequently led to Korea's division 
and civil war, which was the source of the Korean people's 
anxiety about Japan's intentions in the region.  Even now, 60 
years after Korea's liberation, the Japanese continued to 
evoke concerns of a "fourth manifestation of expansionism" by 
claiming territorial rights over the Dokdo islets (Liancourt 
Rocks), having government officials and politicians visit the 
Yasukuni Shrine, and continuing other provocative actions, 
Roh said.  Even though South Korea had historically 
maintained strong ties to Japan out of consideration for 
Seoul's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Japan's 
continued display of imprudence would push the Korea to 
reexamine its position.  Bell said all part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wanted to see the problem resolved amicably 
between Korea and Japan. 
 
AMB: U.S. TO BE EVEN-HANDED ON ROK-JAPAN DIFFERENCES 
--------------------------------------------- ------- 
 
¶9.  (C) Roh, noting the Ambassador's presence, brought up the 
recent maritime survey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arguing that the ROK had compromised greatly by not changing 
the names of undersea features in its exclusive economic zone 
despite Japanese provocation.  Japan started the problem by 
sending out survey ships even though it had representation on 
the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 
subcommittee on names, which gave it ample opportunity to 
defend its position.  Tokyo's reckless behavior could have 
resulted in devastating consequences.  The Ambassador said it 
was fortunate that skillful diplomacy from both countries had 
defused the crisis and called for a long-term solution 
through dialogue.  Stressing that both Korea and Japan were 
close allies of the United States, the Ambassador underscored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be studiously even-handed on the 
issue.  Roh, stating that he understood the U.S. position, 
again urged Washington to examine Japan's actions in a 
broader historical context, implying that the issue was 
bigger than a minor territorial dispute. 
 
VERSHBOW